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포사회에서 가장 이슈로 등장한 단어는 ‘정치’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복잡한 계산이 저변에 깔려있어 한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이민사회를 흔들고 있다. 정치에 몰입하면 너와 내가 확연히 구별지으며 가족과 소속된 조직을 갈라놓는다.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동안 꽁꽁 숨겨왔던 자기색깔과 성향, 그리고 주장들에 따라 각자도생하기 마련이다. 분열의 총성이 울려퍼진다.
진보, 보수니 하는 용어들은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시대적 상황에 따라 남다르게 해석되어지고 또 꼬리표가 붙여졌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적 평가에 따라 호불호가 있다. 이승만은 나라만들기, 박정희는 나라살리기로 명명된 가운데 그들은 일본제국주의에서 해방되고픔과 가난한 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해 둘 다 초극단적 진보주의를 통해 건국과 새마을 운동을 추진했었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향상된 삶의 개선이 있어지만 반면에 자신들의 집권시기 동안 정통 민주주의와는 다른 계몽주의적 사관에 입각한 시대적 시행착오 역시 남았었다.
대통령을 받드는 일부 가신들의 사리사욕과 차기 대권을 이어받기 위해 무수한 불·탈·편법성 공작도 함께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소 인권유린도 있었음이 우리 근대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러한 정황들로 하여금 당시의 시대적 암울함이 국민정서에 크게 작용되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역사의 빛은 늘 어두움을 동반하였다.
그렇다면 해외에서 살아가는 한인동포들의 정치적 사관은 어떤가. 보수주의를 추구하는 이들도 사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별도로 이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복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채 익지 않은 민주주의에 대한 자기합리화와 배타적 정치관을 갖기도 한다.
이민사회에 흐르는 정서를 다른 말로 이민문화라고 본다면 이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에 대한 향수가 합쳐져 시시각각 편리에 따라 불편하면 미국식으로 애매모호하면 한국식을 따른다. 정치적 설명이 부족하면 그저 ‘애국심과 충성’이란 말 한마디로 모든 사상적 사관을 일축시키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고국을 사랑하는가. 평소 우리 문화와 역사, 경제는 뒷전이고 오직 정치만을 앞세우는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정작 고국에 두고온 가족들은 오히려 해외에서 일어난 재난적 사건을 뉴스를 통해 애타게 걱정하기도 했었다. 불과 10년전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정치보단 먹을 거리 걱정, 자식 교육문제가 최우선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좌우를 살필 여유조차 없었다. 다행히 초기이민자들은 우리 민족 특성상 성실과 근면성으로 승승장구하여 타민족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 그들은 이민 초기부터 계획적이거나 동포사회 일원의 상호협의에 의한 활동이 아닌 자발적인 활동이었다. 명절이나 자신들의 종교활동을 통해 이웃과 음식을 나누고 출향지에 따라 서로 정을 나누는 정서가 주를 이루었던 점을 볼때, 정치로 인해 이민사회가 구축되었다는 기록은 100년 이민역사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민족 고유의 문화르루지키는 소수 외엔 경제적 이유로 인해 역이민현상까지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때 이제 먹고 살만하니 삶이 곧 정치인냥 모두가 정치인으로 둔갑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모두의 관심이 정치판으로 기울어지면 “소는 누가 키울것인가?”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한국속담에 우리 민족은 ‘둘 이상 모이면 정치·군대 이야기가 시작되며 셋 이상 모이면 단체가 만들어 진다’고 했다. 모두가 시사평론가·정치 패널들이 되어가는듯 보여진다.
역사와 여론은 그렇게 깊이 없이 얼버무려 기록되거나 만들어져서는 곤란하다. 역사라는 수헤바퀴는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있다. 경제나 철학, 문화 없인정치가 쉽게 홀로설 수 없다.
오랜세월 동고동락한 지인을 일컬어 ‘친구(親舊)’라고 한다. 어렸을 적 친구가 오래 간다고 했다. 그 친구는 총각교(總角交)다. 총각 시절에 맺은 친구다. 죽마고우(竹馬故友)도 잘 알려진 말이다. 대나무 말, 竹馬 자체가 어렸을 적 친구를 뜻하기도 한다. 나이가 크게 차이가 나면서도 친구로 맺어지면 망년교(忘年交)다. 나이(年)를 잊는다(忘)의 엮음이다. 금석교(金石交)는 쇠와 돌처럼 변하지 않는 우정을 지칭한다. 그런 친구는 석우(石友), 석교(石交)라고도 불렀다.
질못된 정치사관 앞에 영원한 친구는 사라진다. 소통은 커녕, 아집에 빠져 내편 아니면 모두 적이라고 규정지어가는 풍토는 초등학교 운동회의 청·백군과 다르다. 어느편이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우리는 한민족이고 한겨레인데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왜들 난리법석인지 모르겠다. 인간관계를 ‘퇴장(OUT)’ 한마디로 규정짓고 굴레를 만들어 방어벽만 높히면 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모순 덩어리다. 이러한 풍토가 지속된다면 결국 또 다른 불평과 불만감만 축적시켜 이민사회는 물론 인간성 상실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본다.
이제 서서히 운동회가 끝나간다. 축제 마당에서 청·백으로 나눠 열기를 내뿜고 응원했던 시간들이 모두 끝나면 쓰레기로 나부끼는 텅빈 운동장을 누가 말끔히 청소할 것인가?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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