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
인격에 새 옷을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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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한인사회도 점차 인구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한인타운 내 식당은 물론 교회에서도 연로하신 어르신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주일 예배 후 옆에 앉은 할머니들의 예상 못한 대화는 가끔 헛웃음이 절로 나오도록 만든다.
얼마 전 한국방문을 다녀온 여행담을 듣고서 소개하고자 한다. 어떤 젊은 승객이 버스에 승차하면서 교통카드를 찍고 뒤쪽으로 들어올 때 카드기에서 ‘다음 승차 때는 충전이 필요합니다’라는 안내 음성이 나왔다. 그러자 하차 문 바로 옆에 나란히 앉은 할머니 중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고… “저 기계 참말로 희한하네. 남의 카드에 돈 들어있는 것까지 어떻게 다 알아 맞힐까.” 그때 옆의 할머니가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그러게 말이야.”
삶에도 재충전이 필요하다. 어떤 이는 돈으로… 여행으로… 먹거리로…다양한 형태로 얼마든지 삶을 재충전할 수 있다.
그런데 할머니들의 대화 중에서 간혹 번쩍 뇌리를 때리며 각성시키는 대목이 없지 않다. 7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할머니가 친구 숙자 할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친구야, 니 이번 주 금요일 오후 5시 우리 화투놀이 모임 알제? 꼭 나와야 된데이.” 숙자 할머니가 대답했다. “그날? 안되는데…. 구청회관의 독서반에 책 읽으러 가는 시간이다.” 그러자 화투모임 참석에 초대했던 할머니가 발끈하며 소리를 질렀다. “문디 지랄한데이, 내일모레면 콱 뒤질 낀데 뭔 공부한다꼬? 막걸리나 묵으면서 화투놀이하는기 최고지…” 이 소리에 숙자 할머니는 겨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꾸했다. “공부는… 마··· 죽을 때까지 하는 기 아이가.”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라던 숙자 할머니의 말씀이 이국땅에 살아가는 나를 향해 화살보다 더 빨리 날아왔다. 화살촉은 한동안 뇌리에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말이지만 다들 평생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 평생 배워야 하고, 죽기 직전까지 깨우쳐야 하는 게 미완성 인간의 숙명이다. 공부를 이어가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내공이 높아진다. 하지만 배움을 등한시하는 사람들은 내공은커녕, 대개가 갈수록 뻔뻔스러워진다고 한다. 얼굴이 두꺼워지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른바 ‘후안무치’ 상태가 되기 쉽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노년의 독서는 인격에 새 옷을 입히는 일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보다 활동적이며, 오래 사는 것은 호르몬의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 들면서는 어린이용 교훈서인 ‘소학’ 같은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도 있다. 프랭클린, 루소, 밀 같은 유명인사들은 노년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뜨거운 텍사스 여름도 물러가고 이제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 됐다. 조금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을 때가 되었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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