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고향이 있고, 그곳을 향한 우리네 가슴엔 늘 그리움을 머금고 살아간다. 당신이 태어나 살고 있는 곳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떠나야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지난주 젊은 나이에 육신의 고향을 떠나 천국 본향을 향한 발걸음을 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접했다. 평소 가까운 사이라 그 충격은 더 할 나위없어 가슴이 아렸다.
‘생로병사’ 모든 사람은 ‘요람에서 무덤으로’의 필연적 여정을 피할 수는 없지만 생의 기간을 두고 희비가 엇갈린다. 사회적 유명 인사라고 천년만년 살 수 없고, 많은 금은 보화를 가진 부자라도 생명을 영원히 연장하지 못한다.
말 많고 탈 많은 이민사회에서 고국과 고향을 남겨둔채 영원한 천국으로 이주하는 광경을 보면서 깊어가는 가을, 초겨울의 한기를 사못 느낀다.
평소 잘 알던 한 젊은 기자의 비보는 여러가지를 시사했다. 가끔 그와 만나면서 고생 끝에 이제 자리를 잡는가 했더니 이렇듯 급작스런 죽음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자신의 나약한 허무을 느꼈다.
그는 한인사회 여기저기서 열리는 행사엔 의례히 카메라와 기자수첩을 들고 다녔으나 더 이상 만날 수도 볼 수도 없어졌다. 영원한 안식처로 떠난 그와 아쉬움과 슬픔을 머금은채 지낼 남은 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나 역시 나이가 한 두살 먹어가는 동안 주변 이웃들이 하나 둘 씩 떠나간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된다. 함께 밥을 먹고, 가끔 만나 진한 정을 나눴는데, 이젠 각자가 정해진 곳으로 떠나는 것을 서운해 할 수는 없다. 그저 남은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실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곳 한인사회는 초기 이민자들의 덕분에 타 도시완 다른 정서가 흐르고 있다. 나 또한 오랫동안 살던 이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전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할까 하는 생각을 끄집어내자 “내 몇 년만 있으면 죽을 낀데 그때까지만 함께 이웃으로 지내면 안 될까?”라는 교회의 한 어르신의 말에 눈물이 핑돌았다.
지난 몇 년간 한인회에서 열정을 가지고 봉사도 했지만 요즘 자발적인 참여가 뜸해지게 되었다. 관심이 식은 것이 아니라 기회를 나눈다는 의미로 한 걸음 뒷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지만 이 또한 아쉬운 대목이다.
다시 고향 이야기를 해보자.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거나 떠날 예정이라면 마무리를 잘 해야한다. 사소한 다툼이나 이해관계로 인해 고향을 억지로 잃어버리게 되면 곤란하다. 이민사회의 소중한 유산이나 문화재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추억들이 자로 그것이다.
흔히들 고향이라하면 마을에서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슬레이트 집의 마루 벽에는 가족 사진들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고, 마당엔 장독들이 놓인 수돗가와 오래된 감나무가 있고, 집 오른쪽과 뒤쪽은 대나무 숲과 함께 산으로 이어지고. 집 입구 사랑방 앞에서 보면 아래에 있는 동네 집들과 하천변의 정자나무가 보이고….
어릴 적에 자주 갔었던 외갓집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내 어머니도 팔 순이 넘어서 돌아가셨지만 대구에서 버스로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고향을 근 20년동안 못가셨다고 했다. 자식들 키우느라 바쁘셔서…고향을 지척에 둔 실향민이 따로 없었다. 어머니의 고향은 예천읍 대신동이다. 경북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예의바른 옛마을이다. 누에로 실을 만들던 제사공장이 영주로 이전하면서 산업발전도 없고 그럭저럭 농업에 기댄채 옛모습을 간직한 곳이었으나 최근들어 비행장이 들어서고 안동과 가까운 곳에 도청이 이전해 오면서 제법 도시 형태가 가춰졌다. 사실 어머니의 옛고향은 열 일곱살이 되어 아버지와 결혼하시면서 사라졌다.
지금은 행정구역도 바뀌었고, 마을 앞 하천도, 정자나무도, 집 뒤 야산도 사라졌고 버스 터미널도 옮겨져 휑한 농촌풍경만 남았다. 그 옛날 마을을 지켜왔던 갓쓴 한학자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예전 외할머니가 계시던 곳은 사라졌다. 이제 어머니의 고향, 내 외갓집은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몇 년 전 한국방문 때 렌트카를 타고 예천을 다녀왔다. 군청이 있던 자리와 외할아버지가 설립한 중·고등학교를 찾아교정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고향과 고향 사람들을 그리워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할아버지가 사시던 하무실 옛 집터 뒤엔 아직도 1년에 한 번씩 정월 대보름날 고향 사람들이 정자나무 주변에 모여 당산제를 지내고 있었다. 고향을 떠난 많은 후손들이 무탈하게 잘 살아가라는 기원제라고 하니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우리가 비록 말없이 고향을 떠나왔지만 고향사람들은 우리를 위해 기원을 이어오고 있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육신보다 고향의 정을 간직하고픔이 내게 있다. 돌아오는 길에 고향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보기도 했다.
내가 살아가는 이곳 미국 텍사스 휴스턴. 나의 제2의 고향임이다. 지금의 고향 모습도, 사람들도 세월 따라 변하고 사라질 것이기에 조금이라도 늦기전에 가슴에 듬뿍 담아두고 싶다.
고향은 멀리 있거나 세상에서 사라져도 그곳에서 살았던 이들의 마음속에 추억과 그리움으로 존재한다. 정자나무 하나가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고향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주는 것처럼. 이제 정든 고향과 미국의 고향을 함께 마음속에 간직해야 하는 우리 이민자들은 후손들에게 어떤 고향을 남겨주어야 할까?

최영기/ 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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