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문기사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일촉즉발로 치닫는 가운데 한미가 청와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라인을 가동하는 등 잇따라 접촉하고 긴박한 대응에 나섰다. 중동지역 긴장 고조가 한반도 정세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데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등 한미동맹 이슈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밝히고 있다. 도대체 무슨말인가?
무릇 글이나 행동은 더하기가 아닌 빼기행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기사 내용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은 버려둔채 여과없이 사실로 받아들이며 인식이 고착되어간다. 신문기사는 리포트이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보도자료나 대변인 논평을 사실 그대로 인식하는 국민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건국초기 이승만 정부가 수도권을 포기하며 퇴각한 후에도 여전히 국민에게 안심하라고 한 역사적 사실과 세월호 사고에 아이들에게 선내에서 벗어나지말고 제자리를 지키라고 했던 방송들의 결과는 참으로 참담했었다. 위험한 발상이고 대응태도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수 많은 나라들이 협력할때 유독 우리만 담넘어 불구경하거나 국내 정치적 이유로 변명하며 ‘남의 일에 간섭하거나 동참하지 않는다’고 말 한다면 향후 자유우방국들로부터 왕따(이지매)를 면치 못할 것이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일방적 더하기 글쓰기를 자행하는 정부와 언론들을 경계해야 한다. 연일 발표하는 보도가 호도로 뒤바뀌는 현상을 인지할 즈음이면 이미 사달이 난 후가 된다. 진실은 둘째치더라도 사실에 기반한 기사나 발표가 중심을 잃고 편파·편협적으로 이뤄진다면 국민들엔 비상구가 사라진다. 지난 날 충북 제천 사우나에서 발생한 화재때 비상구는 있었으나 온갖 잡동사니로 막혀 많은 사상자를 발생한 사실을 잊지 말자.
전 근대 세계사에 기록된 한국사를 살펴보면 특히 선거철에 맞춰 집중적으로 각종제도나 법규가 산더미처럼 새롭게 만들어졌었다. 결과가 명확하지 멋한 허구에 쌓인 각종제도가 시작만 화려했던 소설같은 제도로 둔갑되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볼때 한국은 이미 소설왕국이다.
그동안 건전한 사회와 국가를 만들기 위해 지식인들은 나름 양심을 걸고 고언과 조언, 해법을 제시했었다. 하지만 요즈음 그런 모습들이 사라졌다. 우리 사회는 건전하고 건강한 비평이 끊임없이 분출될때 경쟁력을 가진다. 한마디로 사실을 지키기 위해선 글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기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작가들은 개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를위해 전지적작가 관점과 주관적 생각을 함부러 첨가해선 곤란하다. 대신 독자의 상상력을 고무시킬 여유와 공간을 충분히 비워둬야 하는데 몇 몇 작가와 교수들이 나라전체를 흔들고 있어 죽은 지식인의 시대인 것 같다.
인간의 생각 모두를 인쇄 활자나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분명 어떤 생각을 하는데 마땅히 인용할 형용사가 존재하지 않는 시점에서 촉박하고 다급하게 대충 비슷한 단어로 인용한다면 상대적 만족감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우리사회 지도층과 정부 지도자들 역시 별다른 노력없이 기존의 말과 행동으로 매번 “역사는 되풀이 된다”며 본질을 살짝 비켜가는 말로 얼버무린다. 사실이 사실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본질에 의한 본질을 위한 시작과 끝이 합리적이며 투명하며 진행되어 결국 진실을 최종목적으로 삼아야 하는데 순서가 뒤 바뀌었다. 모든 것이 결과론적 관점에 매몰되어있어 실망감마져 든다.
만약 용기없이 애매하거나 다소 의심스런 과제 앞에 침묵하고, 다급히 문제만 비켜가려 하는 행위는 지도자아 봉직자로써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결국 그들 대부분은 진실앞에서 고개를 돌리거나 단순히 재난이 자신들 눈앞에서만 비켜가길 바라는 바램뿐이어서 국민들로부터 비난받아 마땅하다.
지금 정부는 우방인 미국을 돕는 일에 왜 주저하나? 무엇이 우려스러운가? 입으로만 외치는 동맹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 트럼프정부는 위기를 맞이했다. 이란과의 전운이 감돈다. 무려 서른 곳 이상이 이란의 보복지점으로 발표되고 있는 지금 우리 이민자들은 적극 협조해야 한다. 70여 년전 우리강토가 공산괴뢰의 총칼 앞에 촛불처럼 놓였던 시절 미국은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주저없이 도움을 자처해주었다. 무려 5만명의 미국 젊은이들의 숭고한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없다.
하지만 한국발 기사에 따르면 고작 몇마디의 말로 위기에서 벗어나려 저울질하려는 몰염치스러운 모습에 이민자로 이곳 미국민들에게 무척 부끄럽다.
한국은 미국에 많은 빚을 졌다. 경제적인 도움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유일하게 있는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묘지가 무엇을ㄹ 의미하는지도 잊고 살아간다. 자유 민주주의,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바친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온갖 혜택을 누릴 수 있음 또한 잊지말자.
끝으로 인간의 삶 또한 더하기가 아닌 빼기다. 받는 것에만 익숙하다보면 결국 거지꼴을 면치 못한다. 특히 종교인이라면 절대자로부터 받은 생명에 대한 축복에 감사와 나눔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변화무쌍한 현실 앞에 펼쳐지는 나라와 나라 간의 동맹이 현시점에서 손해보는 빼기일지 몰라도 결국 더하기이라는 점을 소설왕국에서 환상적인 언론과 정부 발표에 눈멀고 귀막혀 잠든 우리 국민들만 어찌 모를꼬? 걱정이다.

최영기/ 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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