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인류는 누구나 한나라에 속해있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출생과 동시에 운명공동체에 속해 나라가 자연적으로 주어진다.
지난 광복절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기념사의 본 뜻은 무엇일까? 나라가 정치·경제·외교에 위기를 겪으면서 국가 원수로서 통감한 바를 밝힌 것에 대해 살펴보자.
내용인즉 “아직도 우리가 충분히 강하지 않고 아직도 우리가 분단돼 있기 때문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이루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고 본다.
이러한 언어적 표현은 현재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 사태로 인한 국민여론과 나라의 체면에 역사적 반감과 잔존감이 직접적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일본이 규제조치를 발표한 당일 비상국무회의에서 ‘다시는 지지 않는 나라’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결국 한일합방은 우리가 당파싸움에 빠져 내부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틈을 타서 일본이 침략한 불행한 역사를 우리정부가 직접 패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 당시 일본에 협조적이었던 많은 이들을 친일파로 불려지는 것을 반대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지난 역사 속에서 일본과의 갈등, 글로벌 경제전쟁, 확산되는 안보 불안, 북 비핵화의 불투명성과 도발 등 복합위기도 정부의 생각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역사는 주로 둘로 나누어 진다. 승리자의 기록과 패배자들이 교훈으로 삼기 위한 것으로 후세에 남겨진다.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를 연구·기록한 것에는 다소 굴곡이나 왜곡은 있었다. 충분히 이해한다. 역사는 잘못된 것도 역사이기에.
그러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아무나 쉽게 이룰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넘어야 할 높은 산과 견고한 장벽이 주변 열강에 의해 높히 가로막혀 있다. 보호무역주의라는 이름아래 세계화는 점점 예전 같지 않고 퇴보하는 시대흐름에 알 수 있다.
자신들의 국가를 흔드는 일에 세계 어느 나라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그런 나라는 당분간 없다’가 솔직한 표현이 아닐까.
현재 탈세계화 시대로 변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국이익 추구에 있다. 한인 이민사회 역시 마찬가지로 경제적 여유가 있을때엔 이웃의 어려움에 선뜻 도움을 주지만 정작 경제적 난관에선 주저하기 마련이다.
그동안 이어오던 이웃에 대한 상호우호적이었고 선의가 담긴 호의는 기존 질서 변화로 한계점과 병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즉 새로운 문화가 형성된다는 뜻이다.
이전의 세계화 시대에는 모두가 승자 되는 공생의 길(Win & Win)을 추구했지만, 포스트 세계화 시대에는 승자와 패자가 뚜렷이 구분되어는 것이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적군과 우군을 구별하기 어렵다. 이 점이 탈 세계화의 시작이라 봐야 한다.
이런 흐름 속에 중국, 영국, 일본, 러시아 심지어 미국까지 흔들리는데 한국만 홀로 버티기가 쉽진 않다. 기념사에서밝힌 위기의 탈출구로 선택한 ‘평화경제’ 와 북한 김정은이 자행한 광복절 다음날 쏜 ‘발사체’가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로 가기 위해 기본 방향설정은 우선 경제강국 건설, 강력한 안보, 평화경제의 의지로 표현되고 있다. 정작 외부 충격에 덜 흔들리는 나라가 되려면 정부정책도 그 방향에 맞춰야 한다고 본다. 경제강국의 핵심은 기업이고, 안보를 보장하는 것은 자주국방 실현 전까지는 한·미·일 안보구축이며, 평화경제의 전제는 북의 완전한 비핵화가 있어야 한다. 현실성 여부가 관건이다.
정치 일변도에서 벗어난 우리에게 맞는 한국형 토착민주주의와 경제발전, 그리고 평화정책이 완벽히 준비되어야 실현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준비된 나라, 준비된 경제, 준비된 지도자와 국민들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이뤄질 것이다.
먼저 해외에서 살아가는 우리들부터 통일된 한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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