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에 붙여]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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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다’고 말하지만 그 당시의 역사적 정황을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일본에 나라를 내주었다’도 말할 수 있다. 이 천추의 부끄러움을 자인해야 한다.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열강들이 우리나라를 먹으려고 각축전을 벌일 때 우리나라는 이에 대비하기는커녕 고종 임금은 중전의 기세에 눌려 허수아비로 전락해 제대로 정사를 펼칠 수 없었고, 섭정인 대원군은 며느리 민비와 집안싸움을 하느라 외세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었으며, 조정에서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 조정이 해이해진 틈을 타 국가를 일본에게 진상한다는 조약서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4천년 역사에서 나라가 오랑캐들에게 초토화된 적은 있었지만 송두리째 빼앗긴 것은 전무한 일이다. 잔악한 일본은 대한제국을 삼킨 다음 두 나라를 아예 하나의 나라(일본)로 만들려는 흉측하고도 음흉한 야심을 품고 있었다.
1945년의 광복(光復)이 없었더라면 우리 한국인들은 모두 일본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4천년간 이어져온 한국이라는 국가는 지도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경술국치를 한일합방이고도 하는데 합방(合邦)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두 나라를 결합하여 한나라로 만든다는 뜻이다.’ 합방으로 영토만 일본과 합하는 것이 아니라 한민족을 일본인으로 만드는 황화(皇化)운동이 본격화 됐다. 더욱 슬픈 것은 국가의 기둥과도 같은 인물들이 일본의 황화운동에 앞장서 도왔다는 것이다. 그런 인물들로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이있다. 이광수는 누구인가? 민족문학의 태두가 아니던가. 최남선은 누구인가? 한민족의 맥(脈)인 역사를 기록하는 사학자가 아니던가. 그리고 황화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해 일본이 끌어들인 또 한사람이 이완용의 근친인 이병도였다. 일본은 우리의 고대사를 인멸하려고 서고의 수만권의 고대사 서적들을 불태웠다. 이때 이병도는 총독부의 편수관보로 등용돼 자기 나라의 역사조작에 앞장섰던 것이다. 필자가 열혈 청년시절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이병도를 찾아 간 적이 있다. ‘의병대장 왕산 허위 선생의 손자가 왔소이다. 역사조작이 말이 됩니까?’하니 늙수그레한 이병도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더니 경련까지 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떤 이는 원로 사학자에게 불손한 것 아니냐고 힐난할지도 모르나 오히려 지금도 나는 과공으로 대접했다고 생각한다.
말해서 무엇 하랴! 삼일운동을 주도한 손병희를 위시해 33인 대부분이 변절했고 마지막 생존자인 이갑성은 일본 헌병의 밀정노릇을 했는데, 광복 후에는 제1대 광복회장이 되는 촌극까지 벌어졌었다. 필자가 오래전 을지로3가 3층의 순국선열유족회에 출입할 때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柳愚錫) 옹이 이갑성이 친일파였음을 증명하는 서류에 서명날인한 것을 필자에게 준 것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을 펴보니 총 5,207명의 친일 부역자들이 수록돼 있다. 여기에 수록되지 않은 친일파가 백배는 더 될 것이다. 친일인명사전에는 광복 후 대한민국 대들보 역할을 했던 인물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대학을 설립해 총장을 지낸 백낙준, 임영신, 유진오,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백선엽, 정일권, 한국의 민족지로 불리는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와 동아일보 사주 김성수, 해방 후 문학계의 대통령격인 미당 서정주….
유대민족은 나라를 잃은 후 1,900여년간 디아스포라로 각 나라에 흩어져 태생지에 동화돼 유대민족의 씨라도 찾을 수 없었을 터인데 지금 그들은 아직도 건재해 세계를 장중에 넣으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고작 나라를 빼앗긴지 34년 11개월간인데 국가의 중요 인물들 거의가 일본의 주구노릇을 하며 호가호위하며 호의호식했다. 오호통재(嗚呼痛哉)로다!
광복절이 언제인지는 초등학생도 잘 알지만, 나라를 빼앗긴 국치일이 언제인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일본에서는 초등학교 수준에서 익힐 한문의 수를 1,945자로 정했다고 한다. 나라를 잃은(?) 그 해(1945)를 초등학교들이 잊지 않도록 가슴에 각인시키기 위한 무서운 계략인 것 같아 섬뜩한 생각까지 든다. 일본을 여행하며 호텔에 들어가면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삼성 텔레비전을 호텔 객실에서 볼 수 없다. 대신 저들의 소니 텔레비전이 있을 뿐이다. 세계 어디나 한국 자동차를 판매하는 딜러가 있다는데 일본인들은 한국 자동차를 사지 않아 유독 일본에만 한국 자동차딜러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에 분노를 느끼지만, 저들의 애국심만큼은 알아줘야 할 것 같다. 한국의 어느 통일부장관이 극일(剋日)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을 들었다. 나는 되묻고 싶다. 글쎄요… 과연 언제쯤에나 극일이 가능할까요?

허도성 목사(광복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