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vs 실리 전쟁이 시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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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뱅크오브호프은행이 동포들 무료로 초청한 영화 ‘1987’ 속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그 시대의 정치적 화두는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겠다는 직선제였다.
이즈음 좌파 운동권이 상당한 힘을 키워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중산층 넥타이 부대들이 대거 거리로 뛰쳐나와 주먹을 쥔 데는 직선제란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구성하고 직선제 개헌(改憲)을 ‘시대적 어젠다’로 던진 정계 양대 거목 YS(김영삼)·DJ(김대중)의 추진력도 큰 엔진이었다. 직선제를 골간으로 한 1987년 6·29선언(전두환이든 노태우든 누가 선언했든)은 그래서 탄생했다. 새 지평이 열렸다.
최근 KCC를 한인회에 통합시키겠다고 나선 젊은 지도자가 우여곡절 끝에 다수의 전직 한인회장들의 추대를 받았다. 지금까지 한인회장은 그래도 지긋한 연륜과 다양한 경험 일명 ‘짬밥’(?)이 있는 단체장 출신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폴윤(28대), 김기훈(30대)에 이어 2주가량 공석이었던 젊은 인물이 회장에 추대되었다. 한때는 한인회장 선거가 경선으로 치러지면서 동포사회에 분열양상이 보인적도 있었지만 뇌관일 수 있는 한인사회 대표단체인 한인회를 통합의 도마 위에 올려놓자고 운운하지는 않았다. 시대가 변했을까? 결국 뇌관인 통합을 건드리고 말았다. 참고로 전임 회장 임기가 지난해 8월15일 정관개정에 의해 12월 말일로 종료되었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비상대책위원회가 오직 전직 한인회장에 의해 결성되었다.
일반 상식으로 보면 적어도 지역 단체장들의 연석회의를 통해 여론을 모아야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한인회장 공석에 대한 동포들의 불안감이 높다고 판단한 전직 회장들의 모임 역시 다소 급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창하(David Shin) 현 KCC 이사장과 심완성(Mark Shim) KCC 이사가 회장과 수석부회장에 나란히 거명되고 본인들의 의사를 현장에서 전화, 메시지로 묻고 답하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번갯불에 콩을 구워먹듯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 자리는 당사자의 의견을 묻는 목적으로 마련된 자리였지만, 당선증도 이미 만들어 왔던 것으로 보아 사전논의가 확정된 후에 보여준 요식행위였을 것이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것도 찬성과 반대의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연명으로 인쇄하고 찬성하는 사람만 서명하는 방식은 아리송하기까지 하다. 실례로 당선증을 받은 사람의 임기는 당선자의 신분으로 임기가 시작된다. 추대를 받은 당사자는 인터뷰에서 “자기를 믿고 선택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고 했다. 한인회장 선거에 입후보한 사실이 없는데 무슨 선택을 받았다는 이야기인지, 정리하자면 ‘간택’을 받았을 뿐이다.
정당화를 주장하려면, 전직회장으로 구성된 비대위는 추대한 인사가 수락을 하고 난 후에 당선증을 교부할 것이 아니라, 임기총회를 소집공고 했어야 옳다. 순서가 바뀌었다. 비대위 이름으로 한인회 임기총회를 개최하거나, 적어도 단체장 연석회의 정도는 소집해야 했었다.
무엇이 그렇게도 급했을까? 또 당선증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교부하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나의 기억으론 그 어디에서도 대책위원회에서 교부하는 당선증을 본 적이 없었다. 이것에 대하여 동포들에게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과연 10명 남짓한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차기 한인회장을 당선시킨 전례가 있다고 주장하나, 사실과 다르다. 그러므로 전례의 정당성 확보에 미진했다고 스스로 인정하길 바란다. 만약 정당하다 인정된다면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길 바란다. 한인회는 명확한 정관이 존재한다. 전직 회장들 또한 임기동안 정관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았었나? 그런데 임기가 완료되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모두 잊은 것일까?
추천을 받은 두 사람은 지역사회에서 나름 최선의 봉사를 해왔었다. 현재 추대된 회장은 28대에서 수석부회장을 맡은 바 있고, 지금은 KCC 이사장이다. 그리고 수석부회장은 KCC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들의 잘못은 없다고 본다.
휴스턴의 여러 한인단체들은 당연히 회칙을 갖고 있다. 단체는 일정한 규율과 규칙을 지키고 있다. 회원으로써 준수해야할 최소한의 약속과 회장의 역할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이 말은 누구라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대표 단체의 장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정관을 시시 때때로, 자의적으로, 임의적으로 해석한다면 단체는 명분을 잃고 만다. 그저 동네 반상회 수준 이하로 전락할 것이다.
한인 동포사회는 백마 타고 온 새 인물을 갈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다. 최소한 지금쯤 동포들의 뇌리에 박힌 인물, 손가락 안쪽에 드는 인물이 여럿 있지만 경제가 곤두박질치면서 선뜻 나서지는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동포사회의 성공요인은 누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선거는 늘 직선제 같은 비전을 에너지로 쓴다. 풀어쓰면 개혁이든 보수, 진보주의자들이 모두 뭉쳐 한인사회를 만들어 가야한다.
이들의 정치이념은 비영리단체 지도자로서 임기 중에는 사실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양면적 활동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러한 처세는 불가능한 듯 하면서도 한편 가능해 보인다. 과거 회장들은 드러내놓고 정치적 성향을 자주 표출했던 적이 허다했다. 지금 한인회관 사무실 벽에는 역대 한인회장의 사진이 걸려있다. 그들도 당시에는 통합을 꿈꾸지 않았겠나. 동포사회를 융합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들은 모두 갖추고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통합으로 가는 데는 현실적으로 많은 장애물이 있을 것이나, 오히려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차기 회장의 할 일이 분명하다는 뜻이다. 결과가 있어야 한다.
영화 1987처럼 동포사회의 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함께 할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이제 확실하게 정해졌다. 이참에 그동안 여러 동포들이 궁금하게 여겨왔던 한인회관 건립 결산보고도 시원하게 밝히고 처리하자. 뜬소문으로 일관되었던 불신을 해소하고 동포사회와 소통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통합의 길이다.
괜한 염려인지는 몰라도, 사실 두 단체의 통합은 정치 공학적으로도 아슬아슬하다. 한인회가 자존심을 버리고 KCC가 바라는 현실적인 접근방식을 따를 것인지, 공개를 꺼리는 KCC가 선뜻 한인회로 귀속될 것인가? 자칫 충돌이 생기면 불똥은 사실상 다음세대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60여년 간의 휴스턴 한인 이민사는 한인회를 중심으로 터를 잡아 성공하는 듯 했지만, 지금 큰 기로에 서있다. 해결책은 고정관념으로부터 과감히 결별해야 실행될 수 있다.
향후 한인회 임원진과 이사회 구성원은 두 단체의 통합에 시너지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골칫거리를 함께 협력하여 해소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져야한다. 이 둘의 결합을 놓고 기존 단체장들 역시 엄청 고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통합이란 명분싸움이다. 어찌됐든 두 단체는 이제 큰 실험대에 올랐다. 시간은 과연 누구의 편일까. 그 계곡이 깊을수록 나는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 물론 계곡을 기어코 건너야 한다는 전제가 선행될 때 가능하며, 동포들의 거는 기대가 크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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