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 지식인의 양심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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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조국, 조국.
웬지 서러운 느낌이 드는 이름이다.
온통 뉴스와 신문 일면 머릿기사를 도배한 이름이 무더위 만큼이나 국민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법무부장관 후보의 이름 두글자가 현직 대통령보다 더 유명새를 타고 있다.
분단 이후 통일의 희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이름이 조국이다. 그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잘난 아비를 둔 탓에 탱기충천한 기세로 대한민국의 학생들을 제치고 독주하는 그의 두 자녀가 부럽기도 하지만, 아비로써 마냥 서럽게 느껴지는 감정을 나 혼자만 겪는 것은 아닐 터이다.
스무살을 갓 넘어 처음 가 본 곳, 잡지.책이나 TV를 통해 보여졌던, 한번도 발을 디뎌 본 적이 없었던 서울의 거리, 휘황찬란한 불빛, 고궁, 우뚝 솟은 빌딩 그리고 웅장한 청와대! 그때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한번도 가 보지 않은 곳은 적어도 내겐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이런 억지 아닌 억지 논리를 스스로 펴면서 그때까지 못 가 본 서울을 나는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부인하고 있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그런 나라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주장 앞에 서있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지식인이 있다. 나 자신의 나이도 어느덧 인생고개를 넘어가고 있지만 그런 부류의 사람은 들은 적도 본적도 없다.
최근 쏟아지는 뉴스를 보며 탄식을 금할 길 없다. 아, 얼마나 무지몽매한 궤변인가. 그러나 나의 피끓던 스물의 젊음은 그 당시 서울이 마냥 부럽기만 했었기에 잠시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오히려 지방에서 살아온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고 여겨진다.
생전 처음 가 본 서울과 이민후 10년 만에 방문한 그곳은 내겐 엄청난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사람이란 이리도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위대한 존재인가 하고 그저 눈이 휘둥그레질 뿐이었다. 얼뜨기 촌놈의 어쩔 줄 모르는 표정, 그리고 이민생활에 지쳐 세상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개미처럼 일만 했던 미국 촌놈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서울 역시 사람사는 동네이다. 나도 그곳에 섞이면 섞이는 대로 그럭저럭 서울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다. 한반도의 심장부에 위치한 거대한 도시, 위낙 온갖 것들로 가득차서 숨이 탁 막힐 곳이지만 정작 고궁을 둘러보니 조선조 천도 이래로 갖은 영욕의 역사들 속에서 저리도 든든히 서있는 모습에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열렸다.
서울의 힘과 잠재력은 대단한 것이다. 서울은 한반도의 중심이자 민족의 심장이다. 그 누구도 천년을 더한 시리도록 아픈 과거를 품은 도시를 잊은 이는 없다. 도시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날로 기력을 회복하는 한강,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르는 고층빌딩, 어쩌면 영원무궁토록 뻗어 나갈, 어기차게 이어나갈 배달민족과 겨레의 너무도 명명백백한 빛의 근원지가 그곳이다.
이러한 민족의 가치를 지닌 곳이 지금 난장판이다. 빛을 잃어간다. 양분화 된 국민들의 서러움이 서울시청 앞과 광화문거리를 적시고 있다.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는 혼돈의 모습이 고도, 우리의 꿈, 오랜 국민적 염원이 담겨진 서울을 송두리채 저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어느날 불쑥 찾아올 통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쉽시리 총성과 포염에 휩싸일 곳 역시 아니다. 이제 서울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렇기에 지도자를 자칭하는 이들은 늘 깨어 자기를 돌아보고 조국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민족의 최후 보루인 서울이 타락한 위정자들로 붐벼서는 곤란하다. 무너져도 안된다. 그렇게 해외 동포들은 믿고 싶다. 서울이 푸른 하늘 아래 민족의 기상으로 드높아지고 누구든지 자유를 차등없이 누릴 수 있으며 세계 어느 도시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자랑스런 도시로 성장하고 보존되길 믿기 위해선 조국이 두 무릎을 꿇어 많은 국민들의 근심과 염려에 사과해야 한다고 본다. 자칭 지식인이고 고위공무원, 교수로써 자부심이 조금이나 남아있다면 국가의 미래, 국민들의 걱정을 해소키 위해 자기희생도 필요하다.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모든 평가는 역사에 맡기고 한걸음 물러나는 것이 현자의 덕목이다. 가족에게 돌아가 아비로써의 진정성을 갖고 자녀들을 보듬어 줄 때이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 누가 살고 싶을지 궁금하다. 미리 살아본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경험해 보았는지 이야기라도 해 주길 바란다. 국민들은 아직도 그런 파라다이스를 꿈꾸고 있진 않아 보인다.

최영기/ 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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