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우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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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문재인 정부의 방송장악 저지 피켓시위를 하고 있을때 본회의 입장하던 손혜원 의원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자 심재철 의원이 막아서고 있다. 2017.09.09. since1999@newsis.com

새 달력이 나왔다. 정말 새 것일까? 사무실 근처에 있는 자동차정비소 주차장 모퉁이에 방치된 녹슬어 있는 쇳조각들처럼 우리의 삶도 어느덧 1월을 맞이하면서 지난 시간동안 그렇게 변색되고 퇴색되어 온 것은 아닐까.
작년 이맘때 교회에서 받은 달력이 아직까지 새 것처럼 책상위에 버젓이 서있다.
지난 세월이…
바쁜 나날이었다면 휴식을 필요할 것이고, 한가하고 지루했던 지난날이었다면 분주하게 일거리가 주어지길 바라는 것처럼 삶에서 어떤 것에 매력을 찾는가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한 예로, 강한 부모 밑에서 성장한 사람의 배우자 선택은 거의 연약하고 조용한 아내일 것이다. 하지만 늘 자상하고 사랑으로 일관되게 자녀를 훈육한 부모는 자유분방하고 개성이 넘치는 성격을 가진 며느리를 맞이하게 된다.
인간은 역사를 통해 자기와 다름에 매력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일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고 녹슬어 있고, 기대보다는 실망감으로 점철되었던 지난 세월은 오히려 분주하고 정신 차릴 여유조차 없이 빠르게 흘러왔다고 생각하길 바라며, 후회나 안정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으면서 열연을 하지만 결국 막이 내린 후 관객이 떠나가 버린 어둠에 묻혀버린 빈 좌석을 보는 것은 또 다른 공허이기도 하다.
그렇다. 나는 나의 일을 하고, 너는 너의 일을 한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인 이민사회는 마치 ‘나는 너의 일을 하고, 너는 나의 일을 하는 것이 옳고, 그것이 협동이고 공생인줄 알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일을 해야 하고, 너는 너의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뒤죽박죽 누가 지도자며 누가 회원인지도 구분하지 못한 채 집단 패거리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그러나 반드시 예외가 있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빙자하여 간섭하며, 자신의 노력 없이 남의 도움만으로 행세하려고 했었다.
이것은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말이다.
돌이켜보자. 지난 60년은 사막과도 같은 텍사스를 처음 밟은 우리 선배 이민자들 노력은 말 그대로 척박한 땅에 씨를 뿌렸다. 워낙 태양의 열기가 높아 그냥 말라버렸지만, 그것들이 묻혀 거름이 되어버린 이곳에 우리가 서있다. 겨우 몇 그루 잎 떨어뜨린 이민나무들이 겨우 가지만 앙상하다손 치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자. 그래도 적으나마 그늘은 있기에 더위를 피할 수는 있다고 본다.
사실 대부분의 휴스턴 동포들은 한국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저 국민 삶이 경제적 안정 속에서 조금씩 번영해 가길 바랄뿐이다.
우리의 근대사를 돌아보면, 인조 14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청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공격하자 임금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부랴부랴 숨는다. 순간의 굴욕을 견디고 목숨을 부지해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과 청나라와 맞서 싸워 대의와 명분을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 그사이에서 방황하는 왕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만든 영화가 <남한산성>이다.

조정이 흔들릴 때 민중은 추위와 배고픔에 고통스러워한다. 영화 첫 장면, 얼음 강을 건너게 해준 사공을 죽이는 장면인데 의미심장하다. 사공은 죽기 전 이런 말을 남긴다. 청나라를 도와줬을 때는 곡식이라도 주지, 조선을 도와주니 좁쌀 한 톨도 주지 않았다고.
남한산성에 원래 살던 주민들은 왕이 옴으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망가져버렸다. 무당에게 날을 받아 전쟁을 감행하고 자신의 판단착오로 전투를 망친 영의정은 현장 지휘관의 목을 벤다. 청나라의 통역관이 된 정명수는 조선의 노비였다. 사람 취급을 못 받던 그는 그저 청나라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전쟁을 일으킨 건 민중이 아니라 나라였는데 정작 고통 받는 것은 백성이고, 이들은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지켜야만 했고, 왕과 조정의 생존까지도 책임져야만 했다. 민폐 덩어리이고 함량미달의 위정자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참한 순간과 고통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왕이 곧 국가라며 생존을 종용하는 최명길, 명나라를 위해서라면 조선마저 버린다는 김상헌, 정권을 지키는데 급급해 50만 백성들이 청나라에 끌려가 참혹한 일을 당하게 해버린 무능한 인조, 이들의 고통만 부각될 뿐이다. 지금과 비교해도 별로 다르지가 않다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손으로 뽑은 민주주의 꽃이라 불리는 대의정치, 국회의원들… 지금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들 스스로 윗사람(?)에게 잘 보여서 포인트나 올리고 승진만 하려는 공무원, 깊게 들여다보지도 않고 깔 것만 찾아서 침소봉대 하거나 과대축소, 거짓뉴스를 만들어 전하는 언론 등 국가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국민의 삶 따위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영화에서 청나라 황제는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할 뿐이다”라면서 남한산성을 향한 대포를 물린다. 내부에서 무너질 것이니 가만히 두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들이 일을 똑바로 했으면 대포를 쐈을 것이라고 본다. 아니 남한산성이나, 강화도로 도망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성을 생각했다면 이미 중원의 지배자가 된 청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욕망과 안위만을 생각했을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죽어가고 고통 받은 것은 왕이 아니라 백성이다.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한 것이 뭐가 그리도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백성을 살리려면 미리 천 번이라도 했어야 옳다.
2018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정치인들이 하지 않은 것이 해가 바뀐다고 하루아침에 바뀔 리 만무하다. 중요한 건 ‘억울하지만’ 나부터 바뀌는 수밖에 없다. 남을 욕할 시간에 자기 성찰을 더하고, 남의 것 배 아파할 시간에 자기 정진을 더하고, 나의 것에 집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잘해주고 더 사랑하는 것이 남는 것이다.
이건 각자도생과는 또 다르다. 생존을 넘어 내 삶을 스스로 이끌어나가는 방법이지 않을까.
이렇듯 이민사회 역시 “나는 나의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이런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그나마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2018년 새해에는 더 즐겁게 살자! 즐겁게 사는 것이 최대의 승리이며 행복이다. 부러우면 진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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