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끝이 보이지 않고 지속되는 가운데 그 동안 철저한 방역과 적절한 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며 한동안 실시했던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도 이제는 생활 방역체제로 전환되어 일상의 삶을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속설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지난주 젊은이들이 모이는 용산 이태원 클럽에서 대거 확진자들이 생겨나면서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음을 느끼게 합니다. 실로 지리멸렬한 바이러스와의 전쟁임을 실감합니다.
그럼에도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생활 방역 체제로 전환하면서 전체적으로 삶의 활기를 찾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기대하는 모습입니다. 거리를 활보하는 시민들의 모습에서도 그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전쟁이든 끝난 후 폐허와 잿더미가 된 곳이 즐비하듯이 이번 코로나19로 인하여 우리 사회 전반의 구석구석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처와 아픔들을 남겼습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번 환란으로 입게 된 경제적 손실과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잃은 상심과 슬픔을 위로해 주고자 주변의 어려운 이웃 돕기와 소상공인 경제 활성화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도 지난 사순절 특별새벽 기도 기간 중 금식을 통해 모금된 헌금을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데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그 뜻의 일환으로 사회적 약자들 중의 하나인 독거어르신들을 돕는데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교회가 속한 지역주민센터와 협력하여 인근에 살고 계신 홀로된 어르신들 중에서 경제적 구제의 손길과 위로의 마음을 전할 대상을 정하고 그들에게 생활 구호품과 함께 따뜻한 정성을 전하는 사랑의 캠페인입니다.
지난주 이 사랑의 나눔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눔 활동 중에서 제가 맡은 일은 어르신들 중 거동이 불편한 분들의 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구호품과 성금을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총 12가정을 배정받아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을 일일이 방문했습니다.
독거 어르신들이 사는 곳은 주로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산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어 포장한 구호품을 직접 손에 들고 방문해야 했습니다. 독거 어르신들 중에서도 교회까지 방문할 수 없는 거동이 불가한 분들이라 나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집을 방문 했을 때는 상상이상으로 거주하는 집이 낡고 비좁고 어둡고 지독한 냄새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겉으론 밝은 말투로 말씀을 건넸지만 마음속에서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삶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실을 보는 순간 밀려오는 측은한 마음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 모습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바로 ‘지독한 외로움’입니다. 빛조차 차단된 어두운 곳에서 그들 대부분은 하루 24시간을 자유롭게 거동도 못한 채 지내고 있었습니다. 왈칵 눈물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방문한 12 가정 중에서 가장 최악이었던 곳은 방안이 견딜 수 없는 심한 악취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아마도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그대로 배설까지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현장을 보고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저를 조금이나마 안심시켜주려는 듯 함께 방문한 주민센터의 사회복지과에서 일하는 직원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어르신들은 저희들이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집안 청소 및 그 밖의 도움의 손길을 주며 특별 관리하고 있어요!”
그 동안 인생 백세 시대를 운운하며 관찰했던 건강한 세상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면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충격적인 독거어르신들의 삶의 현장을 보면서 그동안 하나라도 더 갖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이기적인 마음과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남들과 비교하여 스스로 상대적인 박탈감을 자초했던 부끄러운 모습들이 이들이 처한 지독히 외로운 삶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림을 깨닫게 되는 귀한 경험의 시간이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 말의 어원은 프랑스어로 ‘고귀한 신분(귀족)이라는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의 합성어입니다. ‘고귀한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적으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지위만큼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는데, 특권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고 고귀한 신분일수록 의무에 충실해야 하는 것을 말할 때 쓰입니다. 이 말은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인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합니다.
비록 이 말이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할지라도 오히려 법적인 구속력보다 소위 귀족들의 명예와 도덕성이 더 치명적이고 심각하게 훼손된다는 점에서 서양에서 일찍부터 발달되어 전해 내려오는 아름답고 전통적인 정신유산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역사적으로 일제 치하의 36년과 이어진 6.25동란을 치르면서 폐허가 되었던 대한민국이 짧은 기간 내에 기적적으로 놀라운 경제 부흥을 이룩하는 와중에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권력과 부를 잡은 세력들이 이 말의 의미를 오용하면서 많은 잡음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모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서 흔히 바라보게 되는 사회적 부작용입니다. 오히려 그 도를 넘어서 ‘한국적 갑질 문화’라는 독창적 문화를 창달하기까지 했습니다. 권력을 이용한 부동산 투기, 불법 증여 및 탈세, 병역면제, 이중국적, 논문 표절 등을 쉽게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가리켜 ‘노블레스 말라드 (Noblesse Malade)’라는 비꼬는 단어가 생겨났는데 ‘병들고 부패한 귀족’이라는 뜻 정도로 해석이 될 것 같습니다.
진정한 대한민국의 힘은 건전한 의식을 가진 시민들로부터 나오는 것 같습니다. 지난 IMF를 맞아 미래가 없던 대한민국을 살린 것은 위기에 처한 시민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각고의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가까이로는 이번 코로나19를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슬기롭게 이겨낸 것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의료진들과 시민 봉사자들의 힘이었다는 것을 대한민국의 노블레스들은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아직도 어둠 속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며 찾아주는 사람 없이 홀로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늘 그래왔듯이 이제는 건전한 의식이 살아있는 대한민국의 희망인 시민 연대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칼럼니스트 최준영
웃음과 감동이 융합된 아름다운 동행으로 행복한 인생을 추구하는 코칭리더
現) 인코칭 파트너코치
‘코칭으로 아름다운 동행’ 대표
부산항만공사 자문위원
라이프 사이언스 테크놀로지 고문
前) (주)현대상선 임원
KAC 자격 획득 – (현) 한국코치협회 인증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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