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 더 큰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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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단심(丹心)에서 삶을 찾아야 한다. 살면서 사랑하기 위해 때론 울고 불고, 얽힌 삶의 굴레속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 순간 순간에도 최선을 다한다면 삶의 진부한 의미를 찾는 날이 속히 올 것이다. 사실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것이 선한 본성을 지닌 인간이다.
옛 성현들은 한 조각의 붉은 마음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변치 아니하는 마음을 일컬어 ‘일편단심(一片丹心)’이라 여기며 평생 네글자를 마음에 품고 실천하며 살아왔었다.
노랫말 단심가는 “내안에 날 차마 버리지못해 얼굴에 부딛히는 바람처럼 울었죠 / 그댈위해 나를 버리신게 하늘의 뜻이라도 나 원망하지 않아요 / 부디 잊지말아줘요 / 내사랑보다 큰 세상 가졌으니…” 라고 시작되어 우리 삶에 잔진한 울림을 전해준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이웃이 미워진다면 그것은 자신의 욕망이 강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나의 욕심이고 배려인지를 살펴 보는 여유 또한 가져야 한다.
나라를 지키겠다고 노후를 이끌고 끓어오르는 가슴을 움켜쥔채 거리로 나서는 시대적·정치적 항거들을 볼때 존경심마져 든다. 그들은 분명 무언가 확고한 가치관을 가졌기에 그렇게 행동하는 양심을 보인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과연 보수는 뭐고 진보는 뭘까. 결론적으로 ‘보수’는 국가와 국민이 쌓은 성과와 유산을 지키면서 사회의 안정을 우선하고자 하고, ‘진보’는 국가와 국민이 더 나은 길로 나아가려면 유지보다는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다소 상반된 주장과 가치관을 갖고 있다.
현대사회는 보수와 진보가 함께 공유하지 않으면 서서히 퇴보할 것이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국가는 기업과 개인의 경제활동, 국가 간 무역 등 시장경제에 간섭하지 않고 각 경제 주체의 자유경쟁을 보장한다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 재화가 효율적으로 배분된다고 했다. 서양의 맹자다운 주장이었다.
그는 영국의 곡물세 등 주요 관세 철폐를 이끌어 자유무역과 자유시장 경제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되어왔다. 보수주의가 국가의 시장경제에 대한 간섭을 줄이고 경제 주체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애덤 스미스는 보수주의 사상의 핵심 인물이다.
애덤 스미스가 지금 한국의 농촌상황을 둘러봤다면 쌀 관세율 513%를 어떻게 말할까.
현시대에서 애덤 스미스는 보수주의자인데 그가 살았던 시대에도 보수주의자로 평가받았을까. 당시는 고율 관세와 무역 독점권을 인정하고 국내 산업을 보호해 국가의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는 ‘중상주의’의 시대였다. 관세 철폐, 무역 독점권 폐지를 주장한 애덤 스미스는 오히려 진보주의 선봉자였다.
보수와 진보, 두 사상의 지향점이 ‘사회의 발전’이란 점에서 절대적으로 구분지을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떤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한 군부세력의 독재 위협에 저항한 5·18 민주화운동은 진보에만 가치 있을까? 오히려 보수주의 가치를 보여준 것이라 본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것에 정치·사상적 가치를 따지고 더 큰 세상을 만들어 가려면 한번쯤은 깊이있게 생각해야 한다. 단언컨대 5·18 기념식은 ‘추모식’이다. 이를 두고 보수와 진보가 달리 생각한다면 상식 밖의 일이 아닌가.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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