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도 힘든 세상에 무슨 감성 따위를 논하냐고 핀잔할지 몰라도 우리 민족은 기쁠 때나 슬플 때, 그리고 억울하거나 감사할 때면 어김없이 눈물을 보였다. 더우기 죽음과 이별 앞에선 목노아 울음을 터트린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조국이 걱정스럽다. 국회는 장기간 공전 중이고 민생은 뒷전이다. 특히 경기침체로 힘겨운 국민들의 눈시울을 훔칠 여력조차 없어 보인다. 울음조차 위법조치할까 두려운 까닭은 아닌지 모르겠다. 청년들의 꿈은 어떤가. 점점 뜨거운 여름 햇볕에 말라가고 있는 지금 그저 넑놓고 운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선뜻 해결되지 않아 보인다.
국민정서는 끝모를 골짜기에 몸을 숨기고 있다. 특정된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 멀리왔다. 나라의 안보 또한 국군의 사기에 달려있는데 장성들은 술판이고 일반사병들의 기율은 몹시 흔들리고 있다.
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샴페인을 성급히 터트렸다. 눈에 보이는 선진국 환상에 빠져 거품경제를 만들었고 급기야 “일단 잘살고 보자.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며 너도 나도 부동산 투자에만 올인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산업발전은 시장경제와는 다른 목표가 있어야 함에도 모두들 쉽게 돈버는 방법을 찾은 결과, 오늘과 같은 비참한 현실을 맞이한 것은 아닌가.
현실을 바로 보자. 우리 이민사회 역시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지는 현상 탓에 ‘중립’이란 말조차 사라졌다. 혹여 누군가 이 말을 끄집어내면 얼굴을 지푸리거나 면전에서 불온한 자로 낙인하기에 누구도 중도 입장 표명을 꺼리게 된다.
그동안 휴스턴 한인 이민사회의 이끈 지배집단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를 최우선적으로 대변하여 왔다. 그러므로 앞으로 중립이란 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말의 본 뜻을 올바로 이해해야 미래 발전과 번영, 진정한 화합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자고로 중립이란 어느 편이 아니라 늘 곁에 있었던 이웃들의 참 모습에서 나타나는 정겨운 조언이란 점을 잊어선 안된다.
요즘 한인사회에 ‘잘난 회장님들’이 넘쳐난다. 30여명을 훌쩍 넘는 지도자들의 잘못된 말 한마디가 동포사회를 흔들고 또한 후배들이 닮아가는 복사현상을 가져온다. 사회적 존경을 받아온 지도자와 회장님들의 배려가 특별히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눈쌀을 지푸리게 만드는 것은 정권이 바뀔때마다 동포사회를 편가르기하려는 일부 지도자들의 속내를 이해할 수 없다. 무엇을 위해 그런 모습들을 보이는지 모르겠으나 분명 복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한국 정치사를 되돌아 보자. 이명박을 밀어내고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은 청와대 인사들, 십방시, 문고리3인방 등의 다양한 별명을 가진 무소불휘의 권력에 휩싸여 왔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주군(?)으로 모셨던 분을 위해 그들 중에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마땅했으나, 누구도 그런 의리를 보이지 않았다.
현대판 환관들에 의해 국정 탈선을 거듭하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 역사는 진보는 커녕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듯 보인다. “더 이상 한국발 뉴스를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는 동포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날 자신들을 적극 지지한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당시 환관들은 지금 거의 구속되거나 좌천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들만의 잔치는 그렇게 막을 내리는 것일까.
조국을 사랑하는 수 많은 해외 동포들은 이 점에 가슴을 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으나 저들은 안중에는 없어보인다. 8.15 기념일에 목이 터져라 불렀던 애국가의 근엄함은 한인회관 문을 벗어나 몇 몇 인사에만 국한된 항쟁의 표적으로 자리매김했고 본 뜻은 사라진채 도대체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나.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우리 모두는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원한다고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난 2년간 뼈저리게 경험했다.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텍사스 애국동지회와 휴스턴 청우회만이 힘과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일반 국민들과 달리 복잡한 자기들만의 계산방식으로 행보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이제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기득권 언론의 힘이 빠졌다. 누구를 일방적으로 밀어주고 이끌어 줄 힘을 상실한 듯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 나라의 안녕과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높히기 위한 합리적 보수는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하는가?
지난 대통령 탄핵표결에서 보았듯이 정체불명의 정치논리와 힘에 이끌려 자신들의 뿌리와 입지를 포기한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국민여론(?)에 휘둘려 작금의 상황을 만들어 놓고 말았다. 자유민주주의의 정당성은 어디로 갔는가.
광복이래 우리 정치인들의 기존 양식과 본질은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특히 그들은 집단 이기주의와 당리당략만을 일삼았고 일반 국민들은 급기야 이를 닮아가기에 이르렀음에도 어느 누구하나 자기 잘못을 시인하기는 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았음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사필귀정이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절대로 내려놓지 않는다. 더우기 당의 이익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경제, 교육과 복지를 표명할 뿐이다.
선진 민주주의를 이루려면 아직 멀었다. 하물며 민주주의는 커녕 자유에 대한 정확한 인식조차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치철학의 부재에 눈물겹다.
한국은 미국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여 왔다. 현지에서 생활하는 수 많은 한인들은 초기에 한국식 사고로 미국민주주의와 법률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과연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무조건사회적으로 폄하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절대 아니다. 어느 사회나 지배계급과 피지배 계급이 존재하고 형성된다. 그 과정이 민주적이란 점이다. 좌파적 가치 추구는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여 불평등을 주장하며 생겨났다. 그리고 그들은 제대로 된 기득권을 한번도 가진 적이 없었기에 적퍠청산과 과거사조사에 작심이나 한 듯이 행동함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돌이켜 보면 진보적 자유주의에 가까웠던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도 IMF 환란을 극복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구축하느라 좌파적 가치의 구현에는 상당 부분 한계를 보였었다.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좌파 신자유주의에 가까웠고, 최악의 복지를 한두 단계 끌어올리는데도 기득권의 저항에 힘겨워했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달리 세습되지 않는다. 현재의 불평등과 차별성은 국민모두의 몫이다. 이 점이 되돌릴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면 결국 국민적 저항력이 모아지고 정권은 교체되었다.
대한민국호(號)가 ‘자유’라는 항구에 안전히 정박하려면 국민들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높히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자유와 평등을 삶의 가치로 여겨온 국민들을 역주행시키는 일만은 삼가해야 한다.
그동안 힘겹게 구축한 한강의 기적을 아무런 절차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위법처리하고 민주주의의 이념을 휴지조각처럼 쓰레기통에 처박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까지 안전불감증 치료를 방치한 위정자들은 대오각성하여 다시금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대란, 민주를 내세운 집단이기주의적 행동과 테러, 치욕적인 외교협상, 절차를 무시한 법 강행 등은 없어야 한다.
이 세상에 인간의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다. 침몰하는 한국호(號)를 다시 살리려면 보수나 진보 모두 내부로부터의 혁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나라의 명운을 생각한다면 좌중지란만은 삼가해야 한다. 집안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손님이 방문하면 잠시 멈추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나.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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