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만사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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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무엇에 가치관을 가질지를 고민할 때이다.
지난 100년동안 이민사회는 어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여 왔는가, 그리고 편협된 사고에 매몰된 갈등들을 어떻게 풀어 왔었나? 그런 시점에서 공동체는 오히려 세대간의 간극을 좁히고 양분화 갈등에서 벗어나 보다 굳건한 민족의 정체성 확보를 가질 수 있었던 점을 잊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부터 나의 생각과 다른 이들을 무조건 배척하고 무시했던 정서를 쇄신하여 건전한 비평과 자기개발의 기회를 충분히 갖는 업그레드된 사회의 일원으로 나서야할 시대가 도래했다.
최근들어 이민사회는 갈등과 반목으로 넘쳐났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과연 무엇을 필요로 할까? 우리는 그저 생각없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만에 국한되어 제대로 된 역사의식 하나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급급한 나머지 현실에 대한 질문에 질문만을 반복한다면 이기적인 사회만들기가 될 것 같다.
이제 반목으로 점철된 개인의 이기주의와 경계를 넘어서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그래야만 갈등이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된다.
그동안 우리모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를 접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이젠 ‘어떻게 살 것인가’로 바뀌었다. 단순히 ‘나’만 생각할 것이 아닌 ‘공동체’가 어떻게 살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갈등과 반목의 사회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 시각장애인이 코끼리를 만지면서 어떤때는 기둥이, 또 다른 때는 벽이라고 말한다. 근데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의 말이 ‘틀렸다’고 비웃는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이 코끼리를 다르게 느꼈을 뿐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가끔 장님이 되어야하고 귀머거리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상의 벽을 넘어서기 어렵다.
이처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자세가 서로를 싸우게 만든다. 이런 갈등은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다. 갈등은 곧 진리를 드러내는 지혜이자 기회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고립되길 원하는 모양새이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동포지역의 환경과 정서, 문화의 이모저모를 직·간접적으로 수집하여 기록 및 분석에 관한 활동을 이어왔다. 별로 돈도 안되고 가끔 구설수에 올라 원치않은 오해를 받곤 했다. 어떤 이는 보수들에게 내가 이미 미운틀이 박혀있다고 넌즈시 알려주었다.
과연 누가 보수이고, 누가 진보인가? 하루에도 수 십번 생각이 변하는 것이 인간인데 말로 규정지을 수 는 없다. 지구가 둥글다고 말하면 공공의 적으로 탄핵 당했던 시대, 갈릴레오는 법정을 나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둥근데…”라고 혼잣말을 했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시 한인회관에서 애국집회를 진행하며 목이 터져라 애국가를 불렀고, 애국심에 동참하려했던 순수한 해외동포로써의 나의 노력은 누군가에 의해 헌신짝처럼 짖밟혀졌었다. 당시 구국성명문 작성을 위해 몇 일 밤을 지새기도 했으나 동포사회를 정치판으로 몰고가려는 몇 몇 사람들에 의해 2차 태극기집회에 사용할 성명문은 ‘손 안대고 코풀기’ 격으로 정작 초안을 만든 나의 이름을 삭제하고 무임승차하려는 몰염치한 그들의 행동들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이해가 않된다. ‘세상에서 가장 큰 도둑은 남의 글을 훔치는 일이다’라는 일이 현실로 나타났었다. 그들은 나의 글을 거의 강탈하다시피 하였고 급기여 내 이름을 삭제하는 몰상식한 말을 내뱉는 행동들이 나로 하여금 분노를 갖게 만든 이유였다. 지금도 그들은 뻔뻔하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없는 형편에 준비위원으로 모금에도 동참하였지만 결국 무시당하는 결과를 갖게 되었다. 단언컨대 그들은 갈수록 몰염치할 것이다. 그리고 처음처럼 그렇게 순수하진 못할 것이다.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나 집단이기주의로 빠진다면 문제는 겉잡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목소리 크고, 돈 좀 있다고 거들먹거리면서 자기이익과 지협적인 목적만을 이루기 위한 집단행동은 타인의 주목을 받기 어렵게 될 것이다. 나라사랑에 무슨 조건이나 자격이 존재하나? 또다른 ‘내로남불’이다.
혹여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그동안 향유했던 권력과 기득권에 대한 아쉬움과 명예 회복을 위한 식민사관의 잔재의식의 표출은 아닌지? 또한 그럴싸한 미사여구를 앞세워 허망한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결국 무너져 흉물처럼 보여질 수도 있다.
휴스턴 한인사회에 이상기류가 생겨났다. 전에 없었는 가짜뉴스와 편가르기, 보수 아니면 모두 좌파, 가진자와 양아치..등등 금새라도 터질듯한 시한폭탄 몇 개를 주머니에 넣어 다니면서 평소 사소한 감정을 가졌던 이들을 향해 숨어서 던지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율배반적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의 그들이 고맙다. 내가 알고 지내는 여럿 동포들도 바꿔진 환경과 관련해 걸핏하면 마구잡이식으로 싸우려 덤벼드는 그들이 이젠 싫어졌다고 말한다. 그들도 당당히 목소리를 높히자고 한다. 이구동성으로 ” 한번 당하지 두번 당하겠나?”라며… 이민 역사는 그렇게 매일 매일 쓰여지고 있다.
도대체 끝이 없는 모르는 말들을 마구 쏟아내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줄 믿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금새라도 전쟁이 날것처럼 공포와 위기감을 드 높혔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정작 대한민국 국민들은 관심조차 없다. 막상 전쟁이 난다면 나만 죽나? 전쟁을 도발한 그들의 운명도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호들갑을 떨며 사방을 난장판으로 몰고가던 여러 여론과 갈등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평정심을 차츰 찾아가고 있다.
만사를 신중히 해결하면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는 사실 역시 차츰 입증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그렇지 안은가. 내부로부터의 반전이 시작되었다.
어느 철학자가 쓴 글을 인용하자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섣불리 판단하지마라. 지금의 시련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일 뿐이다.”라는 말과 이웃을 대하면서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 가장 좋았다”는 표현이 동포사회에 절실히 필요할 때라고 본다.
우리 주변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있을 수 있지만, 누구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규정지을 순 없다.
하물며 한인동포사회를 반으로 나눠서야 되겠는가. 누가 무슨 권리로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방이 온통 넘사 벽(壁)으로 가득 둘러쌓인 동포사회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역사관의 부재이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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