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누구를 위하여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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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한인사회에는 내가 경애하는 벗이 여럿있다. 그들의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만나면 기분이 좋은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내겐 있다.
십 년 전일이다. 막내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매일 차로 등교를 하던 중 하루는 친구랑 걸어간다고 했다. 걸어가기엔 제법 먼 곳이었지만 뭔가 좋은 일이 있는 듯 했다. 어릴 적 친구들과의 남다른 우정을 생각해보니 벗은 돈으로도 살수가 없다는 점에서 나도 선뜻 공감하여 부쩍 자란 아이가 대견스러워 그렇게 하라고 했다.
며칠 후 저녁 식탁에서 아내로부터 뜻밖의 이야길 들었다. 아이가 ” 엄마, 방과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이스크림을 두개씩 공짜로 먹을 수 있어요.” ” 어떻게?” 아이는 자랑이라도 하듯 “친구들이랑 집으로 오는 길에 쇼핑타운 어느 미국 식당이 있는데 공짜로 아이스크림(free service)을 먹어도 된다고…” “에이, 그런 곳이 어디있어?” 아이는 조금 흥분한 듯 말을 이어갔다.
“정말로 그런 곳이 있어요. 식당 입구에 그렇게 써 붙어서 호기심에 들어 아이스크림을 셀프로 먹었는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반신반의하던 나는 며칠 후 그곳에 가서 확인한 결과 아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순간 이익을 추구하는 식당이 그렇게 무료로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준다면 뭐가 남겠는가. 하지만 그 곳은 식당을 찾은 손님에게 한하여 제공하는 서비스임에도 아이들의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싶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 다음부턴 주인에게 반드시 물어보고 먹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늘 서연치 않던 마음이 들어 한번은 그곳 주인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전할 겸 식당을 찾았고 때마침 메니져와 이야기 를 나눴다. 먼저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자초지정을 말하니 그도 알고 있다고 했고 오히려 자기 식당을 찾아온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다며 ” 괜찮습니다. 언젠가 그들은 미래 우리 식당의 고객이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 이야기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훈훈한 시골 인심과 사람사는 향기가 짙어 매우 감동적이었다. 만일 내가 그곳에서 일했었다면 방과 후에 여럿 아이들이 와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가는 광경을 보고 어떻게 행동했을까. 아마도 아이들을 호되게 야단쳤거나 아니면 당장 ‘식당 이용고객에 한하여(customer only)’라고 써 붙였을 것이다.
세상은 공짜가 없다고 했다. 틀린 말일까? 그렇다면 “호수의 물은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일까?” “공원의 잔디는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일까?”
“도로는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일까?” “학교는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일까?” “정부는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일까?” 끝으로 “세상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그런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에 비춰진 세상과 따뜻한 배려심을 가진 좋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유토피아를 나는 꿈꾸고 싶다. 건강한 육신과 정신이 잘 지켜진다면 세상풍파에 찌든 각종 사회문제와 범죄,정신질환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 생각해보자 “나는 누굴를 위해 살고 있는가?”
지난 십 수년간 휴스턴 동포사회엔 구조적으로 없는 것들이 꽤 있다. 우선 ‘혁신과 실력, 공정과 협동’이 없다. 인심 또한 바닦으로 떨어진지 오래다. 이민1세대들은 매일 한국정치판에 쏠려 제자리 걸음을 하는 동안 타민족과의 경쟁력은 떨어져 간다.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또한 동포들이 함께하는 공동체 참여행사마져 서서히 줄어들고 거의 젊은이들은 저마다 끼리끼리이다.
일부 사람들은 자기 잘난 덕에 동포들 중 몇 몇 을 특정지어 마녀사냥마져 펼치고 있다. 담장 뒷편에 앉아 자신들이 지닌 재력과 경험을 무기로 숫자놀음하고 때론 확인되지 않은 거짓 뉴스에 의존하여 자신들을 추종하는 상대를 고르기에만 분주하다.
마치 자신들의 말이 곧 동포사회의 법인양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걸핏하면 상대를 향해 ‘정적’으로 취급하고 여의치 않으면 가차 없이 좌빨·친북·진보로 몰아부치고 ‘나쁜 놈, 인간이하’로 몰아가기도 한다. 보다 못한 한 친목단체장은 인사말에서 우리는 봉사와 기부는 하되 우리들을 편향적으로 매도하거나 거짓으로 여론을 조장한다면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그냥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관심은 누구에게나 허용되나 간섭은 누구에게나 불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정확히 토로한 것이다.
내 편의 불법과 망말은 모른척하며 상대편을 향해 터무니 없는 주장으로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 간다면 어느누가 가만히 있겠는가.
우리의 지난 역사는 내부의 갈등과 분열로 인해 국가 방호벽 자체가 허물어졌다. 수 없이 자행되어 온 음모와 시기, 질투에 눈먼 당파싸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부와 치부 등등이 역사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도 자기편엔 한없이 관대한 편애와 변덕이 죽 끓듯한 정치인들의 언행과 품행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민생활하기 참 어렵다. 누구를 위해 사는지, 무엇에 삶의 가치관을 두는지 몰라도 어른이며 어른답게, 지도자면 지도자 답게 처신하고, 주인이면 손님이 왕이어야 한다. 아이스크림을 아이들에게 웃으며 줄 수 있는 작은 친절함은 이민생활에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이지 않을까.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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