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미국으로!”를 외치며 무작정 고국을 떠나온 많은 이민자들이 이룬 한인사회가 벌써 100년을 훌쩍 넘겼다. 초창기 어눌한 영어로 3D(미국인들이 기피하는)직종에서 찬밥 더운밥 가릴 틈조차 없이 이제 껏 살아왔지만 지금부터 업그레드가 필요하다.
몸짓 발짓으로 매순간 삶의 위기를 극복한 동양의 작은나라 한국인들은 한마디로 인동초(忍冬草)였다. 6.25 한국전쟁으로 거의 폐허가된 당시 경제상황은 마치 불에 타버린 후 앙상한 나무가지만 남은 모양새였다고 회상하는 이들이 많다.
몇 천년을 친척들로 옹기종기 집성촌을 이뤄 살아온 우리민족에겐 급작스레 불어닥친 외세의 침략과 국가간 산업전쟁 자체를 이해하고 헤쳐나갈 자원과 지식마져 없는 상황에서 밀물처럼 불어닥친 외래문화와 경쟁산업에 숨돌릴 여유는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한스러움을 간직한채 도시에서 펼쳐지는 이념과 정치, 뭉화적 갈등을 모르며 시골뜨기라는 걸 큰 다행으로 알고 만족하며 오히려 남에게 자랑스럽게 고향에 대해 말하곤 했었다. 단 한번도 시골에서 태어나 성장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지금도 나는 내가 시골에서 나서 자랐다는 얘기를 남에게 할 기회가 생기면 입에 거품을 물고 고향자랑하기를 정말좋아한다. 남다른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간혹 고향 얘기만 나오면 유명한 외국 관광지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으스대며 마구 신이 나서 말수가 많아진다.
시골에서 나서 자란 사람은 아무리 도회물과 외국물에 씻기고 닳아도 그 본질과 본성, 심성이 자연의 이치를 닮은 용기와 겸허함과 정직함이 뭍어있어 쉽사리 변질되거나 바뀌지 않아 푹 끓인 진국같아 보기만해도 정겹다.
현대사회의 힘은 ‘돈’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가족간의 결속된 힘’이었다. 힘은 있으되 소위 깡다구라고 하는 도시사람들의 힘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허구의 용기가 아니라 그 뿌리가 땅에 내린 듬직한 힘이었다.
그래서 나는 수 십년째 이민생활을 하면서도 초등학교까진 시골에서 마친 사람을 좋아하고 중고등학교까지도 시골에서 나온 사람이면 무턱대고 정을 쏟는다.
도시출신 지인과의 대화는 무언가 2% 부족한 허전함을 느낀다. 도시출신 아이들이 유년시절 괭이밥이 어떻고 쇠비름, 배추꽃, 무꽃의 다름을 비록 책을 통해 익혀도 들밭에 나가면 말짱 헛거인 것 처럼 그저 가치밖에 없는 개념만을 배운 것이 자연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몸에 베인 아이들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런 것들을 잘 배워 성적만 좋은 아이일수록 나중에 혓약고 속이 옹졸하기 일쑤다.
하지만 시골에서 산야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것들과 더불어 사귀고 친해지고 사랑하며 자란다는 건 대자연의 오묘한 이치에 대한 깨닮음의 경험이기에 큰 축복이다. 해서 시골출신들은 우직한 듯하면서도 속이 넓고 인간미가 있다. 그들 마음속엔 누구나를 반갑게 맞이할 고향 같은 걸 갖고 살아간다. 한마디로 크고 옳은 일을 할 기존바탕 같은 것이 심어져 있다.
이런 까닭에 이민사회에서 태어나 성장한 아이들이 조금은 걱정스럽고 그들에게 미안스럽다. 특히 이민사회는 집을 나서자마자 자동차로 목적지 문 앞까지 이동하는 터에 어디서 넘어지고 굴러서 먼지는 묻을지 몰라도 흙은 안 묻는다.
하루종일 싸다녀도 신발에 진흙 한덩어리쯤 묻어 오는 일도 없다. 잘 정돈된 화단과 잔디밭, 강렬한 색상의 화초와 열대 식물들이 마치 조화로 된 장식물처럼 보여 나에겐 백화점 쇼 윈도를 보는 것 이상의 감동을 기대하지 못한다.
점점 더 아이들이 자연에 대한 감동을 맛볼 게회없이 성장시키는 것 자체가 문득 두려워진다.
자연을 도외시하고 흙으로부터 단절된 삶을 사는 건 부모없이 자라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로 부모는 있지만 고아를 만드는 일인 것 같다. 자신을 낳아준 근원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 그리고 순종을 전혀 모르면서 성급하고 다혈질적인 괴물로 자라야 되니 말이다.
아이들도 그렇지만, 이민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국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근심은 비단 나만의 근심은 아닌 듯 요즘 시골에 농장을 마련하는 여유로운 이민자들이 꽤 있다.
참으로 좋은 일이다 싶어 처음에는 부러워도 하고 나도 언젠가 돈을 벌면 소, 말, 그리고 상추와 고추를 파릇파릇 키울 텃밭이 있는 농장을 마련할 꿈을 가져 보기도 했다. 몇 년전 그런 농장을 마련한 지인을 따라 가 본 적이 있었다.
이민자의 삶은 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 농사꾼이 한여름 태양볕을 무릅쓰고 얼마되지 않은 밭, 논에 목숨을 매달고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모습이 잠시 외국여행을 하는 이들에겐 그저 눈에 보인 것만으로 인식되어선 안된다. 여행자가 보기에 수 십년 이민생활하면서 별로 내세울 것 없이 한심해 보이나 현지 이민자들은 보잘 것 없는, 미국인들의 눈에 하찮아 보이는 영역에서 매순간 죽어라 일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과 미국에서 한인 이민자들의 삶 자체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목숨 걸고 살아가는 이민자의 삶에 나는 더 큰 가치를 두고 싶다. 사실 이민자들에겐 부족하고 힘든 조건들이 넘쳐난다. 세월이 흐른 후에 세계 곳곳에서 우리민족의 순수성과 성실함이 뿌리내린다면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예로부터 자연에 감사하고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풍토가 문화유산으로 이어진 우리의 미래는 수확기가 되면 그 가치가 드러날 것이다.
현재 한국정치에 매몰되어 지나친 욕심과 편향된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려고 오히려 정의를 본질적으로 왜곡시키는 것에 분하여 장기적인 이민자의 삶을 내버려둘 수는 없다. 이참에 잠시라도 짬을 내어 텃 밭을 일궈보며 시름을 덜어보자. 비록 어설프지만 농사 흉내라도 내보면 어떨까.
그동안 우리가 땅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세계 어느 곳을 가더리도 한인사회를 만들어갈 힘을 가질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우리들 곁에 약속처럼 찾아오고 있다. 어린시절 배고픔을 잊게해준 산길에 핀 싱그러운 아카시아 꽃잎이 그립다.

최영기/ 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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