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회장의 영어연설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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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었다. 언젠가는 우리의 손자손녀가 성인이 됐을 때 한국어로 말하지 못하고 영어로만 의사표현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서 예상했던 바가 사실로 전개 되고 있다. 한인이민3세들이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졸업했으니 그들은 학교에서 교육받는 내내 영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영어가 편하기 때문에 영어로 말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휴스턴의 한인회장이 한국어로 광복절 기념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어로 의사를 표시할 수 없으니 영어로 기념사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국에는 여러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모여 사고 있다. 하지만 이들 인종과 민족을 크게는 두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번째 유형은 정체성(Identity)을 상실하는 인종 또는 민족이다. 언어는 그 민족의 ‘얼’이요 ‘넋’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는 화자의 정체성까지도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도구일 수 있다.
오래전에 미국에 정착한 흑인들은 시간이 지나도 피부색은 변하지 않았지만 사고방식은 완전히 미국인으로 동화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미국은 낮선 땅이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미국 사회에 뿌리내리고 살았으니, 흑인이라는 그들의 본래의 정체성은 완전히 소멸되어 갔고 ‘미국인’이 된 것이다. 흑인이라는 정체성은 그들이 즐겨 부르는 흑인영가나 재즈 음악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의 흑인들은 불과 2백여년만에 정체성을 상실했는데, 우리의 후손들도 몇 대를 지나면 한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미국인으로 동화되어 가리라는 생각은 결코 기우가 아닌, 필연으로 다가 올 것이 분명하다.
또 다른 유형은 사도 바울의 서신이 잘 제시해 주고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3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뜻대로 씨앗에다 형체를 주시되 씨앗마다 그 고유한 형체를 주시느니라”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어떤 민족의 뿌리(씨앗)에서 그 고유한 형체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이런 유형은 바울 자신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이 있었지만 유대인이라는 자의식을 간직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발 딛고 서있는 현실의 국가에서조차 모범시민으로 살았었다.
오래전 친지의 결혼식에 갔을 때에, 모든 예식을 마친 후 식사시간에 신랑과 신부가 하객이 앉아 있는 식탁을 돌며 “많이 먹으세요”라고 인사하는 소리를 들었다. 속으로 ‘그래도 한국어를 조금은 할 줄 아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나의 경험은 한인가정 모두가 한번쯤은 겪어봤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경우에서 한인이민1세들은 그들의 손자손녀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닌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손자손녀를 한인학교에 보내 한국어를 잊지 않도록 가르쳐야 하지만 미국에서 그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우등생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앞으로 그들이 진출하는 사회에서 주류로서 활동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타민족은 저만치 앞서 가는데 우리 한인은 소수민족으로 뒤처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언젠가 아시안 지도자들이 모인자리에서 베트남 출신의 이민자가 영어로 유창하게 연설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물론 자국어도 잘 할 것이다. 이들이 휴스턴의 대로 가운데 하나인 벨레어에 터를 닦고 홍콩마켓을 위시하여 거대한 상가를 형성했다. 이 지역에는 도로의 이름까지 영어가 아닌 모국어 도로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우리가 코리아타운이라고 부르는 롱포인트 지역에는 그저 작은 가게 몇 개만 있을 뿐이다.
눈을 돌려 유대민족을 봐도 그들도 소수민족이지만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 뉴욕의 맨해튼의 금융가의 주인은 누구인가? 워싱턴포스트를 위시한 주류언론의 사주는 누구인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해 미국 대사관을 그곳으로 옮기지 않았던가? 어차피 미국에 왔으면 밀려오는 세계화의 파도에 잘 순응해야 할 것이다.

허도성 목사(광복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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