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
공상허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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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거짓말에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는 이미 피해자가 돼 있다. 이처럼 현란한 말솜씨로 남을 속이는 사람을 흔히 ‘병적인 거짓말쟁이(pathological liar)’라고 부른다. ‘병적허언(病的?言, pathological lying)’과 비슷한 증상으로 ‘공상허언증’(pseudologia fantastica)이 있다. 병적허언은 습관적 또는 충동적 거짓말이 주요 증상인 반면, 공상허언증은 실제와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몽상적 거짓말’이 주요 증상이다.
병적허언은 사기꾼의 거짓말과 같이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측면이 있지만, ‘공상허언증’은 공상 또는 상상력에 기반을 둔 거짓말로 주로 현실을 왜곡하는 경향이 강하다. 비록 공상허언증이 사기를 수반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덜하다고 볼 수 없다. 어쩌면 공상허언증 환자들이 집단으로 행동할 때 사회구성원들에게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인사회 지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누가 시키지도,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들 스스로가 포장도 뜯지 않은 질 나쁜 스피커를 앞세워 이구동성으로 ‘동포들을 위한 봉사에 전념하겠다’고 약속한다. 약속한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실체가 불명확한 경우가 더러 있다. 특히 동포들을 위해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주겠다는 듯 ‘사심을 버리고 동포들의 권익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라고 떠들어 댄다. 이것이야말로 거짓말이고 허언이다.
휴스턴한인회가 무슨 엄청난 권한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다소 이해할 수는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먼저, 한인회의 연간행사를 살펴보자. 취임 첫해에는 그저 신임회장 취임 겸 3.1절 행사. 그리고 5.18 기념식(입맛에 따라 개최), 8.15 기념행사가 끝나면 연말행사에서 동포들의 기부금을 모으며 한해를 마친다. 이듬해가 시작되면 신년하례식, 재작년 처음 시행된 설날 큰잔치가 모두이다. 설날잔치를 빼곤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한인회가 도대체 무슨 자치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동포사회의 권익을 추구하고 다민족, 소수민족의 지위향상을 위해 그들은 어떤 가치관을 만들어 낼 것인가.
또한 반세기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과 쾌쾌묵은 폐습조차 구분하지 못하면서 어찌 미래를 설계하고 연구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가. 이는 우리의 현실을 올바로 직시하지 못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한인회 통합건만 보더라도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가지가 아닌 듯 보인다.
어떤 사업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조차 알 수도, 알 길도 없다. 그저 막연히 통합만 되면 만사형통일 것이라는 사운드웨이건식의 기대감을 주어선 안 된다.
매번 회장이 바뀔 적마다 금세 한인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해소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한인회를 이끈 역대 몇몇 회장단들의 노고를 아랑곳하지 않은 임기응변식 행보를 지켜보면서 더 이상 대표성을 지닌 유일한 단체가 한인회라는 믿음이 무너져 가고 있다.
경험이 없다면 조언을 구하고, 길을 잃었다면 아이에게라도 물어라. 단지 조직을 위한 조직유지만을 강조하고 이사회 소집을 두고 공개, 비공개냐를 고심할 것이 아니라, 동포들을 위할 의도자체가 없었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나는 옳고, 많이 배웠으니 무식하고 가난한 당신들은 무조건 따라오라? 계몽주의에 빠진 한심한 무리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구심 투성인 빈 수레를 그대로 끌고 가기보단 차라리 속빈강정이 가득한 보따리라고 시인하고 지금이라도 멈추고 내려놓길 바란다. 99번 잘하다가도 한번 실수로 무너지는 것이 우리 이민사회의 통념인 것을 안다면 동포들을 우롱하는 처사는 멈춰야 한다.
이제 점하나 찍었다고 해서 한인사회 전부를 손에 넣었다는 착각자체도 즉시 버려야 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한인회와 KCC는 통합에 찬성을 했다고 한다. 단체만 통합하며 끝인가? 마치 남북이 통일만 되면 세계 일류국가가 된다는 착각처럼 들린다.
이를 위해선 보다 치밀한 사전조사와 통합이후의 각종 행정, 법률, 그리고 회원들의 지지확보에 더욱 힘을 써야 한다. 처음부터 의도를 갖고 시작한 만큼 분명히 이러한 절차적 계획도 세워졌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것이 일부 몇 사람의 머리와 막후에서 지휘하는 누군가에 의해 갈무리되는 일은 하지 않길 바란다.
제안컨대 가장 올바른 방향은 한인회와 KCC의 두 기능을 유기적으로 통합하고, 조직·인원, 그리고 이사회의 참여숫자가 줄어들지 않고, 회원등록제가 개정안처럼 쉽게 정리된다면 보다 획일화된 한인회를 만들어 갈 수도 있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이번 통합목표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으려면 한 가지씩 차근차근하게 풀어가야 한다.
우선 회관결산의 투명성, 그리고 정관개정에 앞서서 동포들의 다양한 의견수집, 한인회장이 직접 단체장협의회에서 누구의 입김도 없이 단독으로 의지를 밝혀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누군가에 의지하고 조종당해 왔다면 이참에 아예 사퇴함이 옳다.
아니면, 기왕 선관위를 통하지 않고 적당히 편법으로 한인회장에 되었는데 정관이든 통합이든 동포에게 묻지 말고 처리해버려라.
게다가 양 단체의 이사회가 회의기록을 정식으로 오픈하지 않고 있는 이 마당에 누가 누구를 보고 믿어라 말라 하겠는가.
지금 한인회에서 봉사하는 많은 사람들에겐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는 구호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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