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한인사회의 정치력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중이다. 마치 125년 전 있었던 동학운동과 흡사한 분위기이다. 동포사회는 애국시민운동과 탄핵무효를 주장하며 현정부와 여당, 탄핵에 부역했던 야당의원들을 질타하는 보수진영과 촛불혁명이 현정권을 탄생시켰고 곧 통일로 가는 길 한가운데 서있다는 친여당 성향의 인사들과 양비론적 인사들로 나눠있다. 아직까진 상호 충돌은 없으나 나라경제와 서민들의 한 맺힌 목소리와 볼멘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일부 동포들은 조금이라도 현정부에 동조하는 발언이나 보수와 태극기부대를 폄하하는 말을 하면 금방이라도 ‘주홍글씨’로 낙인시키려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자나깨나 말조심이 상책이라고들 한다.
국민적 대통합, 동포 대통합 등은 이해하기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누가 한마디로 평가하고 단정지으며 규정할 수 있는가. 이에 일부 동포는 “무슨 소리하냐? 언제 우리가 분열된 적이 없었기에 통합이란 말은 우쭐대기 좋아하고 나서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사용한다”고 말하며 없는 말을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넋두리라고 했다.
‘통합’은 사실 ‘통합과 폐합’이 합쳐진 말이다. 여당의 반대진영에는 야당이 있고, 야당은 오직 정권탈환만이 목적이 되기보다는 여당의 저편에 국민과 더불어 대의정치로 국회가 엄연히 있고, 야당은 권력보다 국민의 권익을 위해 현 정주의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재 작년 박근혜 대통령탄핵의 중심에 야당보다 여당 핵심들의 암약활동이 있었다. ‘등잔밑이 어두울 수 밖에 없었다’고 비유할진 몰라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국민들에겐 설마가 현실로 다가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러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그동안 한국의 근대사에 기록된 동학운동을 지금의 시대적 시각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허다한 재화와 재물은 국고로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개인의 배를 채우고 있다. 국가에 누적된 빚이 있어도 모두 갚기를 생각지 아니하고 교만과 사치와 더러운 일만을 거리낌 없이 일삼으니 팔로(八路)는 어육이 되고 백성이 도탄에 허덕이는구나.’(무장포고문 중에서)
이 말은 1894년 전봉준·손화중·김개남의 동학농민혁명 무장포고문이다. 올해5월이면 125년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정부예산이나 금융권의 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고 했다. 부패한 정치와 외세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지난날 동학농민군이 전북 정읍의 황토현에서 관군과 격돌해 최초로 승리한 날이 5월11일이다.
동학농민운동의 성격은 “반봉건적, 반외세적 농민항쟁”이었다. 농민이 주축이 되어 지배계층에 대한 조선 시대의 최대 농민항쟁이었다. 결국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으로 실패했으나 정신만은 훗날 3.1 운동으로 이어졌다.
동학의 성지(聖地)는 대구경북이다. 창시자 수운 최제우 선생은 1824년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에서 태어났다. 2대 교주 최시형도 경주 사람이다. 이들의 주된 활동지역도 경주·포항·영해·영덕·상주·안동 등 경북등지였다.
경주에는 동학발상지 용담정을 비롯해 최제우 선생의 묘, 2014년 복원된 생가 지등 수많은 유적이 존재하고 매년 동학문화축제도 열린다. 특히 상주시 은척면 상주동학교당은 국가지정기록물 제9호로 지정된 289종 1천425점의 기록물을 보유하고 있다.
매년 문화제를 열어 동학정신을 이어간다. 최제우가 ‘삿된 도로 세상을 어지럽힌 죄(左道亂正之律)’로 1864년 4월15일 순도(殉道)한 곳이 대구읍성 남문 밖 관덕정이다. 그동안 우리 민족문화사는 뿌리 깊은 유교문화와 보수적 성향이 짙은 정서 탓으로 동학의 기본정신은 일반인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했다.
3.1절 100주년 기념행사에 앞서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고 동학의 정신으로 나라를 살리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최영기/ 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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