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
교언영색으로 가득한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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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은 핵무기를 가지고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우리 국민을 위협하는 전쟁놀음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나 역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금까지 동포사회는 물론 그동안 정책에 대해 하고픈 말이 많았다. 한국발 뉴스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그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때 그때 감추고 축소하고 과장하고 모르쇠로 지극히 정치적 권모술수라고 보여져 안타까웠다. 현 정부에 대한 신뢰감은 이미 물건너간 것 같은 경향이 동포사회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에 동포사회 역시 여기저기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말들을 열심히 퍼나르는 일에 노고(?)가 큰 이들 또한 다소 성급해 보인다.
사실,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왜 북한은 핵을 가지고 술래잡이 놀음에 빠져있을까? 북한 동포들은 별로 좋아도 관심도 없는데. 핵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만큼 미국과 국제사회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대응책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 국내 정치가 협치는 커녕 정쟁 속에 빠져 허우적 거릴때 이미 북한은 교묘하고 은밀하게 전쟁준비에 방점을 핵으로 찍었다.
‘정보부재’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국가정보기관은 허를 찔렸다. 최근 무혐의 처리된 박대장의 말처럼 “정치인들이 평화를 말할때 군은 전쟁을 대비해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헛말이 아님을 알았다.
우리사회는 평화에 대한 접근 방식을 잘못 인식하여 왔다. 많이 빗나간 경향이 있다. 진정으로 국민의 안위와 국가가 지향하는 정책을 위한다면 먼저 내부 단속과 결집력이 우선되어야 하나 이 또한 간과한 것이다. 무조건 정권을 잡고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흑백논리로 국민들을 유린한 수준낮은 한국정치의 성적표이다.
이민사회도 마찬가지다. 그저 빈깡통의 요란한 소리에 빠져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눈뜬 장님처럼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마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었다.
우리 역사에서 국가와 사회의 부조리와 부조화는 다소 차이가 있어 왔다. 지도자가 역사 앞에서 국민들에게 경종을 울리려면 어느정도 자기희생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음도 인정해야 한다. 공직자들에게 ‘공직은 천직’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사명감’은 지녀야 하는데 이것 역시 실종한 상태다.
통일에 대한 공청회나 포럼, 세미너, 기자회견, 토론회 등등 수 없이 많은 방법과 방안이 있었고, 국가 헌법기관과 자문기구들이 수 없이 많았지만 무용지물이고 당리당략에 급급한 정당들… 한마디로 구조 자체가 총체적부실로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 ‘한국음식 알리기를 해 왔다. 사실 우리의 전통음식은 주로 숙성요리(slow cook)이다. 직화요리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육류섭취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비빔밥은 그렇지 않았다. 보리밥 한그릇에 이것 저것 남은 야채반찬을 넣고 참기름과 고추장 한 숫가락 넣어 비벼먹는 재미면 국민들은 모두 만족했다.
그런데 지금 여러가지 섞힌 미사일로 국제사회를 교란하는 김정은의 전쟁연습을 보니 씹을 때 마다 다른 느낌과 맛을 전하는 비빔밥 생각이 절로 난다. 현 정부가 무한정 퍼주고 양보하고 배려한 결과가 빚좋은 개살구가 되어 돌아 온 것이다. 중국 방문 중 혼밥을 한 대통령, 판문점 군사분개선에서 김정은과 맞잡은 손, 공동성명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기념식은 나홀로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누구의 탓으로 돌리자는 것은 아니다. 이미 알고 있던 비빔밥 그 자체였다.
천하통일의 꿈에 빠진 나폴레옹이 망한 이유는 정확하지 못한 목표설정과 무모한 자기집착으로 인해 많은 부하들을 추위속에서 방치하였고 그들은 아무런 이유없이 얼어 죽어갔다. 그리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불가능’이란 말을 가장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자기 탓인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주 남의 말을 하고 또 속단적인 평가를 즐기듯 살아간다. 솔직히 이야기 해보자. 남을 평가하거나 비판할때, 그들의 인격과 자유를 침해한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있는가? 사실 여부도 올바로 확인하지 않은채 자기 주장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아군·적군을 구별하지 못하고 마구 총질을 하면 영웅이라도 되고, 우리 한인사회와 국가가 눈부시게 발전할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 참으로 어리석다.
