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준 것 없이 미운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노여움이나 관심이 사라진다.
그러나 남에게 도움을 받고 안면몰수하며 자신의 몇푼 안되는 재주와 능력만을 믿고 남을 가르치려고하는 행위를 우리는 흔히 ‘배은망덕’이라 한다.
이와 반대로 물한잔이라도 얻어 먹은 후에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하는 ‘결초보은’이란 말도 있다.
이민사회의 수 많은 도움의 손길을 우리는 늘 잊고 살아왔다. 그저 누군가 후원자의 이름을 거명하면 정작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 “내가 언제 도와달라고 한적이 있냐?”며 딴청을 부리는 이들도 있다.
이민초기 물심양면으로 호의를 배푼 한 분을 이야기하려한다. 실명을 밝히진 못하지만, 당시 어려운 경제상황과 사방이 가로막힌 처지에서 베풀어준 일이 있었다. 이제라도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내 생에 다시는 그런 분을 만나지 못할 것 같다. 별다른 소득없이 그저 시급 몇 불로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중 닥친 청천벽력 같은 사고였다. 사태수습을 위해 정신을 차려보니 수중에 몇 달러 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발을 동동굴렸지만 방도가 없었다. 그때 이민초기부터 호형호제로 지내던 분이 자신이 운영하던 주유소의 하루 매상과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했던 기억을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간간히 들려오는 그의 사업 소식에도 마음 한켠에 ‘축하한다’는 말한마디 전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만이 가득하다. “남에게 신세를 지면 자유를 잃게 된다”는 격언이 있다. 과연 나의 자유와 양심은 어디에 두었는가? 자책해본다.
하물며 한 개인이 이웃에게 은혜를 입어도 이러할지언대 어찌 우리의 원죄를 대속한 절대자에 대한 믿음과 감사는 어떠한가?
은혜는 커녕 우리 민족 모두에게는 철천지 원수가 하나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제 36년간의 통치 기간중 우리 민족이 받은 핍박과 서러움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전쟁에 패한 그들의 식지 않은도발의 야욕을 무엇으로 이해해야 하나. 그들은 스스로를 ‘경제적동물’이라고 한다. 평온한 주일 아침 하와이 진주만을 죽음의 바다로 만든 일본인들을 역사는 ‘잔혹한 민족’이라고 표현한다.
요즘 그들이 자행하는 망상과 작태를 보며 어안이 벙벙하다.
마치 오고 갈때 없어 재워준 이웃집 어른 들에게 감사함은 커녕 오히려 온갖 값나가는 것을 훔쳐 야반도주한 도적과도 같지 않나. 그것도 부족한지 역사를 왜곡하여 넓은 바다에 점하나 찍어두고서 지금와서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모습은 아무리봐도 정신적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정작 대마도는 누구의 땅인가?
미국의 핵 앞에 모두 잿더미에 불과했던 때를 애써 잊어버리려 까마귀고기를 먹은 것은 아닐까.1945년 9월 2일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가 USS 미주리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한 사실도 아니라고 우길 것 같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앞에 ‘무조건 항복한다’는 말은 말은 거짓말이었나? 이젠 대놓고 군비증강에 안달하고 있다. 항복서명이후 혼란한 틈을 타서 조선의 국보급 문화재를 강탈하고, 잉크도 마르지 않은 가짜 화폐를 두달가량 마구 발행하여 우리 국가 경제를 어렵게 만든 몰염치한 희대의 사기꾼이 바로 일본이다.
이제와서 또다시 경제적 침략을 자행하는 진짜 속내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죄없는 조선인의 목숨을 앗아간 그들의 보상과 배상만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최소한 유태인의 무덤 앞에 무릎꿇고 눈물로 사죄한 독일총리의 진정성을 흉내라도 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일간의 외교관계가 화복될 것이다.
지난 20년전 선뜻 어려움에 사용하라고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이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어려운 사람들의 요청을 매몰차게 모르쇠 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이민생활에 있어서 크고 작은 도움을 이웃으로부터 받아왔다. 거의 40개가 되는 단체들은 매년 동포들로부터 후원금을 모으고있다. 그러나 신문에 결산보고를 하며 감사하다는 몇마디 문구만으로 떼우는 허례는 곤란하다. 내 돈이 아까우면 남의 돈도 아깝다.
우리모두는 부모로부터 많은 은혜와 축복, 희생의 댓가로 살아왔다. 나중에 다시 갚겠다는 마음은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받았던 혜택을 다른이에게 행해야 한다. 그것이 봉사이다. 아무런 조건없이 받은 은혜를 나만 갖고 살아가는 것은 비양심적 삶이다.
몇 해 전, 은혜 갚는 부엉이에 관한 얘기와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야기인즉, 한 사람이 부상당한 부엉이를 몇 달간 정성껏 보살폈다. 부엉이는 회복되어 날 수 있게 되자 매일밤 나가서 쥐나 박쥐 등을 사냥해 와서는 자신을 돌봐준 사람에게 계속 주었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자신을 길러준 나이든 양어머니에게 패악질을 하고 몇 푼 안되는 정부 보조금을 강탈하는 이들은 어쩌면 부엉이보다도 못한 것 같다. 한낱 짐승도 자신이 입은 은혜를 갚을 줄 아는데 짐승보다 뛰어나다는 인간이 은혜를 원수로 갚았으니 금수가 따로 없다
받은 은혜를 갚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도리이다. 그런데 그 마땅한 도리에서 더 나아가 원수를 은혜로 갚으신 분이 있다. 기독교에선 바로 하나님 아버지라고 한다. 성경에 따르면 우리는 본래 죄인이었다. 자신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의 죄가 극에 달하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로 삼았다. 구원을 받은 우리는 죄를 용서 받은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
요한일서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사랑으로 갚으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조국 대한민국이 있어 지금의 우리가 있다. 이제 살만하니까 정신줄을 놓고 온갖 정치논리로 국민들의 안녕를 헤치는 일을 한다면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이다. 적어도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그 은혜를 사랑으로 갚는 삶은 아닐지라도 내가족과 이웃, 나아가 나라를 송두리채 북한에 바치는 일만은 삼가해야 한다.
애국은 그다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나라가 잘못되어갈때 “아니다”라는 말을 자신있게 하는 것이 가장 애국자다운 삶이 아니겠나? 보잘 것 없는 나부터도 나라를 위해선 뭐라도 해야겠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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