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 적과의 동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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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는 봄이 오려고 하고 있는데, 왜 한국의 정치권은 찬바람 몰아치는 한겨울로 돌아가려고 하나.
주지하다시피 휴스턴 한인사회도 단체 간 통합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와중에 통합의 발목을 잡으려는 듯 알 수 없는 여러 논란들이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가. 마치 한국 정치판의 복사판, 아니 그보다 더 못된 것만 닮으려는 미스프린트 같다.
다음 달이면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용단이 내려질 것 같다. 긴장의 끝자락에 선 북미 두 지도자의 결정에 한반도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달라질까. 두 지도자는 어떤 말들이 쏟아낼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모두가 서로에게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다.
두 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또 어떤가.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와 거의 65년간 대치해온 적국 수장의 후계자이고, 한반도에 핵위기를 조성한 당사자이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들의 대체적인 평가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정치학자인 칼 슈미트는 정치를 두고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를 적대적 대립관계로 보고 대립에서 나타나는 권력투쟁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슈미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정치란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생산적인 정치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반 국민이 바라는 정치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조장하고 방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규칙 내에서 공동체의 공생을 모색하고 상호 발전하는데 노력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법치주의와 대의민주주의는 근대사회 이후 우리 공동체가 지쳐온 정치원리다. 집단사회와 공동사회는 반드시 규칙과 질서를 필요로 한다. 어느 한쪽으로 힘이 쏠리는 순간 분열과 갈등이 발생한다. 이것을 해소시키겠다는 명분을 삼아 정치권에 뛰어든 정치인 중에는 오히려 보복정치로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어느 정도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정치논리에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럼에도 과도한 적대적 대립이 두드러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오늘의 한인사회는 스스로 오피니언리더라고 자칭하는 이들에 의해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가, 봉합되고, 또 다시 이끌려가고 있는 듯 보인다. 따라서 가끔은 한인사회에 공존을 위한 원리가 작동한다기보다는 공멸로 가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 때도 있다. 사회규범과 원칙에 대한 좀 더 근원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망루에 올라가 내려다 본 한인사회는 무척이나 단순해 보인다. 서로 물어뜯다가 금방 고소장을 들고 법원으로 달려갈 것 같으면서도 돌아서면 서로 의기투합하는 모습에서 이민사회 내부가 형식상은 통합인데 속내는 금 긋기를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동포끼리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한번 등을 돌린 이상 또 다시 쉽게 돌아 설 수 없는 것은 주먹만 한 양심을 가진 인간의 심리 때문일 것이다.
21세기 인류는 보편적가치인 평화를 내걸고는 있지만 사실 핵심은 경제다. 지금은 비록 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위험한 룰렛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내막을 들여다보면 서로가 테이블 밑에선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어떤 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기 싸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총칼을 얼굴에 대고 미소를 머금으며 상대방 주머니를 탈탈 털어가는 것이 국제사회이다. 결국 대립은 공멸로 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또 새로운 역사는 기록되어진다.
지나온 우리의 정치사는 공멸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없었다. 내가 이기기 위해서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말뿐인 채 적과 동지의 적대적 인식이 지배하고 있었다.
현재 국제질서는 무정부(anarchy) 상태라고 말하고 싶다. 강자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이 바로 국제질서이다. 이러한 권력투쟁의 국제사회에서도 각 공동체에 대한 존중과 공존의 원리는 어느 정도 작동한다. 북한처럼 핵을 통한 공포의 균형전략으로 약자가 강자에 맞설 수도 있다. 그러나 갈등이 악화되면 무정부 상태의 속성이 드러난다. 마지막 충돌은 전쟁이 된다.
최근 한인사회는 이슈는 있으나 여전히 위기의식은 없는 것 같다. 기득권을 위한 덧칠로 비춰진다. 동포들의 절박함이 없는데도 굳이 일을 도모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관중 없는 큰 공연을 준비하면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바란다. 며칠가량 공전된 한인회를 두고 호들갑 떨던 전례에 비춰본다면 벌써 정리됐어야 할 일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었던가. 반성해야 될 대목이다.
하여간 지금까지는 그랬다. 나는 이민사회의 중심인 ‘어른들의 행동’에 딴죽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리고 크고 작은 실패의 책임 역시 묻고 싶지 않다. 왜냐면 나 역시 그렇게 어른이 되고 늙어가고 익어갈 것이기에…
정말 이제는 우리의 한인사회가 적대적 공생이 아니라 동포사회를 위한 상생의 기능을 높여야 한다. 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서로가 법적으로 책임지는 구조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상호 주장이 강하기만 하고 양보 없는 논쟁과 불신을 원한다면 내일은 기약할 수 없다. 과거 청산을 위해 열심을 다해 온 분들께는 죄송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나, ‘사람이 한 실수를 사람이 징벌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요즈음이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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