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사회 자존심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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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달로 인해 생명연장은 되고 있으나, 여전히 ‘의료비부담’에 발목이 잡힌 채 삶을 멈춘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연명치료를 받고 있는 노년층 환자가 폭증한 것은 고령사회가 된 탓도 있지만 사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자식들의 관심도가 줄어들고 생활반경이 확대됨으로써 지척에서 돌보지 못한 까닭에서 미친 영향 역시 크다.
이민사회에서 경제적 이유와 여하한 까닭에 부모들을 돌볼 여력이 없는 것은 다소 이해가 간다지만, 그래도 곁에서 지켜보는 이웃들은 그들에게 “해도 너무한다”는 씁쓸함을 안겨 주기도 한다. 특히 독거노인들의 경우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의사들은 특히 환절기가 되면 노인들의 심장에 무리가 발생하여 가벼운 감기에도 쉽게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다 같이 냉철히 생각해보자. 쉽게 말할 수 없는 논제이지만 노년층을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Letting die)과 죽이는 것(Kill)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차이점조차 구분하지 못한 무지막지한 생각이 이민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어떤 것이지. 물론 현실감이 없다면 내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경제적인 차원만 생각한다면 무의미한 치료에 엄청난 의료비를 쏟아 부으며, 삶을 연장할 수밖에 없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 그리고 막대한 사회적 연명비용이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은 너, 나할 것이 소중하다. 생명윤리의 기본원칙을 깡그리 무시하며 병든 부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야말로 반인류적인 행위가 아닐까.
‘부모님 살아 실제 효도하라’라는 말은 지난 수세기 동안 유교적 교훈으로 계승되었으나, 사실 현대에 와서 현실적으로 잘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생명이 위태로운 부모를 지켜보면서 ‘효행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만사를 제쳐두고’라며 강조하는 것도 다소 무리가 따른다.
한 예로, 식물인간 상태에 놓인 환자의 생명을 연명하기 위해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 막대한 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남은 가족들의 삶이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난간에 부딪히면 일반적으로 살아남은 자를 위한 방편 책으로 쏠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불효이고 악행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 수술을 할지 말지, 수술 후에도 치료를 지속할지 말지를 지금까지 내려오는 사회적 통념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회의를 통하거나, 합의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경우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이 ‘생명 존엄의 원칙’이다. 한정된 경제력을 두고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막대한 의료비를 소모하는 것과 가족애에 집중한 나머지 경제적 약자의 길을 걷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이냐는 쉽게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족의 치료에 무한책임을 제3자가 강요하는 것이 사회적, 인간적 정의라고 할 수 있는지도 따져 보아야 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의 치료를 포기한 사람을 모두 살인죄로 낙인지울 수는 없지 않는가?
이런 생명윤리에 관한 원칙들은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것이어서 긴 시간의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 우리 이민사회는 특히 경제력이 없거나 독거노인들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종교계에서 장례비를 십시일반 기부하여 충당했지만 점점 늘어가는 장례비용과 초고령화시대의 공적비용을 어떻게 뒷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따라야 한다. 단순히 일방적으로 ‘효도하라’라는 말로는 현명한 해답이 아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가혹한 이민사회의 현실 속에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대접받지 못한다면 우리사회는 또 다른 큰 범죄를 양산해 나가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누가 누구에게 이러한 판결을 내릴 수 있겠냐마는 생명윤리에 관한 사회적 비용과 대책마련을 위해 일회성, 전시적, 선심성 행사를 미루거나 다소 축소하더라도 이민사회 지도자들은 하루속히 ‘공적 장례비용 마련’에 고민하며, 앞장서 실천해야 한다. 마지막 가는 길이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기본은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마지막 남은 한인동포사회의 의지이고 자존심이 아니겠는가?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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