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유머

0
79

사랑에 빠지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먹는 걸로 무얼 하는지 가르쳐 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먹은 음식을 비계와 비료로 만드는 사람, 먹은 음식을 일과 유머에 쓰는 사람, 그리고 먹은 음식을 하느님에게 돌리는 사람. 자신은 가운데 부류에 속한다고 말한다.

카잔차스키는 소설을 통해 “저는 셋 가운데 가장 흉측한 녀석은 아닙니다. 주인님, 그렇다고 가장 훌륭한 축에도 못 끼고 그저 어느 중간쯤에나 끼겠지요. 내가 먹은 음식은 일이 되고 좋은 유머가 된다는 거죠. 결국 그만하면 과히 나쁠 건 없어요!” 조르바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지만 오늘 내가 먹은 음식이 그의 말처럼 좋은 유머가 되는 건 그리 간단치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먹은 생의 마지막 음식까지도 좋은 유머로 만들고자 했던 유쾌한 묘비명의 주인공 조지 버나드쇼는 어쩌면 카잔차키스보다 더 조르바에 가깝고 더 자유로웠는지 모르겠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원문과 비교해 오역에 가까운 지나친 의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알았다’는 말에서는 한 조각의 회한도 묻어나오지 않는다.

반면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은 되레 ‘나는 간절히 자유를 원한다’로 읽힌다. 일은 몰라도 좋은 유머는 그에게도 간단치 않은 것이었나 보다.

“커다란 걸 남기겠다 그런 욕심 버리세요
비틀비틀 휘청휘청 내가 걸은대로
찍힐 것 그대로 그냥 그냥 좋습니다”

그렇다면 도스토옙스키는 어떨까? ‘어느 사형수의 5분’이라고 흔히 인용되는 ‘백치’ 속 에피소드. 정치범으로 체포된 27살의 청년은 어느 날 다른 죄수들과 함께 사형대로 끌려가 총살형에 처한다는 선고를 받는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5분 남짓.
하지만 그는 이 5분 동안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선 동료들과의 작별에 2분,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데 2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위의 광경을 둘러보는 데 남은 1분을 할애하기로 한다. 그렇게 냉정함을 잃지 않은 채 계획된 1분1초를 보내던 그는 갑자기 교회의 금빛 지붕과 그 지붕에 반사해서 빛나는 햇빛을 보게 된다. 그토록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이건만 2~3분 후 자신이 그 빛에 융합된다는 생각은 그에게 극도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만일 내가 죽지 않는다면’이라는 생각이 쉴 새 없이 떠올라 그를 괴롭힌다. “1분1초를 100년으로 연장시켜 아무것도 잃지 않고, 1분1초라도 정확히 계산해 헛되이 낭비하지 않으리라!”고 그는 결심한다.
하지만 생에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이를 막아선 이들에 대한 증오심은 폭발하고, 그 절망감은 그로 하여금 차라리 한시라도 빨리 총살되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갖게 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예기치 않았던 사면령으로 그는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찾은 ‘무한한 생활’, 다시 주어진 ‘막대한 시간’을 그는 1분1초를 계산하며 살았을까? 작가는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그는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도스토옙스키는 1분1초를 낭비하지 않고 위대한 작가가 되었다고 윤색한다. 그가 참으로 위대한 작가라는 것은 이야기 끝부분의 존재를 통해 확인되는 것처럼 좋은 유머의 진정한 가치를 온전히 안다는 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제 최후의 며칠이 남았다. … 지금 나의 관심은 내가 남길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논문, 철학자로서의 마지막 선언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랑이다. … 내가 바라는 것은 지적인 생존이 아니고 사랑의 생존이다. ” 과학철학자 파울 파이어아벤트가 죽음을 앞두고 집필한 자서전의 마지막 문구다.
같은 맥락에서 ‘육신은 재가 되고 먼지가 되겠지만, 사랑에 빠진 먼지가 되리라’(케베도, 죽음 너머의 영원한 사랑). 마지막 순간 좋은 유머까지는 못 되어도 우리 모두 이런 묘비명 하나 쯤 가슴에 품고 살아 봄은 어떨까.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