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달린 연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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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만능이 아니다. 60년대 아폴로가 달에 착륙을 시작함으로 우주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당시 미국은 무중력상태인 우주공간에서도 사용할 만년필 개발을 위해 파커사는 무려 백만불을 쏟아 부었지만 실패하였다. 하지만 소련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일반 연필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하찮아 보이는 연필 한 자루도 알고 보면 과학의 원리가 많이 숨겨져 있다. 일반적으로 종이 위에는 연필로 글자를 쓸 수 있지만 유리 위에서는 불가능한 이유는 연필심을 이루는 흑연의 성질 때문이다. 탄소로 이루어진 흑연은 식물섬유가 겹겹이 포개진 종이처럼 거칠거칠한 표면에서는 필압이 작용할 경우 탄소층이 부서져 검은 흔적을 남긴다.
반면 유리는 표면이 매끄러워 탄소층이 걸리지 않아 글씨가 써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연필이 육각형인 것은 손에 잡기 쉽고 잘 굴러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연필의 길이는 과연 누가 정했을까. ‘문구의 과학’ 저자 와쿠이 요시유키 형제에 따르면 1840년 무렵 독일의 유명한 필기구 업체 파버카스텔의 회장 로타르 폰 파버가 어른 손바닥의 손목에서 중지 끝부분까지 길이를 재서 7인치(177.8㎜)로 표준화했다고 한다.
예전보다 쓰임새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연필이 주는 매력은 변함이 없다. 하얀 종이 위에 글을 써내려 갈 때 느껴지는 흑연의 부드러운 질감과 사각거리는 느낌은 오감을 자극한다. 연필을 깎을 때 풍기는 미세한 나무향은 머리를 맑게 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무엇보다 연필은 쓰고 지울 수 있고 오래 쓸 수 있는 장점이 인간관계에 유용이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볼펜으로 선을 그으면 최대 길이가 1㎞이지만 연필은 56㎞에 이른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연필의 길이가 짧아지는 것은 우리네 삶과도 닮았다. 이어령은 저서 ‘지우개 달린 연필’에서 “연필은 나무속에 박힌 일종의 검은 광맥이고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어두운 지하의 탄광을 캐 들어가는 광부의 곡괭이질이다…(중략) 연필은 삼나무의 향기로운 냄새에 둘러싸여 조용히 잠들어 있는 신비로운 물체”라고 예찬했었다.
요즘 이민사회에서 연필이나 펜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자판이 더 익숙한 시대가 되면서 손글씨 쓰는 일이 많이 줄었고 악필가의 증대와 연필 판매가 줄고 있다.
최근 펜과 연필을 쥐는 데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매년 한 두 차례씩 신제품으로 출시되는 터치스크린 휴대전화와 태블릿 등 전자기기를 지나치게 사용해 손가락 근육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탓은 아닐까.
디지털 만능시대. 누구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3월은 생명을 소생시키는 봄을 의미한다. 가족(아이들이나 어르신들)들이 연필이나 젓가락을 제대로 잡는지 한번쯤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연필을 이용한 손글씨는 정서함양과 두뇌발달에도 좋다는 연구가 많은 만큼 일찍 가르쳐 손해 볼 일은 없다.
휴스턴 동포사회에도 갈필정신(渴筆精神)이 있어야 한다. ‘갈필’이란 서예에서 먹물이 진하거나, 속도를 빨리하여, 종이에 먹이 묻지 않는 흰 부분이 생기게 쓰는 필획으로 급하지 않게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찮게 보이는 동포의 말에도 깊은 뜻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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