옛부터 공자는 모름지기 사람을 기용함에 있어 공평한 평가기준이 있었다.
그가 말하는 ‘인자’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어진 사람으로서 능력이 뛰어나고 품행이 좋은 사람을 뜻한다. 인자인지 아닌 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교언(巧言)과 영색(令色)을 말했다.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 즉 “교묘한 말만 하고 보기 좋은 낯빛만 꾸미는 사람치고 어진 경우가 드물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세치 혀로 남을 기만하고 무엇보다도 교묘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고 경고했다.
본래 말이란 ‘마음의 거울이고 속알갱이’이다. 그래서 자고로 말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 보면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말은 인격이자 영혼이다. 인간 모두는 만물의 영장이기에 학식의 고하를 막론하고 상대방의 진실성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러면 교언(巧言)은 어떤 말일까. 과장된 말, 허황된 말, 거짓된 말들이 여기에 속한다. 진실성이 결여된 말은 교언이라고 할 수 있다. 과장된 말은 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허황된 말은 진실성이 의심되는 말이다. 허풍을 떠는 사람들도 자주 보게 된다. 무언가 불안해 보인다.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본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말들은 쉽게 분간이 된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말이 교묘한 말 또는 그럴듯한 말이다. 아마 사기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면 교묘한 말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대화를 나누고 나서 무언가 아쉽고 찝찝한 마음이 들면 교언이라고 할 수 있다. 진솔한 말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만 교묘한 말은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유쾌하지가 않다.
다음으로 영색(令色)이란 무엇일까. 얼굴과 몸짓에 나타난 표정을 말한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고 무언가 지나치거나 불안한 마음을 심어 주면 영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말이 중요하다. 그러나 말 못지 않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얼굴빛과 제스처를 비롯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넘치면 부족함보다 못하고, 인간이 철들면 곧 죽는다’ 속담처럼 어색하고 민망한 느낌을 주어서야 되겠나.
요즘들어 동포사회 지도자들 가운데 일부는 자기포장에 열정을 쏟고 있다. 속내를 숨긴채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포장 기술에 돈과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조언컨대 자기반성에 투자함이 옳치 않을까? 아무리 당신들이 행했던 지난 과오가 잊어져 간다고 해도 아직은 자숙해야 할 기간이 조금 남지 않았나.
교언영색의 의미는 오늘날 위정자는 물론 동포사회에도 되새겨야 한다. 세대교체가 한창 진행중인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수용이 불가피할지도 모르지만 차기 국정을 운영할 지도자와 동포사회 지도자만큼은 반드시 가려서 추천하고 선출해보자. 지도자를 선택함에 있어 먼저 덕목도 중요하지만 먼저 인품을 살펴야 한다. 평가기준이 어디에 있느냐에 달리 해석될 수는 있지만 좌고우면하지 않는 뚝심있는 인사면 된다.
요즘 이민사회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정직, 친절, 섬김, 배려라는 말보다 ‘성공=부자’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은 아닐까? ‘장사꾼과 부자들의 분비물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을 잊지 말자.
교언영색 (巧言令色)으로는 결코 남을 감동시킬 수 없다. 순진한 사람이 바보취급 받는 세상일지라도 지도자만큼은 그래선 안된다.
내가 사는 휴스턴 한인사회 지도자들은 그동안 무엇이든 열정을 가지고 잘해왔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유지와 보수’가 상실되고 있다.
한 예로 대한항공 휴스턴 직항 유치가 확정되자 부시공항에서 저마다 자신들의 업적이라며 얼굴을 내밀었던 인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용두사미이다. 혹여 말바꾸기의 달인을 꿈꾸고 있지는 않은지? “내 탓이 아니다. 아니면 그만이지…”라며 말의 끝을 흐리고 있다. 그리곤 슬그머니 또다른 무대위에 서려고 껍질만 남긴채 흔적없이 사라진 것처럼 보여진다. 그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하여 잠시 몸을 숨긴 것이다. 또다른 비빔밥을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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