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전 한 지인의 요청으로 천장에 머물던 다람쥐 가족을 내쫒았던 일이 있었다. 다람쥐는 꽤나 똑똑한 동물이다. 특히 가족 돌보기에 최선을 다하고 기억력이 좋아, 자기가 생활하던 보금자리를 3마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잘 찾아 온다고 한다. 산란기가 되면 의례히 안전하고 따뜻한 주택의 지붕 안을 찾아든다. 이빨이 강해 나무판넬 정도는 가볍게 갉아 먹는다.
퇴치방법은 평소 다니던 길목에 땅콩잴리를 바른 쿠키를 부비트랩 안에 넣러두면 쉽게 다람쥐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포획한 후 검은 천을 덮어 집에서 적어도 3마일이상 멀리 공원이나 숲에 풀어줘야 한다.
어린시절 애완동물을 판매하는 가게 진열장 위 채바퀴 안에서 열심히 앞을 향해 줄창 달리던 다람쥐가 떠오른다.
‘다람쥐 채바퀴 돌듯…’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입가에 맴도는 씁쓸한 미소는 잔인하기까지 하다. 불쌍한 다람쥐 신세.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삶의 대부분이 의미없는 굴레에 갇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쉼 없이 돌아가는 브레이크 없는 따분한 삶의 자동차 바퀴를 잠시라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자제력이 필요하지만 많은 이유로 쉽지 않을 것이다.
한 예로 모처럼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사교의 시간을 보내는데 한 친구가 내가 노래을 하고 있는데 끝나기도 전에 똑같은 곡을 고르는 것이 돌림노래이다. 한술 더 떠서 옆의 사람과 같은 곡에 더 높은 난이도로 의도적으로 부른다면 이는 따돌림노래를 부른 격이 된다. 비록 눈총을 받겠지만 딱히 말릴 수도 없다.
이민 사회는 지금 돌림노래와 따돌림노래가 이어지고 있다. 같은 노래 다른 느낌? 노래는 노래다. 삶과 지위와 부, 가난과 고통이 악순환되고 이웃을 신뢰하지 못하채 먼 이국 땅까지 와서 사소한 예의조차 무시하며 반목한다면 우리의 마지막 자존심은 어김없이 무너지게 된다.
한국을 떠나 이국땅에 정착하고 지난 날 많은 초기 이민자들의 적지않은 따뜻한 도움에 감사하여 기회가 주어지면 지역사회에 헌신하고 봉사하려던 환원적 자원봉사와 정신을 막아서서 ‘양학’ 하려는 의도로 주변 사람들을 격리한다면 장차 이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나와 같은 의견도 있고, 신경 쓰는 사람도 있지만 동포사회도 자원봉사자들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이 안타깝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부르던 노래를 완전히 외우고 있지 않는 이상 악보(이웃)와 가사(나 자신), 그리고 이념과 목적을 박자에 실어 서로 다르지만 제목(한인동포들의 목표)만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가급적 듣기 좋고 부르기 쉬운 노래를 읊조리며 가사 내용에 흠취하여 노래를 통해 이민생활에 지친 육신과 영혼을 달래주고 싶다. 이웃들과 함께 부르고 싶지만 욕심을 내려놓고 가던 발걸음도 잠시 멈춰야 한다. 그저 다른 이들의 노랫소리에 경청하는 것이 부비트랩에 갇히지 않는 현명한 자의 선택이다. 또한 다람쥐 채바퀴 돌 듯 지나온 자신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상책 중 상책이다.

최영기/ 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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