이민생활의 분주함에 바삐 살다보면 누구나 소중했던 지난 날의 기억들을 잊고 살아가기 쉽상이다. 저무는 해를 바라보려면 잠시 가던발걸음을 멈춰야 한다. 시간의 멈춤이 필요하다. 저녁놀이 질때쯤 들려오던 교회 종소리가 그리운 때다.
199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경북 영덕지역에 설화로 전해오던 신라시대 수로부인을 위한 헌화가(獻花歌)가 경주문화엑스포 기념공연에 예술작품으로 올려졌었다.
내용인즉, 신라 성덕왕 때 한 노인(신원미상,不知何許人)에 의해 불려진 향가로, 당시 절세의 미모에다 총명함까지 갖춘 수로부인에 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태수(지금의 명주)로 부임하는 도중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은 장소는 돌 봉우리가 병풍과 같이 바다를 두르고 있어 그 높이가 천 길이나 되고, 그 위에 철쭉꽃이 만발하게 피어있었다. ㅐ
부인이 이것을 보더니 “꽃을 꺾어다가 내게 줄 사람은 없는가?” 라고 묻자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자, 마침 암소를 끌고 길을 지나가던 늙은이가 부인의 말을 듣고는 그 꽃을 꺾어 가사까지 지어서 바쳤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 2편에 수록되어있다.
노인이 부른 헌화가(獻花歌)는 ‘철쭉꽃이 만발하여/ 자줏빛 바위 가에/ 손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꽃을 꺾어 바치오리다.’라 했다.
사실 꽃과 노래를 바친 노인이 누구인지는 자세히 서술되어있지 않다.
그 뒤 편안하게 이틀을 가다가 임해정에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바다에서 용이 나타나더니 부인을 끌고 바닷 속으로 데려갔다. 공이 땅에 넘어지면서 발을 굴렀으나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또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한다. “옛 사람의 말에 여러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 했으니, 이제 바닷 속의 용인들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고 지팡이로 강언덕을 치면, 부인을 만나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공이 그대로 하였더니 용이 부인을 모시고 나왔다고 한다.
수로부인은 아름다운 용모가 세상에 뛰어나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귀신들의 시기와 질투로 많은 낭패를 겪었었다.
이때 여러 사람이 부르던 노랫말로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죄 그 얼마나 크랴. 네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전해왔다.
설화에 등장하는 이름모를 노인들은 모두 부지가허인(不知何許人)이다. 그들이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짐작컨대 인간세상을 초월한 현인들일 것이다.
현대사회는 초고령화시대이다. 세월의 깊은 흔적이 주름마다 가득한 노인들이 젊은이들과 우리사회의 짐이 아니라 미래를 열어갈 혜안의 보고(寶庫)로 많은 쓰임이 필요한 동시에 섦김과 존경을 받아야 하는 현인들이다. 미국 한인 이민역사를 만든이들은 거의 사라져간다. 하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보여준 숭고한 정신만은 길이 보전되고 계승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민 1세대들은 어려운 시대를 헤쳐나온 풍부한 경험이 있기에 미래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위해 자신들이 소유한 삶의 철학을 남김없이 전달해야할 책임이 따른다.
좌우를 둘러보지 않고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 천리길 낭떠러지 길도 마다하지 않고 힘겹게 달려온 그들이 아니었나. 지금 껏 살아오면서 자신들이 일궈낸 크고 작은 업적들은 미래에도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전해오는 향가의 진정한 해석과 평가는 단순히 아름다운 수로부인에 국한되어선 곤란하다. 사실 헌화가를 바친 노인의 지혜와 용기가 주목받아 마땅하다.
무려 30년이 지난 공연을 다시금 기억할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 공연을 통해 작품이 지닌 의미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분주히 땀 흘리던 예술가들의 모습들도 생생히 기억난다. 비록 한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가며 나이가 들고 총기와 기억마져 흐릿해지지만 그때의 감동들로 가득하길 바란다.
비록 저마다 살아온 길은 다르나, 결국 그 끝은 같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한 세대를 같이 살아가기에 미운사람, 고운사람을 애써 구분하며 불평할 필요가 없다. 우리 주변엔 미인들이 차고 넘치나, 가슴 따뜻한 노인(不知何許人)은 찾아보기 힘든 시대이다.
하지만 가끔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어르신들을 볼 때면 감자밭 한가운데 서서 기도하는 농사짓는 부부 모습을 그린 밀레의 작품 ‘저녁종’이 생각난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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