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
신년에는 백 마디 말보다
덕행(悳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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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이 밝았다. 올 한해 휴스턴 한인사회가 보다 건강하고 실속 있는 건전한 공동체가 되길 개인적으로 크게 희망한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건물만 보이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면 얼마나 쓸쓸하겠나. 새로운 이민자와 타주 유입인구가 점차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우리끼리 잘 살았으면 한다.
그리고 오고가다 만나는 동포끼리 “올해도 꼭 행복하고 건강하세요!”라는 말들이 정겹게 오고가길 바란다.
살면서 대인관계 갈등의 핵심은 어느 시대나 있었다.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론 무엇보다 자신이 타인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변화를 위해 일방통행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자신조차 변화하기도 벅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과 이념이 다른 타인을 받아들이는 일 또한 그다지 쉽진 않다.
그러므로 타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뤄질 수 없다. 대인관계에서의 질적 수준은 무엇으로 결정되나? 이민사회에서 동포 화합과 협력을 위해선 우선 고착화된 대인관계에 있어서 갈등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이러한 원인규명이 과도하거나 일방적인 주장과 고정관념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면 요즘말로 신흥적패를 생산하게 된다.
좀 더 풀어보자면 이민사회에서 생각과 주장, 이념과 정치성향이 다른 타인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부추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본다.
첫째,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거나 다르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둘째, 겉으로는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내 생각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 휴스턴에 사는 2만이 넘는 동포가족 중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생김새도 다르지만 지니고 있는 성품이나 기질, 생각과 관심사, 좋아하는 것이나 정치성향, 종교관과 싫어하는 것도 완전히 다르다.
“사람들은 사고를 다르게 하며, 결정을 다르게 하고, 시간을 다르게 쓰며, 일하는 속도와 의사소통 방식도 다르다고 한다. 또한 감정조절이나 스트레스 관리, 어긋나는 의견을 조율하는 방식도 서로 다르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메릴(David Merrill)
지난 세월 우리들은 생각이 다른 타인을 향해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난 그런 당신이 이해가 안 돼! 당신은 아웃(out)이야”라는 말을 쉽게 사용했었다. 이렇듯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상대방의 어떤 행동과 말을 보고 들으며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던가?
하지만, 상대방 또한 당신이 하는 그 말을 들었다면, 십중팔구 이런 대답을 들을 것이다. “나야말로 당신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

타인과 갈등을 일으키는 마지막 이유는 자신은 그대로 있으면서, 상대방이 바뀌기를 바라거나, 상대방을 바꾸려 드는 데서 비롯된다. 상대방을 내 임의대로 변화시키려 하는 생각의 바탕에는 ‘내 생각만이 옳다는 자만심’이 깔려 있다. 내 생각과 판단에 일치하지 않으면 다른 게 아니라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와 상대방은 단지 다를 뿐이다.
물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수준일 뿐이다. 막상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면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그 다름을 배척하기도 한다.
진짜 제대로 된 원인을 찾아 치유할 방법은 바로 덕행(悳行: 올곧은 생각으로 이뤄내는 일)이다.
바쁜 이민생활에서 동포사회가 발전하고 화합을 하려면 먼저 다음과 같은 자문자답을 거쳐야 한다.
첫째, 갈등이 일어나는 원인과 상대와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둘째, 주변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왜일까? 그 이유는 무엇이며, 그 괴로움과 고통이 내게 주는 본질적 의미는 무엇인가?
셋째, 내가 진정으로 상대를 존중하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을 통해 지금의 상황이 내게 주는 참된 메시지를 깨달을 때, 갈등의 진짜 원인과 자신의 문제점을 자각할 수 있게 된다.
이민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집 건너, 교회와 사업체, 출신 지역으로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좁은 동포사회에서 여전히 많은 사람이 대인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힘들어하고 있다. 그 스트레스가 악 소문, 편협적인 막말을 생산하며 상대가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해도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욕으로 배를 채우려 한다.
상대가 상처받고 화가 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한다면 그들은 이미 영혼과 인간미를 상실한 빈껍데기일 뿐이다.
전 근대사를 통해 독재자, 폭군들을 ‘뚱보’로 표현한 속뜻이 어쩌면 그것일 수도 있다. 불신과 편협이란 살이 계속 찐다는 것은 자신이 타인에게 주는 상처에 쾌재를 불러일으킨 현상학적 상징이다.
해서, 새해 벽두부터 타인을 조롱하거나 격하시키기 보다는 덕담(德談 )과 더불어 덕행(德行), 덕행(悳行)이 넘쳐나는 한 해가 되길 소원한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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