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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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뜨거운 휴스턴의 여름을 식혀주던 올해 소나기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후끈한 열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차가운 음료수와 에어컨 바람 곁으로 찾아갈 즈음, 도시는 순식간 폭우로 채워지고, 넘쳐나는 저수지는 수마로 돌변하여 우리 삶의 터전을 삼키고 말았다.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의 존재는 처참하였다. 지나치게 성급하고 무분별하게 건설된 주택은 하루아침에 호수에 잠긴 섬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유독 긴 지난여름이 점차 싫어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무더운 시간을 잘 버텨 나가는 데는 모두들 인내하였으나 이제부터는 허리케인 트라우마가 생겼다.
재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지난 수개월동안 재해를 당한 수재민들은 아직까지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고 웃음을 잃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도 무상하게 되었다. 언제 예전으로 돌아갈지 모르겠지만 한숨이 깊어만 간다.
연말이 다가왔다. 펜을 들어 기억 속에 웅크리고 있었던 올 한해의 사건들을 끄집어내 써 내려가던 중에 가슴을 탁치는 사건이 튀어나왔다.
올해 초로 기억된다. 한인회로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있었다. I-10 서쪽 조그만 마을에서 일어난 한 청년의 죽음이었다. 아들을 잃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머니의 급박한 이야기다. 외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나 막 사회에 적응하는 스물을 갓 넘은 나이에 그만 스스로 생을 마감한…
외국인 남편과 이혼을 하고 홀로 타주에서 어렵게 생활하던 어머니는 아들이 어떤 이유에선지 생을 스스로 마감한 이유도 모른 채 주위에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한인회로 급히 도움을 요청해 왔다. 전화상으로 들린 전혀 모르는 여인은 울음 섞인 음성과 다급한 심정을 금세 알 수가 있었다. 사건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본 다음, 한미여성회 회원들과 상의한 끝에 도움들 얻어 무사히 장례예배를 마쳤다.
당시 시골 조그만 교회에서 차분히 진행된 이름 모를 청년의 장례예배에서 울려 퍼진 노래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1965년 사이먼과 가펑클이 불러 빌보드지 1위를 했던 <The Sound of Silence>를 백인 친구가 불러주었다.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Because a vision softly creeping,
Left its seeds
while I was sleeping,
And the vision
that was planted in my brain
Still remains
Within the sound of silence.

내 오랜 친구, 어둠이여
자네랑 이야기하려고 또 왔다네
왜냐하면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
어떤 환상이
자기 씨를 심어놓았기 때문이지
내 뇌리에 깊이 박힌
그 환상은
아직도 여전히
침묵의 소리로 남아있다네…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잠시 망자의 생을 회상해 보았다. 어머니의 슬픔을 뒤로한 채 홀로 어두움 속에서 배회하는 모습을… 그날 대충 정리해서 적어두었던 수첩 한켠에서 글을 발견했다. 올 한해동안 있었던 사건 중에 가장 우울한 내용이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은 겪지 않은 이들에겐 결코 어떤 말로도 형용이 안 된다.
또 한 분은 늘 자상한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한글 이름을 손수 붓글씨로 선물하시던 지역 선배였다. 구정을 며칠 앞두고 급작스럽게 우리의 곁을 떠난 일과 평소 호탕한 성격으로 후배들을 아껴주었던 그의 소천소식은 우리 이민생활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분이 남긴 따스한 모습과 온정은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죽음의 문턱에 서있으면서도 뒤에 남겨진 가족들의 미래를 걱정하였고 애달픈 가족애를 남기고 떠나가신 분들이었다. 뭐라고 평가하기에는 무언가 풀리지 않는 과제를 떠안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분들의 평소 소원이 모두 이루어졌는지 아직까지 알지 못한다.
그렇게 메워가는 이민사회의 순환의 역사는 아쉽게도 누군가 채워야 할 빈자리로 남는다. 우리 모두는 가족들에게 얼마만큼이나 만족스러운 사랑을 키워나가게 할 수 있을는지… 때론 죽음을 눈앞에 둔 암 환자의 절절한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한 편으로는 죽음 앞에서 자신을 정리해 나가는 당당함이 부럽게만 여겨진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아픔은 뒤로 한 채 오로지 부성, 아내에 대한 배려만을 생각하는 그 환자에게 서러운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남겨진 사람들이 느껴야 하는 그 빈 공간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아픈 상처로 머물러 있을 것만 같다.
겨우 몇 달 밖에 남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어느 시한부 생명의 나이든 홀 엄마가 자신의 아들들의 앞날을 걱정하기가 일쑤이고 자식들이 앞으로 수많은 난관을 헤쳐 나갈지에 대한 염려가 그들의 마지막 소원인 셈이다.
우리 동포사회는 자신의 가슴을 진정으로 따뜻하게 열어 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한해를 보내면서 늘 볼 수 있는 지인들과 이웃들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노년층은 물론이거니와 이런저런 경제적 이유에서 타주로 이주하는 이웃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련한 마음이 들 것이다.
진정한 희생과 사랑은 이렇듯이 마음의 고통을 동반하며 이루어져야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조금만 더, 또 조금만 더 하며 사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적인 바람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살아남는 자에게는 남는 대로, 또한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자는 사라지는 대로 모두에게 아픔과 회한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늘 이방인이 되어 가는지도 모르겠지만… 늙은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 모든 것은 흐르는 강물처럼 덧없는 것.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며, 한 순간에는 반짝이지만 다음 순간에는 헤엄치는 사람보다 더 빠르게 흘러가 버린다. 하지만 흐름 그 자체는 영원한 것”이라고.
세상을 살아가는 게 아직 어리다면 흐르는 강물 속을 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렴풋이나마 사는 것을 이해 할 수 있게 될까. 사람들이 세속의 일에 매달리게 되는 것은 아직도 그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디언 추장의 현명한 말을 믿고, 꿈에 매달려 쫓아다니는 어설픈 사람의 형태에서 벗어나 보자.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이루어진다는데 올 한해에 먼지 묻은 마음을 벗어서 훌훌 털어 내 버리자.
이런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고 다시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삶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다가오는 새해에는 우리가 진정으로 가슴을 열어 보이면 그 속에 담긴 응어리가 바닥을 드러내며 ‘내가 아닌 너’라는 타인에 의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흘러가는 강물을 억지로 막을 수 없듯이 우리의 삶도 대지의 법칙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그 흐름에 맡겨야 할 것이다.
지금 서있는 이 공간과 시간을 조금의 후회만 남기며 마무리하고 남은 12월을 잘 살아야겠다. 그리고 2018년 1월을 깊고, 넓은 가슴, 열린 가슴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야심찬 희망을 다시 한 번 가져보는 게 어떨까. 한해를 보내며 나를 생각한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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