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병은 알려고,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라’는 말이 있다. 병을 알려야 함은 의료정보를 공유하여 전염 확산을 신속하게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접하는 뉴스에 많은 사고와 사건들이 있다. 공론을 불러일으키는 중국 우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인은 물론 세계인의 잠을 이루지못하게 하고 있다. 매일 불어나는 사망자와 확진자 숫자를 두고 중국정부의 늦장대응과 통제방법에 볼멘소리가 높아가고 있지만 별다른 묘책이 없는 것 같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바이러스로 인한 국제사회의 지원은 체제에 갇혀 개방을 원치않은 탓에 초기대응이 어려운 실정이다. 신냉전시대를 맞이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성경은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눅21:11)’라 기록되어있다. 전염병으로 말세의 징조들이 나타날 것을 예견한다. 즉 통제할 수 없는 변종 바이러스들이 속속 출현하여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위협할 것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인류는 두차례 세계전쟁을 겪으면서도 “그런 일을 가지고 꼭 전쟁을 했어야만 했나?”라는 의구심을 갖곤했다. 마치 허니문 여행지에서 말다툼처럼 애교로 봐줘야 한다는 낙관론도 있지만, 단호히 신혼의 꿈을 버리고 갈라서라는 조언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이 마치 북한 김정은 정권이 걸핏하면 핵을 앞세워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실 전쟁을 두고 강건너 물구경하듯 그런 일을 가지고 왜들 다투나? 하고 건성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지극히 무책임한 일이며, 잔인하며 비인도적 무책이다.
지구촌에서 발생하는 전쟁은 오직 자기 민족이나 국가의 존립만을 위하려는 지나친 민족우월주의자들에 의해 편협된 역사적 사관만을 주장하거나 미화, 동조하는 발상이 늘 단초가 되었다.
어떤 국가든지 목표를 정할땐 늘 자국민의 안위와 번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전제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이념과 사상, 체제를 유지키 위해 욕망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고 있으나 그 뜻이 좌절될때마다 주변 약소국가들은 분노의 대상과 먹이감이 되었다. 침략자들의 야욕에 대해 지니는 정서를 ‘분노에 찬 반민족주의’ 즉 ‘찬탈주의’를 무기삼아 전쟁을 도발하는 것에 대한 증오가 시대를 뛰어넘어 역사적으로 과념화되고 있다. 찬탈과 침략, 식민을 도모하는 것은 인간이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생리적 욕구 충촉에서부터 문화적, 경제적 생존까지 광범한 것들을 이유삼아 목적을 은패하고 세계사를 변질시켜왔다. 이는 식민지의 민족말살주의가 필요하다고 당연시 여기는 그들의 잘못된 그릇된 사관 때문이었다. 이런 현상은 나치독일과 일본의 제국주의의 민낯에서 확인되었다.
글로벌시대를 맞아 현재 여러 민주주의 국가들은 나름의 공동목표가 생겼다. 한마디로 ‘인류공영’이란 목표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자기들만의 생존을 위한 주체사상들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핵심이다. 여기엔 ‘언론자유’를 통제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다.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서 유엔보건기구 역시 그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아무리 논의 끝에 비상령을 공표해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가진 권력에는 어떠한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발병 근원지에 접근조차 할 수 없고 중국내 기자들의 활동을 공산당이 봉쇄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국내·외 언론을 통제한 탓에 지금의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시각도 많다.
이러한 가운데 편협된 강대국이 미치는 힘의 논리에 국제사회가 주저한다면 나라간의 분쟁, 즉 인류의 분노를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예전 북한 미사일과 핵실험을 저지하려할 때와 무엇이 다른가. 제재조치는 그저 조치에 불과했다.전쟁과 전염병을 단지 탁상공론만으론 어림도 없다. 이번 사태는 비록 병은 밉지만 사람을 미워해선 안된다고는 하나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그들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 주변현실을 살펴보자. 한인도매상 뿐만 아니라 미국 대형슈퍼마켙도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많은 양의 상품을 수입하고 있다. 결과를 예측 할 수 없는 불안감으로 치닫는 우한폐렴으로 인해 수 십개 도시봉쇄와 현지 생산공장 가동중단사태로 번져 상품수급과 생산라인에 막대한 차질을 빗고 있지만 별다른 대체수단과 방법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매일 뉴스를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 속엔 금전적 손해는 물론 분노와 좌절감만 증폭될 뿐이다.
이렇듯 사회주의 국가의 공중보건에 대한 수준 낮은 대처로 인해 지구촌의 분노는 큰 산을 넘어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또한 세계 경제에 치명타를 불러올 조짐마져 있다는 점이 불안하다. 그동안 거대한 덩치만 믿고 세계경제를 주물렸던 중국인민사회주의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상적인 국가운영이란 기초과학과 국민의 기본질서, 인권을 지키기 위한 올바른 정책을 바탕으로 하는데 그들은 오직 이념과 사상, 독재자들의 주체사상을 앞세운 탓에 부실하기 짝이없다. 국민 기본 생활문화의 궁핍함으로 체제 자체가 발목을 잡히게 된 사필귀정이 아닌지.
이제 그들을 향한 세계인의 시각과 분노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시기, 질투, 증오심으로 가득차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세계인들이 그들을 향해 방어차원의 공격적 성향을 가지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어질 것이다.
철학자 프로이드는 인간의 본능에 대해 ‘인간은 건설적이며 성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생의 본능과 자기파괴와 공격적인 죽음의 본능을 갖고 있다. 두 번째 본능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을 파괴하는데 자학이나 자살, 전쟁과 같은 것으로 모두 죽음의 본능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중국발 바이러스가 말 그대로 국경을 넘어 한국은 물론 전세계를 향해 달리고 있다. 무차별 전파하는 전염병은 인간의 생명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소리없는 전쟁터 같다. 만약 자신에게 생명을 앗아갈 총부리를 대는 사람이 있다면 그 누가 미소로 대하며 사랑과 온유로 화답하겠는가? 또한 정중한 부탁이나 협조가 아닌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고 강대국이란 미명아래 주변국에게 강압적이고 저주나 욕설을 퍼붓는 나라를 어떻게 사랑으로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겠는가? 개인은 가능하겠으나 국가와 국가간에는 인도적 정서를 떠나 자존심이란 것이 있기에 좀처럼 인정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인간은 모두 타고난 저마다의 본능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는 존재가 더 이상 아니다. 식욕에서부터 공격적 본능에 이르기까지 있는 그대로 충족시키는 존재이기에 복잡한 세계질서와 문화의 이해는 혹독한 역사의 절차를 거쳐 비로소 조금씩 해소되어 갈 수 있다.
인간은 힘없고 나약하며 병들어 고통하는 이에게 공격성 곧 분노와 증오심보단 도움과 공동체가 함께 구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번영된 인류문화란 지구촌의 각종 문제를 함께 해결함에 있어 서로의 다른 점과 같은 점을 인식하고 대처해가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끝으로 지금의 사태를 기독교적 사관에 입각한 말로 끝맺음하자면,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궁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는 자, 이런 사람들이 하늘의 복을 받으려면 사랑의 분노가 필요하다.

최영기/ 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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