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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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가에서 숭늉 찾는다”는 옛말이 있다. 최근 이민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과 사고를 살펴보면 조급한 나머지 서두르다 일을 그르치는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과연 우리가 인내하지 않고 ‘자유와 자율’의 중요함을 알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생겼다.
자율이란 자기 스스로 인간사회의 약속인 소정의 규율을 지키는 것이다. 이에 자유란 아예 규율조차도 없는 경우를 말한다. 즉 구속을 받거나 통제를 받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자유이다. 자유란 소중한 것이다.
자유를 임의적이거나 고의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을 ‘방종’이라고 하며, 풀이하자면 ‘억지논리를 앞세운 주장’을 뜻한다.
이렇듯 방종은 아무 거리낌이 없이 제멋대로 함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하기에 사회악으로 규정되며 법으로도 규제한다.
자유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상징은 바로 공중을 나는 새이다. 그런데 자연 속에 살아온 새를 새장에 오래 가두어둔다면 결국 새는 날지 못한다. 비행이라는 습관이 퇴보되었기 때문이다. 인간 역시 사회적 규제와 굴레에 오래 갇혀 있다 보면 퇴보, 퇴화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혹시 우리가 품은 이상의 날개가 세상에 펼쳐지기도 전에 자유에 대한 의식 자체를 잊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이 지구상에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타인의 자유와 자신의 자유를 구속시키거나 구속당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스스로의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구속시키려 하는가. 쓸데없는 객기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이민사회를 오염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더욱 필요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자유’란 올바른 해답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답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지도 못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을 ‘자유’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만 하는 만족주의적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고 말 할 수도 없다.
사회를 구성하고 지켜가는 모든 규칙과 규율, 또한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계와 규칙이 주어진다. 이것을 지킬 때 비로소 자유를 누릴 권리가 주어진다. 그러므로 자유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만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해야 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할 때 얻어진다. 그러므로 반드시 규칙과 원칙이 필요하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자유란 무엇인가. 그것은 창조주의 목적대로 사는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곧 하나님 형상대로 지어졌다’고 한다. 신은 인간을 만들 때 반드시 목적에 따라, 미래 정해진 한계 속에서 살아가게 했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피조물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 때 자유로울 수 있다.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와 한계를 주셨다.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주었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한 나무의 과실은 먹지 못하도록 금지하셨다. 금지 명령은 인간에 대한 억압이 아니라 인간 자유를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인간은 그 한계를 지켜야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 한계를 거부함으로써 죄를 짓게 되었다. 자신들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나무 실과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자유, 모든 생물들을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제한하고 있는 한 가지 규칙에 불편해 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만일 자유인라면 이 규칙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한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죄의 시작은 그러했다.
당시 그들은 미리 정해놓은 규칙을 깨뜨려야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을 깨뜨려야 완전한 자유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오히려 종이 되었다”(요 8:34)고 했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경제적 자산만 갖는다고 진정 자유롭게 살 수 있는가. 자유란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을 보라. 인간이 얼마나 본능에 종이 되어있는가를 낱낱이 보여줄 뿐이다.
현대과학의 바다에 표류하는 인간사회는 하루하루 눈만 뜨면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웬만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하면 금세 알 수도 있다.
변화무쌍한 세상, 그럴듯한 논리를 무기삼아 자유라는 이름을 훼손하는 짓거리를 서슴지 않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써의 자격이 없다. 그들은 방종의 끝이 어딘지도 모른 체 마구 떠들어댄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온갖 음란한 문화와 엉터리 제도를 포장시켜 마치 개선장군처럼 보잘 것 없는 옛 경험을 내세워 동포애에 구걸하며 혼란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거짓으로 정당성을 주장한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말하자면, 삶의 기본적인 구별과 제한조차 못하는 방탕하고 방종스러운 짓거리라고 밖엔 다른 말이 없다. 표현할 방도가 없다. 이러한 인간들의 공통점은 바로 마음이 얽매여 있다는 점이다. 불안과 두려움, 탐욕과 경쟁심으로 속이 꽉 차있을 패거리 집단들…
독일 사회심리학자 에릭 프롬이 쓴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orm Freedom )에서 인간들이 얼마나 자유를 잃어버리고 자유로부터 도망하며 살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과거 중세에는 개인의 자유란 찾아볼 수 없었다. 정해진 신분으로 태어나 그 신분으로 평생 살다 죽어야 했다. 르네상스를 거쳐 자유로운 시대가 도래했지만 사람들은 그 자유를 누릴 능력이 없었다. 오히려 그 자유로부터 도피했다. 그래서 근대 역사에서 독재자들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로봇처럼 독재자에게 순응하는 모습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민사회에서 내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지 알려면 어떤 것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멈출 수 있는가’를 보면 된다.
다른 말로는 어떤 것을 ‘차지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포기할 수 있는가’를 보면 된다. 만일 스스로의 선택으로 멈출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다면 그대들은 이미 방종에 오염된 중증환자이며 중독자라고 봐야 한다.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수 없다면 이미 자유인이 아니다.
끝으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 이민사회는 방종으로 가득한 풍토를 물리치고 자유와 자율로 거듭 발전하는 모습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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