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자박(自繩自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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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은 많이도 변(變)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새봄을 맞아 만물이 잠에서 깨어나 스스로 기지개를 펴는 자연법칙에 따르게 된다. 꽃이 지면 속잎이 나고, 벌레는 나비로 바뀐다.
시조시인 신흠은 이렇게 말했다.

꽃 지고 속잎 나니 시절도 변하거다
풀 속의 푸른 절레 나비되어 나니는다
뉘라서 조화(周化)잡아 천변만화(千奕萬化)하는고.

7세 때 부모를 잃고 외할아버지 밑에서 경서와 제자백가를 두루 학습한 작가 신흠은 음양학과 잡학에 조예가 남달랐다. 그는 또 현실의 여러 가지 의문점, 쉽게 풀리지 않은 의문에서 철학이 생겨나고 사상이 싹튼다고 믿었다.
현대사회는 학문과 과학이 발달하여 여간해서 밝혀지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자연이 가진 불가사의를 불가사의 그대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했다.
천지변화와 내일을 인간이 모두 알아버린다면 오히려 세상살이가 별 재미가 없어 한마디로 싱거워 진다는 말인데, 결국 사람들의 가슴 속을 파고드는 말이란 결코 큰소리가 아니라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잔잔한 음률들이다. 상처받은 마음을 자연에서 치유하기 위해선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잠깐만이라도 깊은 숨을 쉴 수 있어야 한다.
일단 타인을 향해 비판과 질타를 하려면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난 다음에 그렇게 해야 한다. 이 말은 자기고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까닭은 다름 아닌 마치 소나무 숲을 거닐면서 우거진 노송(老松)에 심취하는 시각적 모습만 가진다면 야외보다 오히려 컴퓨터 모니터나 사진을 보는 실내 생활이 나을 듯하다.
소나무 숲은 사람들에 필요한 유산소를 한껏 제공한다. 치유적 혜택, 가슴 깊숙이 느낄 수 있는 솔향기가 지금 우리 이민사회에 필요하지 않을까.

솔바람 사이사이 님의 향기 맡으며
그 향내 속에 피어나게 나게 하소서
님의 해맑은 얼굴이 분꽃처럼
피리니 내 마음의 등불 되어
세상 밝혀 주리다
<최영기,1996년 작>

치유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필요하다. 한 예로 자승자박 (自繩自縛)이란 말이 있다. 누구든지 자신이 만든 줄로 제 몸을 스스로 묶는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자신이 구속되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스스로를 옭아 묶음으로써 자신의 언행(言行) 때문에 자기가 속박당해 괴로움을 겪는 일에 비유한다. 여기에 자박(自縛)을 더한 말이다.
자기들이 만든 법에 자신들이 해를 입는다는 뜻의 작법자폐(作法自斃)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적폐’라는 말로도 많이 사용되어지고 있는 현실을 어떤 역사관으로 바라봐야 할까. 자기들이 주장한 의견이나 행동으로 말미암아 난처한 처지에 놓여 자신들의 자유를 잃게 된다는 자승자박의 근원은 다름 아닌 지난날의 과오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 글은 한서(漢書) 〈유협전(遊俠傳)〉에 나오는 ‘자박’에서 유래한 말이었다.
이제 몇 년 후 정치권은 선거를 통해 정권이 공수교대가 되며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주장, 적폐청산의 대상이 새롭게 선정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지금 우리의 생각은 달라질 것이고, 나라 역시 여러 가지 정치, 사회적 문제로 말미암아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뀔 것이다. 이것이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가 아니겠나.
우리 동포사회, 자칭 지도자, 원로, 단체장이라 스스로 자부하는 인사들은 자신의 주장이 옳다면 그 뜻을 끝까지 굽히지 말라. 그러나 상대의 품위만은 지켜줘야 한다. 왜냐면 자신의 인격 또한 상대를 인정할 때 만들어진다. 더불어 자신의 위엄 또한 잘 유지하길 바란다. 상대를 궁지로 몰거나, 과도한 행위로 폄하하되 뒷문은 열어주는 배려심도 필요하다. 논쟁의 중심과 주변에 서있는 사람들 모두의 속내는 쉽사리 알 수 없겠지만, 바라건대 제발 그 속내가 빠른 기간 내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잘 감춰두길 바란다.
몇 안 되는 한인들의 삶이 얽히고 어우러지는 이곳 휴스턴이 뒷걸음치는 모습을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줄 기성세대는 아무도 없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번뇌(煩惱)를 일으켜 괴로워하거나 자기가 잘못함으로써 스스로 불행을 초래한다는 ‘자승자박’ 고사성어를 가슴에 간직하고 기억하자.
끝으로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이민사회를 도와왔던 봉사의 손길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당부컨대 남을 돕는다는 이유를 빌미로 나중에 본전이나 빚을 받을 심상이라면 거기에서 멈추길 바란다.
휴스턴 동포사회, 그다지 많지 않은 인구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다. 너무 안일하게 판단하고 그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곳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급해도 애써 만들어 놓은 다리를 건너야지, 급한 나머지 얕은 강줄기라 속단하다간 휘몰아치는 물에 잠길 수 도 있다. 내 앞에 강이 있다면 안전하게 돌아 건너야지 “왜? 강이 하필 내 앞에 흐르느냐”며 불평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유명 코미디언 고 이주일 씨의 ‘일단 한번 해 보시라니깐요~’라는 유행어를 잠시 떠올리면서 휴스턴 동포사회의 미래를 그려본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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