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항구 도시에 사는 가난한 어부가 자신의 보트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곳을 지나던 한 사업가가 어부를 깨워 말을 걸었습니다.
사업가 : 하루에 몇 번이나 출어(出漁)하시오?
어부 : 단 한 번! 나머지는 이렇게 쉬지요.
사업가 : 왜 두 번 이상 하지 않소? 그럼 세 배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게 아니오?
어부 : 그러면요?
사업가 : 그러면 머지않아 사업을 크게 성장시켜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텐데 말이요.
어부 : 그럼 다음에는요?
사업가 : 그럼 다음에는 여기 항구에 앉아 밝은 햇살아래 달콤한 낮잠을 즐기는 것이지요. 저 멋진 바다를 감상하면서…
어부 : 내가 지금 그러고 있잖소!

<울리히 슈나벨>의 ‘행복의 중심, 휴식’이라는 책에 나오는 글 속에 담긴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행복은 우리 발 앞에 놓여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막는 것은 남보다 먼저 크게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욕심임을 경계합니다.
행복의 중심에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평안한 휴식입니다. 우리가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마음의 평안을 통해 행복하기 위함임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지구촌 대도시의 월요일 아침 출근 길을 스케치해보면 그 어느 곳도 여유로운 걸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의 아침 출근 시간대의 지하철을 타보면 이 출근 길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아침 출근 길, 지하철을 타기 위하여 줄을 섭니다. 이미 앞서 줄을 선 사람들 뒤쪽에 서서 들어오는 지하철을 기다립니다. 지하철이 도착하여 문이 열리면 이미 안에는 빼곡히 사람들이 서 있어 발을 들여 놓을 틈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말로 표현은 안 하지만 이미 지하철 안쪽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에서 더 이상 자리를 절대 내어 줄 수 없다는 굳은 결의를 훔쳐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랑곳없이 이를 외면한 채 필사적인 자리잡기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 지하철을 타지 못하면 마치 뒤에서 날아오는 총탄을 맞을 것 같은 절박감으로 콩나물 시루 같은 곳으로 결코 날씬하지 않은 몸들을 내던지듯 들이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한 자리도 날까 말까 했던 여유가 없어 보였던 그 공간 속으로 무려 10명 이상이 자신의 몸들을 구겨 넣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그 열 명이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순식간에 흡입이 됩니다.
이렇게 겨우 자리를 잡은 지하철 안은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정말 놀라운 장면은 그 비좁은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보물단지인 휴대폰을 들고 킥킥거리는 표정들도 눈에 띕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비좁은 틈바구니에서도 기막힌 속도로 문자를 주고받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보이는 젊은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평소에는 민망하기 그지 없을 정도로 몸과 몸이 뒤엉키고 난생 처음 본 얼굴과 얼굴이 마치 연인들의 그것들과 구별이 안될 정도로 가까이 있지만 그 시간만큼은 부득이 용납되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제가 아침 출근길에 찾아낸 위대한(?) 발견입니다.
더욱 더 위대한 발견은 이것으로 끝이 날 것 같았던 전쟁이 다음 전철역에서도 다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빠져 나가는 사람들의 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오는데 그 사람들마저도 이 지하철은 마술을 부리듯이 수용을 합니다.
옛날 믿기지 않은 신기한 것들을 보여주는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소형 승용차에 24명의 성인들이 꾸겨 들어가는 묘기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TV 속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매일 아침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경험하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흡사 전쟁 같은 치열한 삶입니다.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기 위해 만든 문명의 이기(利器)에 중독되거나 오히려 노예가 되는 기현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불과 3~40년전 앞서 간 세대들이 일년 365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일했던 치열했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존경심보다 오히려 안타까움과 측은지심이 앞섰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평소 일과 시간은 물론 공휴일과 일요일까지 일을 위해, 생계를 위해 더 나아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일을 했습니다. 그들의 희생의 삶을 통하여 오늘날과 같은 눈부신 경제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앞선 세대들이 자신들의 삶을 희생하면서 일한 배경에는 그들의 다음 세대들만큼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고 잘 사는 삶을 통해 더 행복해지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분명히 윤택해지고 편리해졌습니다. 그런데 행복지수를 조사하면 옛날보다 더 행복하지 못한 결과가 가히 충격적입니다.
앞선 세대들의 땀 흘린 대가를 물려받은 오늘날은 분명히 경제적으로 풍요해졌고 주 5일만 일하면 2일간의 휴식의 시간이 어김없이 주어지고 주52시간이란 강력한 노동시간제로 인해 야근이라는 보편적인 문화도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휴가를 꿈도 꾸지 못한 옛날과 달리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자유롭게 주어지는 휴가를 이용해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도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행복지수가 아무것도 누리지 못했던 그 옛날보다 낮은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얼마 전 주일 아침에 교회를 가는 차 안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최근 일주일에 주 6일을 여유 없이 바쁘게 일을 하는 아내에게 불평 반 놀라움 반으로 투덜거립니다. 저의 반응에 아내의 대답을 정리하면 이랬습니다.
‘아직까지도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이 있음에 감사하고 또 열심히 일한 다음에 찾아오는 일의 보람에 더욱 행복하고 이렇게 열심히 전쟁같이 일하는 삶의 목적은 남은 인생을 평화롭게 안식하기 위함이라고’
근세기 최고의 대작이며 명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프랑스 나폴레옹과 러시아와의 역사적인 전쟁을 소재로 다루며 무려 5년간 집필한 대 서사시입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전쟁이라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 정신적인 성숙을 이루면서 결국 그들의 삶이 평화로워지는 해피엔딩을 통해 어쩌면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도 이와 같이 전쟁 같은 삶이며 이 전쟁 같은 삶의 분명한 목적은 우리가 잊지 말고 반드시 찾아야 할 우리 안의 참 평안과 평화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칼럼니스트 최준영

웃음과 감동이 융합된 아름다운 동행으로 행복한 인생을 추구하는 코칭리더
現) 인코칭 파트너코치
‘코칭으로 아름다운 동행’ 대표
부산항만공사 자문위원
라이프 사이언스 테크놀로지 고문
前) (주)현대상선 임원
KAC 자격 획득 – (현) 한국코치협회 인증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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