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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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누구나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걸핏하면 욕지거리를 하거나, 뭔가를 통해 해소하려고 한다.
우리는 왜 속이 상하고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오는가. 평소 마음 먹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만적할만큼 성과없이 실패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자기불만이다. 절망감이 깊어질수록 ‘좌절(挫折)’이라는 복병을 만나 심신을 나약하게 만든다.
우리 인간의 속성은 제 나름으로 반전적 의외성을 많이 갖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약점을 포함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에게 오로지 의지하고 순종하며 매달리는 것이 종교인이라면 매우중요하다.
왜 갑자기 하나님 타령이냐고 묻는다면, 사람은 반전(反轉)에 놀라고 기뻐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든 일을 꿰뚫어 보고 계시기에 반전 역시 그가 계획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삶을 의지하는 이유는 인간 스스로 예기할 수 없는 의외성을 자신 속에 숨기고 살기 때문에 막다른 길에 도달하면 그분의 힘을 빌려서라도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이유가 아닐까.
얼마전 지인이 절망의 늪으로 치닫게 만드는 암 판결을 받고 고통과 어두운 그늘을 지닌 가운데 열심히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도한 덕(?)에 병원측의 오진과 암세포가 모든 사라졌다는 말을 듣자 그의 얼굴에선 하나님의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기적같은 사건을 볼 때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하였는가. 보이지 않는 깊은 마음 속에서조차 우리를 절대로 거부하시지 않으신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반전을 도모하신 창조주 앞에 그저 감사할뿐이다. 특별한 축복을 받은 그들 역시 자신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제2의 삶을 보람있게 보낼 것으로 여겨진다.
철학자, 수필가 그리고 교육자인 김형석 교수는 최근 강의에서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 사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100세를 1년 남겨둔 나이이다.
예전 같으면 뉴스에 나올 법한 90세를 넘기신 장수한 어르신들을 동포사회에서도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호모 헌드레드’ 시대가 도래했다. ‘인간 수명 100세 시대의 인류’를 뜻하는 용어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인간수명 연장을 위한 첨단 과학설비들이 가동되고 있는 시점이다. 인간은 의학적으로는 최대 125세까지 살 수 있다지만 90세를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가 없으며 150세까지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험을 통해 노화세포가 스스로 사멸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해 쥐 수명을 33%나 끌어올린 사례들이 보고되기도 했다. 보통 쥐의 수명은 600일 정도지만 유전자 조작쥐는 800여일을 생존했다는 것이다. 이를 인간에게 적용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젊은 피를 수혈한 늙은 쥐가 더 오래 살더라는 연구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불로장생초를 끊임없이 찾아내는 인간의 탐구능력에 찬사를 보내야 할 것 같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자 79세, 여자 85세다. 이 기대수명은 1970년에는 겨우 61.9세 였는데 불과 반세기도 되지 않아 기대수명이 20여년 늘어났다. 영양 등 섭생 개선과 함께 의료·과학 기술의 발전에 힘 입었다.
일본에서는 공무원 정년을 종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정년 연장 개정안’이 마련돼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관련 법안을 연내 국회에 제출해 2021년 4월부터 단계적으로 정년 연장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정년 연장에 따른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60세 이상 공무원 급여를 60세 전의 70% 수준으로 억제하고, 60세 이상은 관리직에서 제외한다는 원칙을 명시했다.
휴스턴 한인사회에서도 몇 해 전부터 노인회 회원가입 연령을 65세 이상으로 늘렸으나 이마져도 또다시 상향될 것으로 본다. 초고령화 사회 진행되었음에도 전혀 동요하거나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그 만큼 노인층의 활동력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인간 육체의 가동연한과 노동 가동연령도 종전 60세에서 65세로 상향 조정될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몇 세부터 ‘노인, 어르신’이라고 호칭해야 하나? 상대에게 혹여 결려가 될 지도 모르기에 조심스러운 물음이다. 나이 들었다고 쉽게 포기하지말고 세월의 흔적이 듬뿍 담긴 옷도 버리지 말고, 먼지도 털고 깨끗히 세탁하여 지난 세월을 기억하며 시간여행이라도 떠날 수 있어야 한다. 추억도 되살아나고 제2의 삶도 계획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어느 목사님께서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 입을 때 믿음마저 함께 벗어 던져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쉽게 잊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
물론 장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오래 살 것인지가 더 중요한 시대이지만, 이 또한 창조주가 미리 정한 인생기한이기에 그저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자.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그분은 누구일까.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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