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
누가 내 자전거를 훔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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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가 한국사회와 경제, 그리고 가정마저 붕괴시키던 무렵 자유와 부의 상징인 미국으로 향한 이민 행렬이 길게, 길게 이어졌었다. 잘 다니던 회사에서는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맥없이 무너지면서 직장인들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수렁으로 곤두박질쳤다. 1997년은 악몽 같은 해였다. 6.25전후 궁핍했던 시절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시민들의 분노와 절망, 암울한 미래를 YMCA(기독교청년회)에서 함석헌 선생과 유수한 선배들로부터 학습을 받아왔다. 이 땅의 현실을 기독교 역사를 통해 차츰 알게 되었다. 당시는 행동하는 양심과 40대 기수론이 젊은이들을 민주주의로 이끌고 있었다.
대학 선배들은 가끔 서방 세계의 주옥같은 영화를 추천하고 감상 후 영화 내용을 토론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었다. 훗날 문화체육부장관을 역임한 ‘초록물고기’의 영화감독 이창동 선배의 송곳 같은 영화 감상평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세계 유수 영화 중 주저 없이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위대한 영화 ‘자전거 도둑’을 추천해 주었고 친절한 설명도 곁들어 주었다.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던 자전거를 잃어버린 한 가장이 자전거를 찾으러 돌아다니다 결국 찾지 못하고 좌절한 나머지 남의 자전거를 훔치게 되는 사실에 황당하면서도 씁쓸함을 느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라서 이탈리아 로마 시내는 실업자로 넘쳐났었고 주인공 안토니오는 2년여의 실직 상태 끝에 간신히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일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자전거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안토니오는 아내 마리아의 도움으로 침대보 6장을 전당포에 맡기고 저당 잡혀 있던 자전거를 찾아온다. 희망에 부푼 안토니오는 의욕적으로 일터로 향하지만 출근 첫 날 전 재산과 다름없는 자전거를 잃어버렸다.
충격과 실의에 빠진 안토니오는 어린 아들 브루노와 함께 온 도시를 헤매며 도둑의 뒤를 쫓지만 자전거의 행방은 알 수 없다.
하늘은 절망적인 빗줄기를 퍼 부으며 두 부자의 처진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잡은 범인은 간질 증세를 보이며 쓰러지고 오히려 범인과 그 이웃들의 거친 텃세로 두 부자는 거리로 내몰린다.
더 이상 희망의 끈을 잡지 못하게 된 안토니오는 순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길가에 세워둔 남의 자전거를 훔쳐 달아나지만 이 어설픈 도둑은 얼마가지 못해 그를 쫓는 시민들에게 둘러싸인다. 아버지 곁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 브루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주인의 선처로 안토니오는 무사히 풀려난다.
거리에는 어둠이 밀려오고 손을 아버지와 아들은 거리의 인파 속으로 사라지면서 영화는 막을 내렸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실업자들의 절규와 분노, 없이 사는 이의 등을 쳐 먹고사는 도둑 일당과 그를 감싸려는 이웃들의 악다구니, 전당포 앞에 늘어선 도시 빈민들의 무기력한 얼굴 등 도시는 온통 어둡고 암울한 모습뿐이지만 카메라는 일말의 동정이나 조롱도 없이 그저 담담하고 건조한 관찰자적 시각으로 세상을 그려냈다.
자전거를 훔치다 붙잡힌 아버지와 그의 곁에서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어린 아들. 수치심과 좌절, 허망함으로 고개 숙인 아버지와 그의 손을 꼭 잡은 아들의 관계는 보는 이로 하여금 미묘한 감정의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자전거 도둑’은 따스하면서도 그리운 정이 묻어나는 영화였다. 이민생활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고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좋은 관계와 나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아보려는 이들의 비애가 ‘자전거 도둑’에 고스란히 담겨졌기에 삶이 지루하거나 불만이 생긴다면 ‘누가 내 자전거를 훔쳐갔나?’라고 한번쯤 자문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잃어버린 자존심을 찾는데 조금의 도움이 될 듯하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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