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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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제천 화재가 연말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버스로 20여분 근처에 부모님 산소가 있었던 탓에 신경이 쓰였다. 가끔 한국방문 시에 거쳐 간 고장에서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후배가 송년파티를 노래방에서 한다고 했다. 문득 노래방 구조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어두컴컴한 복도와 외부와 차단된 룸에서 일 년 동안 쌓인 피로를 풀기엔 적당할지 몰라도 밖의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다.
예전 골목골목마다 불빛을 밝혔던 노래방을 기억해 보았다. 굽이굽이 좁은 복도를 지났다. 특히 연인들이 타인의 눈을 피해 오붓한 시간이라도 가지려면 맨 끝 정말 후미진 곳을 선호하기도 한다. 워낙 구석에 있고 방음시설이 잘되어서 비명을 질러도 들릴까 말까 한 ‘도시 속 오지(奧地)’나 다름없었다.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엄습했다. 혹시 화재라도 발생하면 ‘비상탈출’은 원천불능이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허둥대고 당황하여 비상탈출구를 찾지 못하기 십상이다. 자그마한 녹색불빛 비상구(EXIT)가 있지만 거기다 ‘목숨’을 맡기고 두어 시간여 노래를 부르면서 즐길 여유가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다행스럽게도 휴스턴에는 지하 영업장이 거의 없다. 한국의 경우, 특히 스크린골프장, 노래방, 식당과 술집…. 지하에 있는 경우 훨씬 취약다는 점이 떠올랐다. 임차료 싼 곳을 찾다보니, 방을 더 만들기 위해, 테이블 좌석을 늘리기 위해, 창고 몫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좁은 공간을 넓게 쓰려다보니 생긴 일이다. 서민 생계형 사업장에서 주로 벌어지는 일이다. 넓고 안전한 사업장을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은 탓이다.
제천화재 이후 한국방문 시 지하 노래방과 다방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대한민국 사건사고사(史)에서 세월호 침몰은 빼놓을 수 없다. 오래된 선박, 불법개조, 평형수 부족, 과적(過積), 무리한 운항, 조종 부실, 선장(船長)의 태만, 관리감독 부실 등 사고가 날 요소를 빠짐없이 갖췄다. 어느 하나만이라도 ‘정상’이었다면 사고가 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설령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그렇게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 당국도, 야당(지금은 여당이 됐지만)도, 언론도 ‘세월호 전(前)과 후(後)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정말 달라졌을까.
정부 당국은 검찰수사를 통해 관련자를 처벌했다. 구조작업을 제대로 못했다며 해경을 해체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공세에 휘말려 아무 일도 못했다. 현재 집권당 주도로 만들어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도 ‘왜 침몰했는가’라는 본질보다 곁가지에 몰입하다 끝났다. 언론 역시 추모 열기가 식자 관심을 꺼뒀다.
제천 참사를 여기에 대입해보자. 건물 불법 개조와 여성 사우나의 협소한 비상구는 정부가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국회가 법을 바꿔 소방차나 사다리차의 진입로 확보를 뒷받침했다면 지금 같은 희생을 치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안전 문제를 끊임없이 추적, 보도하지 않은 언론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피해보상에만 목소리가 높았지 안전예방에 변한 것이 없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안전의식은 공기와도 같다. 있을 땐 소중함을 알 수 없다. 공기 없는 세상살이는 상상조차 못한다. 안전의식도 이래야 한다. 그런데 안전의식은 생색이 나지 않는다. 아무 사고도 없다면 그게 가장 안전한 사회다. 그냥 운(運)이 좋아 사고를 면한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제부터라도 한국 정부와 국회는 국가·사회안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재난 관련 공무원들은 유사시를 대비해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 또한 정부와 공직자들만 믿을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안전은 알아서 지켜야 한다.
이렇게 해야 사건·사고가 줄어든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초부터 한인회가 준비한 재난대책 준비에 관한 논의처럼 우리 이민사회는 많은 일을 예비해야 한다. 하지만 표시나지 않는 일을 위해 헌신할 지도자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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