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속담을 들여다 보면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우리 조상들의 생각과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시작을 해야만 결과를 얻을 수 있고 비록 시작이 크지 않더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와 뜻이 유사한 속담으로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도 있습니다. 이 속담의 뜻 역시 큰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는 뜻이며 또한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을 이룬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속담들은 처음 시작의 중요성과 작은 것들이 연합하면 큰 것을 이룬다는 삶의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자 성어에도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닌 말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수적천석(水滴穿石)’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 성어의 뜻은 ‘작은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입니다. 비록 한 방울의 물이지만 꾸준히 바위에 떨어지다 보면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엔 그 바위를 뚫는 것을 실제로 보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의 말씀을 성경 안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는데 이제는 일반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명언과 같은 말이 되었습니다. 바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장 7절)’라는 말씀으로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작은 출발이지만 큰 성공을 기원하는 뜻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헐몬산 (헤르몬산이라고도 함. Mount Hermon)으로 정상은 눈으로 덮여 있으며 그 주변은 말라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산으로 눈이 잘 녹지 않는 이 헐몬산은 비도 많이 내리지 않고 나무가 그렇게 많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해 바다와 요단강과 갈릴리 호수의 중요한 물의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비밀은 바로 헐몬산의 이슬에 있다고 합니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기 때문에 대기 중의 수분을 급격히 냉각하여 밤에는 이슬이 비 오듯 쏟아지게 됩니다. 결국 사해 바다와 요단강, 갈릴리 호수의 물의 원천을 찾아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헐몬산의 정상으로 연결이 되며 그 정상에서 생기는 작은 이슬 방울들이 결집이 되어 물줄기와 작은 샘들을 만들어 방류하여 호수와 강과 바다를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유명한 <헐몬의 이슬>이란 말의 탄생 배경입니다. 이 말은 작은 것들이 연합하고 결집하여 큰 것을 이루는 근본이 되며 미약하지만 중요한 시작을 의미하는 말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와 발명품들의 초기의 모습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것에는 헐몬산의 이슬처럼 그 작은 시작과 최초의 기원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들이 세상에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유럽이나 중국 등 고대의 문명이 살아 숨쉬고 있는 유적지를 여행하다 보면 건축기술이 발달하기 전에 어떻게 그 신비하고 엄청난 규모의 건축물들이 세워질 수 있었을까 탄성이 절로 나게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돌 하나하나가 마치 <헐몬의 이슬>처럼 하나씩 모여 그 웅장함을 드러내는 것을 볼 때 거기에는 분명 그 위대함을 이루기 위한 최초의 돌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들이 모여 그 커다란 건축물의 위용을 만들어 냅니다.
얼마 전에는 지인이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여 병문안을 갔다가 우연히 병원 안에 걸린 세브란스 병원 모습의 변천사를 세밀한 펜으로 정성스럽게 그린 사실화를 한참 동안 넋이 나간 모습으로 감상했습니다. 펜의 터치 하나하나는 사실 평범한 펜의 작은 선에 불과 했으나 놀랍게도 그 세밀하고 촘촘한 작은 선들이 모여 엄청난 걸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시편 133편의 다윗 왕이 노래한 시 한 구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
작품 속에 가지런히 배열된 작은 선들을 하나씩 떼어내면 존재의 가치가 상실되는데 위에 인용한 시편 속에 등장하는 형제들처럼 각기 제 목적을 가지고 연합할 때 그 선들은 스스로 의미 있는 존재로 선다는 사실을 놀랍게 발견합니다.
19세기에 등장한 점묘화의 기법도 이와 같은 원리입니다. 점묘화는 선과 면이 아닌 수많은 점으로 색과 모양을 표현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존의 물감은 섞을수록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밝기가 낮아지고 탁해지는 반면 빛은 섞을수록 밝아지는 성질이 있습니다. 색의 삼원색을 합하면 검은색이 되고 빛의 삼원색을 합하면 흰색이 된다는 것을 어릴 적에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점묘화는 무수히 많은 점을 찍어 두 색이 반사되는 빛을 눈이 동시에 인식하면서 하나의 색으로 보게 되는데 두 색이 섞여 보이지만 실제로는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훨씬 선명하게 보여지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점묘화로 그려진 <마릴린 몬로>나 <모나리자> 같은 작품들을 보게 되면 실제 사진보다 선명한 모습에 우리가 놀라는 이유입니다. 자칫 버려질 수 있는 하찮은 점 하나가 어떻게 쓰냐에 따라 이렇게 가치 있는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2016년 겨울에 시작하여 2017년 봄까지 이어지며 대한민국을 뜨겁게 수놓은 무려 1700만개의 촛불을 기억합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한 겨울에도 꺼질 것 같았던 촛불들은 여전히 살아서 이어졌고 마침내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인 일국의 대통령이 탄핵되어 파면이 되는 불명예스런 역사의 오점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촛불의 의미를 담아서 촛불혁명이라 이름하며 그것은 진정한 민주화의 방점이며 새로운 삶의 혁명을 이어갈 것처럼 많은 국민들은 노래했습니다. 그때 대한민국을 밝혔던 촛불도 하나 하나씩 보면 힘이 없이 초라하고 미약했지만 형제가 동거하듯이 대규모로 연합하니 엄청난 힘이 되었음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2년이 안된 지금 이 시점의 대한민국을 냉정하게 바라봅니다. “이게 나라냐?”고 슬픔과 분노로 일어났던 촛불혁명이 “이게 나라다”를 표방하며 달려 온 오늘의 모습을 바라보며 과연 “이게 나라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촛불들이 얼마나 있을까 반문해 봅니다.
헐몬산에서 발원하여 생긴 헐몬의 작은 이슬방울들이 물줄기 되어 시온의 산들에 내려 촉촉히 적심같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고 구원하기 위해 2000년전 골고다의 언덕 위 십자가상에 값없이 흘린 예수 보혈의 핏방울이 커다란 강줄기 되어 대한 민국은 물론 세상 끝까지 흘러가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월요일의 아침입니다.


칼럼니스트 최준영

웃음과 감동이 융합된 아름다운 동행으로 행복한 인생을 추구하는 코칭리더
現) 인코칭 파트너코치
‘코칭으로 아름다운 동행’ 대표
부산항만공사 자문위원
라이프 사이언스 테크놀로지 고문
前) (주)현대상선 임원
KAC 자격 획득 – (현) 한국코치협회 인증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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