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효지(尤而效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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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에 자리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미읍성은 조선 성종 22년, 1491년에 완성한 석성이다.
최근 복원 및 정화사업을 벌여 옛 모습을 되찾아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조선말 천주교도들의 순교성지로도 유명하다. 박해 당시 관아가 있었던 해미읍성은 충청도 각 지역에서 수많은 신자가 잡혀와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했으며, 특히 1866년에는 1천여명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성내 광장에 는 대원군 집정 당시 체포된 천주교도들이 갇혀 있던 감옥 터와 나뭇가지에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노거수 회화나무가 서있다. 성문 밖 도로변에는 회화나무에 매달려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던 신도들을 돌 위에 태질당해 살해했던 자리개돌이 있어 천주교도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인근 합덕마을에는 성 김대건 신부의 생가지가 있다. 또한 이곳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군관시절 잠시 근무한 곳이기도 했다.
옛 성터를 둘러보는 것은 마치 꽃이 만개하여 향기가 세상에 진동했던 당시를 돌아보는 일이지만 이미 그 향기는 10일도 넘기지 못하였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 ‘화무십일홍’과 세상을 손에 쥔 듯한 세력가들도 ‘권불십년’이라 말을 떠올리게 하였다. 높이 올라갈 수 록 내려올 것을 생각하고, 달이 찰수록 기울어진다는 자연의 이치가 바로 역사란 것을 알게 한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권력을 손에 넣으면 자신이 하는 일이 죄가 되는지 아닌지를 구별조차 하지 못하는 우리 이민사회 역시 주변에 노맨(No Man)보다 예스맨(Yes Man)을 좋아하고, 귀에 거슬리는 조언을 하는 자는 싫어하는, 측근들의 이익과 그릇된 말을 일삼는 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무턱대고 따라가다 보면 종국에 당도하는 종착지에서 맞닥뜨리는 결과는 우리 모두를 낭패로 이끌 수 있다. 그저 ‘아니면 그만’식의 인식은 곤란 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충신들은 쫓겨나고 아첨꾼들만 가득하게 되니, 결국 이를 방치한 결과 스스로 망하는 길로 들어섰던 우리의 과거 역사를 되풀이 되어선 안 된다.
오늘날 휴스턴 한인사회는 완장 앞에서 비굴하거나 편법을 사용하는 일, 그리고 목적을 위해선 수단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구태의연한 주장이 허용되는 뿌리 깊은 구태문화를 더 이상 답습해서는 안 된다. 남이 아니라하면 공연히 어깃장을 놓고, 고집을 부리고, 심지어는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힘인 양 우기지만 그럴 때일수록 자신을 곰곰이 되돌아 봐야 한다.
자기자랑의 형태도 다양하지만, 완장이 떨어지면 깨닫고 후회하는, 역사 속에 되풀이 되는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본다.
만기친람(萬機親覽) 형이다. 모든 것을 혼자서 결정하고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고, 자신이 참여하지 않은 회의나 결정에는 회의적이고 불안해한다. 가진 권력이 크면 큰 사람 일수록 조직의 룰이나 정상적인 지휘계통, 절차를 무시하여 독재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추종자의 눈치 보기나 비위 맞추기식의 졸속 결정으로 끝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중심(自己中心) 형이다. 모든 결정을 본인 위주로 처리한다. 중심에 지구가 있고 해와 별 모두가 지구주위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처럼, 모든 일에 자기가 중심(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남의 말이나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는 외면하거나 말을 끊고 끼어든다. 그러기에 그 중심에서 자신의 존재가 밀려날까봐 고민하고, 갈등하고, 남을 미워하고, 결국 자신을 해치게 된다.
이렇듯 우리는 흔히 내가 나를 제일 중요시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나를 중요시 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들도 모든 사람이 자기만을 중요시 하고 있다는 망상을 갖고 똑같은 대접을 받기를 원하고 있을 뿐이다.
끝으로 자기확신(自己確信) 형이다. 누구나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물론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것이 옳은 것이며 의지에 따른 판단이라 믿는다. 그러나 지금 현재의 판단은 남과 다르게 살아온 환경과 경험, 그동안 보고 들으며 순간순간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 것들의 반복적 산물과 습관에 불과하다.
결국 아는 만큼만 보이는 세상이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본 것과는 다른 말이다. 그러기에 살아온 환경이 서로 다름에 따른 다름,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른 다름 등의 수많은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하지 못하면, 나이가 먹을수록 판단기준이 나날이 경직되고 고착화되어 스스로 만든 벽에 갇히게 되고, 모든 일에 내가 옳다는 오만과 편견에 빠진다.
길을 걷다가 세살배기 아이를 만나도 마땅히 배울 것이 있다. 겸손하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며 소통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길을 만든 이를 기억하진 못한다. 길이란 만든 이의 정성에 앞서 먼 미래를 향한 곧은 생각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길은 처음부터 바르게 준비되어 있다.
결국 우리 사회는 남의 잘못을 탓하고 욕하지만 결국 우리 자신도 그 잘못을 똑같이 답습한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고치려 노력하는 공동체는 서로 힘을 모아 도울 것이며 상대의 아픔을 감싸주고, 더 나은 이민사회 만들기, 단순히 외부에 보여주기 식이 아닌 우리의 정신과 힘이 모인 ‘우리의 성 쌓기’에 힘이 모아질 것이다. 선조들의 지혜와 슬기와 참담한 역사가 함께 어우러진 해미읍성과 성 김대건 신부의 생가지 솔뫼성지를 둘러보았다.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다가오길 기대하며…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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