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직업에 귀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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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따위가···”
식품점에서 일하는 A씨는 말투나 표정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고객을 만날 때마다 괴롭다고 말했다. 자신의 실수에 대한 따끔한 지적이나 수긍할 수 있는 불평불만은 “잘못했습니다”라고 사과하고 넘어가지만, ‘고작 식품점에서 일하면서···’라는 태도로 자신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고객, 또는 노골적으로 “너 따위가···”라며 경시하는 듯한 언사를 내뱉는 고객을 만나면 나이가 많든 적든 심정은 멱살잡이까지 가있다.
A씨는 “미국에는 직업에 귀천(貴賤)이 없다지만 한인사회에는 여전히 직업에 대한 귀천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사는 것 같았던 미국에서도 ‘천한 직업’(job-shamed) 논쟁이 벌어졌다. 한국에도 알려진 배우가 식품점에서 계산원 즉 캐시어로 일하고 있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1984년부터 1992년까지 방영되면서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시트콤 ‘더 코스비 쇼’(The Cosby Show)에서 빌 코스비가 연기한 산부인과전문의 클리프 헉스터블의 사위 엘빈 티비도로 출연했던 제프리 오웬즈(Geoffrey Owens)를 알아본 식품점(Trader Joe’s) 고객이 찍어 올린 사진을 영국 타블로이드지 데일리메일(Daily Mail)과 보수성향의 뉴스전문채널 폭스뉴스(Fox News)가 보도하면서 ‘더 코스비 쇼’에 출연했던 배우 오웬즈가 뉴저지 클리프턴의 식품점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얼룩이 있는 앞치마를 두르고 식품점 계산대에서 일하고 있는 오웬즈에 대해 데일리메일과 폭스뉴스는 전 세계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배우가 어떻게 식품점 캐시어로 일을 하느냐며, 오웬즈가 동료 배우들까지 욕 먹이는(job-shaming) 짓을 하고 있다는 취지로 비난했다.
하지만 오웬즈가 같은 배우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는 데일리메일과 폭스뉴스의 비난에 동료 배우들은 오웬즈를 지지하고 나섰다. 해리포터에 출연한 배우 크리스 랜킨은 자신도 촬영이 없을 땐 식당에서 일한다고 밝혔다.
미국프로풋볼(NFL) 선수로 활약하다 배우로 전직한 테리 크루즈는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바닥청소를 했다”고 적었다.
연방하원의원을 지낸 부친을 둔 57세의 오웬즈는 예일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했다. 예일대학 졸업 후 ‘더 코스비 쇼’에도 출연하며 배우로서 이름을 알린 오웬즈는 지금도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고, 대학과 학원에서 배우지망생들에게 연기를 가르치고 있다.
오웬즈는 그러나 가장으로서 영화 출연과 연기지도 만으로 가정을 꾸려나가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식품점에서 캐시어로 일하고 있다고 언론에 밝혔다.
요즘도 영화출연을 위해 오디션을 다니고 있다는 오웬즈는 자신이 식품점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동안 해명에 나서지 않은 이유는 이번 일로 오디션 없이 단지 자신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 영화사로부터 출연제의를 받는 것을 원하기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4일 윈프리 오프라 소유의 방송에 출연한 오웬즈는 직업에 귀천이 있을 수 없다며, 단지 어떤 직업들은 돈을 더 많이 받거나 복지혜택이 더 좋거나 이력서에 기록할 더 좋은 스펙을 쌓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 직업이 반드시 더 좋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오웬즈는 모든 직업은 가치가 있고 소중하다며 누구도 식품점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유감스러워하거나 부정적인 시각 또는 긍정적인 견해를 가질 필요도 없다고 말하고 자신은 모든 배우들이 그렇듯 죽을 정도로 사랑하는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고, 그래서 무슨 일은 하던지 인생이 즐겁다고 말했다.

양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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