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만나면 좋은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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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는 핑게가 쌓이면 인간관계는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대화없는 사회, 끊어져 버리 관계, 여기엔 동포사회가 ‘나보다 잘 난 사람을 만나면 재수없는 사람이다’라 생각하고 대인기피 현상이 보편적 사고로 확산되어 이상기운이 생겨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인사회는 집단 규범을 일탈한 사람에 대해 지적하거나 비판적인 말을 하면 오히려 가혹한 평가를 듣는다. 이는 규범을 어긴자는 합리적이고, 비평하는 자는 일탈자로 비합리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로 호도되는 경향이 짙다.
이유인즉,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에 대한 처벌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능력이 뛰어나면 튀는 사람으로, 정의와는 별개로 조직 내의 관례에 순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게중에 행동과는 달리 운이 좋은 사람, 재수좋은 사람은 승승장구까지 하기도 한다.
간혹 남들에게 ‘행운이 있길 바란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속내는 ‘내가 그 복을 가로채고 싶다’는 뜻이다.
평소 나는 ‘운이란 존재 하지 않는다’고 믿어 왔었다. 그럼에도 바보같이 매일아침 ‘오늘의 운세’에 의존한 적도 있었고, 평소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를 오고가면서 그저 있는 둥 없는 둥하며 ‘운’이란 한낱 기분 좋게 만드는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의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중 절반이상이 삶을 실패한다는 통계를 알고서 도 잠시 유혹되어 얼마간 돈을 낭비한 적도 있다. 금전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기자 주변에 싼 값으로 좋은 땅이나 건물을 사려고 인터넷을 뒤집어 보며 “나는 재수 좋은 사람일꺼야”라고 읊조리기도 했지만 결국 한 평의 땅도 사지 못했다.
우리는 늘상 ‘운’이라는 글자를 생각도 없이 내 뱉고,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연구한 주역만 믿고 살아간다. 결국 감나무 밑에서 잊을 크게 벌린채 세월을 허송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저 사람 참 좋은 사람이네’이 ‘저 사람은 억수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라는 말에 떠 밀리는 사회가 되어간다 뜻이다.
그래서 ‘뛰는 놈위에 나는 놈, 나는 놈위에 운 좋은 놈’이 우선시되는 역사가 되풀이 된다.
우리민족은 평소 유교의 영향을 받아 모든 불행을 숙명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삶의 불행과 자기의 운명을 그저 운에 맡기고, 좋지 않은 결과에 부모를 원망하며 눈 앞에 닥친 불행을 그만 쉽게 포기하거나 인정하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근대 기독교문화가 국민정서와 저변문화에 영향을 주면서 혼란한 시대를 극복하기 노력하는 지도자들과 그들의 공공을 위한 유익한 생각들이 이웃사랑을 통해 좋은 동네를 만드는 기반이 되어가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다행스러운 결과이다.
휴스턴 이민사회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과 고질적 문제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커피 한잔의 여유만 가지면 해결할 수 있는데 왜들 그렇게 각박하게 사는지 모르겠다. 결국 그만큼 이웃에 대한 벽이 높다는 의미이다. 좋은 이웃이 있어야 사회도 건강하다. 대한민국의 정치·문화·경제도 서로 허심탄회하게 차 한잔의 여유만 가지면 많은 것이 해결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극한대립 양상은 아쉬운 대목이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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