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우리는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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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 사회는 옳은 것과 그른 것, 진실과 거짓, 합리와 비합리, 조화와 부조화, 화합과 불협,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 우성과 열성 등등 숱한 잘못된 표현의 범람으로 국민들이 많은 혼란을 경험하였다. 비록 정치만이 아니라 살면서 크고 작은 반대의견에 너무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형국이다.
이러한 현실적 난관 속에서 국가 경쟁력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드디어 일본은 대놓고 도가 지나치게 한국을 평가절하하는 망언들을 해댄다. 양국의 민족감정에 기름을 쏟아붙는 발언들이 연일 터져나오고 있다.
현재 한·일관계는 한마디로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로 밖엔 이해할 수 없다. 외교상 통용되는 언어 역시 캐캐묵은 지난 역사의 잘 잘못에 대해 자기 발목을 잡고 춤추는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을 미리 예견하지 못한 한국정부와 일본의 치밀한 우매함이 마치 막장드라마를 쓰면서 또다른 적대적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결국 열린사회에서 자국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통해 그들 본연의 침략근성과 우리가 예전 자기들의 속국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정신나간 행태일 뿐이다.
이에 대하여 열방국가들은 한쪽을 무작정 탓할 수 도 없다고 한다. 외교는 줄다리기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하나를 포기하고 둘을 얻는 기술적 기량과 경험부족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되새겨야 한다. 나라의 힘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다. 국제정치는 그저 그렇게 힘의 논리와 평행이론만을 고집해서 적대적 관계의 벽을 높게 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도 빨리 인식하고 대처하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외교에 있어서 매 순간 우리에게만 희망적이고 이익적일 것이라는 막연함을 가져선 곤란하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차분히 국론을 모으면 오히려 국가경쟁력도 커지게 된다.
유사이래 국제정치에서 상호 간극을 좁힐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들이 있어왔다. 국민 개 개인의 관계에서부터 경제·문화에 이르기까지 이제 ‘정글의 법칙시대’가 도래했음을 우리도 인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같은 사안을 두고 언어 표현에 있어 경제적 우위에 있는 국가의 말은 총보다 무섭다. 그도 그럴 것이 부드러운 표현의 외교언어보다 벼랑끝 교섭으로 명확한 현실적 판단을 필요하는 시대에 그동안 한국정부는 조금 안이한 태도를 보여왔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한다.
예를들면 한국은 지금까지 ‘이 것 아니면 저 것’으로 단순결정을 내렸지만, 일본은 ‘이 것과 저 것 그리고 무언가’를 내세우는 프라스 알파를 추구해 왔었다. 그리고 발빠르게 위기에 처한 국내정세를 다른 나라로 전환하는 테크닉도 자주 보여왔다.
특히 현대사회의 국제정치·사회·종교는 물론 교육분야에서 선진국의 힘이란 거의 무소불휘의 위상에 위축된채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은 베껴쓰기와 따라하기에만 몰입한다.
각 언론 매체들도 국내 여론을 무시한채 시청률과 여론을 위해 속보형태로 그들의 행태를 크로스 체크없이 앞다퉈 보도 함으로써 오히려 국민정서를 혼탁하게 했던 경향도 있다.
예전 이어령 선생은 일본인들을 ‘축소적지향인’이라고 했다. 새로운 것을 창조·개발하는 것보다 형태와 순서를 바꾸고, 큰 상품의 기능을 외형적으로 축소시켜 국제시장에 팔아왔다.
그리고 가급적 남성적인 케맄터보다 여성스러움을 앞세워 고객들에 선전하는 이유를 아주 자세히 설명한 적이 있다.
한마디로 순서를 바꾸는 것으로도 충분히 시장성과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한국의 TV드라마도 마찬가지였다. 내용은 뻔한 스토리인데 제목만 그럴싸하게 바꾸는 재주와 배우들의 대사를 조금만 변형하면 일시적으로 전혀 새로운 것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딸을 사랑한다”라는 대사의 순서를 바꾸면 “딸을 사랑한다 어머니는”, “사랑한다 어머니는 딸을” .
이렇듯 내용은 불변하지만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아리송하게 만들게 된다. 이러한 천재적인 재주를 가진 나라가 일본이다.
매년 4월이면 진해에선 벛꽃축제가 한창이었다. 인산인해를 방불케 했던 때가 있었다. 일본의 ‘사쿠라 꽃’을 보자. 향기 없는 꽃이다. 그런데 왜들 그렇게도 열광하는가? 꽃은 당연히 향기가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물론 향기가 없기에 벌레가 달려들지 않아 좋은 수목으로 인정받지만, 그래도 꽃은 향기가 나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외교정책은 소리소문 없이 진행된다. 마치 사쿠라 꽃처럼 냄새가 나지 않아 상대가 쉽게 속내를 알 수 없다. 독도영유권을 두고도 그랬다. 일본 역사책도 한동안 조용하다 싶으면 으르렁 거린다.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온갖 술 수로 이씨왕조를 철저히 유린한 그들이 아니었나.
역사는 말한다. 한번 침략한 적이 있던 나라는 반드시 재현하고자 한다고 한다. 그것이 군국주의의 부활이다.
평화우선주의자들은 늘 “세상은 부드럽고 아름다움만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찬미가를 부르며 배짱이처럼 살길 바란다. 보편적 시대에선 가능한 것이지만, 지금 지구촌은 보이지 않은 전쟁중이기에 틀린 말이다.
시대적 흐름을 잘 읽지 못하면 국가경쟁력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곤두박질 쳐진다는 사실을 이번 일본의 의도적 무역보복에서 확인되었다. 우리모두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결국 ‘좋은 것이 좋다’는 말에 매몰되는 사관으로는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그저 현실과 자의적인 즐거움에 만족하게 된다면 우리는 또다른 일본자위대에 침략에 의해 36년 간의 통치를 당하게 될 지도 모른다.
3.1운동 100주년인 올해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일본의 망언과 무역보복은 지난 날의 피비린내 나던 선조들의 주검이 우리 산천에 힘없이 버려진 슬픈 역사를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던지고 있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적기이다.
5천만 국민 중 애국자가 아닌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므로 모두 일어나야 한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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