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
이민역사를 정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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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갈꺼나? 무엇을 할꺼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타령에 희망의 여신은 여전히 회답이 없다.
일 년 동안 동포사회를 달구었던 여러 이슈들도 겨울 초입에 잠잠해졌다. 남의 말 십리를 못가고 말이 담장을 넘는 순간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 세상이치이다.
부질없이 대중 앞에 그저 자신의 존재만을 부각시키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지나? 그저 반만 몸을 숨겨도 칭찬 받고 존경 받을 텐데…
몇 해 전 들은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이민사회에선 조용히 커피나 마시면서 지내는 것이 상책이고, 나서지 않으니 지갑의 돈이 그대로 쌓인다고 했다.
과연 옳은 이야기인 듯 보이지만 결코 정답은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어떤 형태든 소속감을 느끼려 한다. 이러한 상황을 딜레마(dilemma)라고 한다. 난감한 상황이란 뜻이다.
현재 일어나는 개인의 일과 지역사회, 그리고 정부의 정책도 모두 딜레마에 빠져있다. 동포들을 위한답시고 벌였던 사업들 가운데 목적의식과 주제가 명확치 못한 어설픈 사업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올 한해 동포사회가 가장 갈망했던 일과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간파하지 못한 채 그저 먹고 마시고, 남의 이야기를 안주삼아 씹어대는 버릇도 버리지 못하면서 세치 혓바닥으로 함량부족의 주장을 펼쳤던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인사들이 연말이 되니 너나 할 것 없이 모금파티를 열고 말끔히 차려입은 양복에 넥타이만 매면 신분이 바뀌지 않음을 당사자들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동포 단체들이 과연 동포사회를 위해 일 년 동안 한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해가 지날수록 활동범위가 점차 좁아지고 있는 것 같다. 총체적으로 휴스턴 한인사회가 ‘딜레마’에 빠진 것은 아니었음 한다.
“동포사회의 뜻과 정서에 동떨어진 몇 몇 철지난 지도자들이 아직도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꼴불견스러워 보인다”는 지적처럼 자칭타칭 한인사회 지도자들은 먼저 동포들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한다.
휴스턴에 이민 역사물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반세기를 살아온 이곳엔 아무런 역사물이 없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고 모래위에 세워진 성처럼 보인다. 이민사회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바로 역사물 보관이다. 지난 이민사가 그랬다면 이제라도 준비해야 한다.
어렵사리 자리 잡은 한인사회가 이곳에 뿌리 내리고 결실을 맺으려면 한인회관 건물이나 소유권을 따지기보다는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을 뒤돌아보고 정리하는 일이 더욱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정체성의 혼란과 이민자의 삶이란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려면 무엇보다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은 잔치보다는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때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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