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 기다릴 줄 아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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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카톡이나 메신저를 통해 하루에 수 십 통씩 편지가 온다. 처음에는 내가 모르는 새로운 소식들을 접하고 무척이나 감사했었다. 어떤 때엔 ‘세상에 어쩜 이런 일이 있나’하고 조금 흥분되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갈수록 검증되지 않은 정보는 홍수가 되어 익사하기 직전까지 갔다. 대개는 ‘자기들만 아는 정치적 음해와 사회를 혼탁하게 만든 장본인이 누구다’라는 등등 금방 가슴을 뛰게 만들어주고 좋은 소식으로 이민 생활에 지친 영혼을 맑게 만드는 편지가 많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여태까지의 것하고는 다른 의도한 목적을 담은 것들로 시도때도 없이 스마트 폰을 울리고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 소식을 보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세상을 원망하고 상대편을 시기·질투·음해하는진 몰라도 너무나 무책임한 말들로 가득하였다. 편지 내용을 살펴보면 직접 작성한 글도 아니고 인터넷 상에 떠돌아 다니는 좋은 글과 속보형태의 글을 복사하여 보낸 것이 대부분이었다. 왜들 이러나?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고 주인없는 글이라고 착각하여 마구잡이로 배껴 쓰면 그만인가?

필자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 시절 학교생활을 했다, 그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는지 스스로 자문자답한 결론은 “나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최소한 상대를 향한 비방보단 칭찬을 먼저 했었고 금방이라고 목구멍에서 욕지거리 섞힌 말을 내 뱉고 싶어도 한번은 참을 수 있는 습관을 가졌다.

그런데 이곳 휴스턴 한인사회는 인내의 부재 현상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넘쳐난다. 욕을 입에 달고 살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고 많은 말 중에 상스럽고 덕망과 품격이 없는 말을 해야 자신의 입장이 세워진다면 당장 돈이 들더라도 배우고 싶다.

애써 이민와서 땀흘려 가꾼 이민사회엔 절대로 ‘그런 인간들이 있을 턱 없다’는 확신을 가졌으나 이제 나부터 그 신뢰가 서서히 무너지는 것 같다.

사실 휴스턴 이민사회에선 한국정치에 별관심 없는 듯 보인다. 점점 동포들이 고국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는 이유가 ‘현 정부의 부실한 정치 탓’으로 돌리거나 정치적 담론을 이유로 확대 재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재지변까지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이용하는 꾼들의 모양새가 마치 관동대지진의 원인이 조선인들 때문이었다고 말했던 일본인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나. 몇 년 사이에 대한민국은 너무나 큰 아픔을 치뤘다.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세월호 침몰, 대통령 탄핵과 북한 김정은의 핵미사일 등등… 세간의 이목을 한반도로 집중시키는데는 성공적이었는진 몰라도 뾰족한 해결방안은 아직까지 없다. 통일로 가는 길이 ‘머나먼 다리’가 되지 않기 바란다.

기다릴 줄 몰라 성급한 발언으로 무리를 일으켰던 사례를 보면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던 정동영 의원은 “60~70대 이상은 투표하지 않아도 된다…곧 무대에서 퇴장할 분들이니 집에서 쉬셔도 괜찮다”고 했다가 대국민사과를 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2011년 무소속 박원순 시장 후보 멘토단에서 활동활 당시(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절) 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부모(어머니)에게 여행을 보내드리겠다고 하는 트위터 이용자에게 ‘효자’라고 치켜세웠다가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로부터 “학생 가르칠 생각은 않고…패륜적인 발언이나 옹호하는 분이 지성이라니 ‘쯧쯧’”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정동영 발언보다 더 심하다는 비난도 있었다.

20대 청년의 보수화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과 이데올로기를 포함한 진영논리의 틀로 규정시기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지금 일용할 양식을 걱정해야 하는 백만원도 채 되지 않는 세대들이다. 이런 형국에 무슨 정치적 놀음과 편가름, 흑백논리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일자리 상실, 금수저와 흙수저로 상징되는 사회 양극화로 인해 고착화된 불평등 시대, 미래의 불확실성이 청년들의 인식을 온통 지배하고 있다.

21세기 한국을 지탱할 그들은 취업과 결혼, 출산을 이미 포기한 듯하다. 이른바 ‘삼포세대’를 넘어 모든 희망을 유예한 ‘N포세대’란 말이 왜 나왔겠나. 냉정하게 보면 지금 20대는 일자리와 일을 놓고 베이비 부머 아버지 세대와 경쟁을 치열하게 벌여야만 하는 실업자 양산 세대다. 승자독식의 고도·천민자본주의의 희생양일지언정 정치과잉의 ‘꼰대식 사고’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신인류이기도 하다.

20대 청년에 대한 무지와 무식은 세대교체에 의해 해소돼야 한다. 정동영의 언사를 그대로 패러디하면 설훈 의원처럼 60대 후반에 다다른 이들은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지금까지만 해도 많이 해먹었으니 20대 청년들에게 미련없이 자리를 물려주라는 말이다. 물론 유치하지만 정치인들은 약삭빠르게 인용하고 조치를 취할 것이 분명하다.

얼마전 대통령이 배석한 시민단체 초청간담회장에서 청년대표가 울음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가련하고 안타깝다.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청출어람의 꿈을 꾸며 부모님의 희망까지 등에 진채 캠퍼스에서 수학한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청년실업의 벽은 너무도 높고 높기만 하다.

며칠 전 통일부 장관에 임명된 김연철 장관은 ‘CEO 초청 조찬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고만 말하지 말고 아세안 국가를 가보면 ‘해피 조선’을 느낄 것”이라는 생뚱맞고 ‘조폭 CEO’적인 말한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대책 없는 갈라치기가 만연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몇 몇 정치인의 입에서 나옹 그저 장미빛 공략에 운명을 맡기기엔 불안하기까지 하다. 따라서 우리 이민사회만이라도 자정의 노력이 절실하다. ‘싸우는 며느리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다. 극단적인 정치 이야기와 초극단적 욕망과 상스러운 욕설을 삶에서 털어버린다면 좋은 사회가 속히 올 것이다. 마치 진실이 소리없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듯이…

어떠한 경우라도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동포들을 한인사회에서 소외시키고 홀대해선 안된다. 소위 잘 나가는 사람만 우대받는 ‘부자 패싱론’이 이민사회에 전파되면 모든 것이 끝난다. 무대 위에 선 단체장들은 말끔히 차려입은 양복보다 잘 가춰진 인격과 교양미 넘치는 지혜가 필요하다. 앞에선 거들먹거리고 뒤에선 남을 허위비방하며 그저 좋은 차,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살겠다는데 말릴 재간은 없다. 해서 손 벌리지 않을테니 제발 조용히 혼자 그렇게 살아갔으면 한다.

더 이상 한인사회와 동포들을 갈라치기 프레임에 가두지 말라. 기다리는 미덕이 절실한 시대이다.

최영기/ 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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