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 새 일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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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신용이 단순히 금전적인 기준점으로 평가되어선 곤란하다.
과연 대중 앞에서 평가를 받을 때 담담한 자가 있을까? 정당한 평가의 잣대란 지극히 개인성향이 짙은 모호한 판단이어서 일방적으로 말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논리를 앞세우면 안 된다.
특히 동포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선출하려면 먼저 후보자 자신이 지난날의 행적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고, 올바로 깨달아야 한다. 일단 한번 해보자는 식은 곤란하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기 보다는 내가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먼저 가져봐야 한다.
평가는 상대평가와 절대평가가 있다. 이민사회를 보편타당적으로 보며,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인재, 동포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아픔을 반으로 나눌 수 있는 품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대적으로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저 몇몇 후원자의 말만 믿고 나서는 일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한인회는 스무 명 남짓 지도자가 교체되었다. 휴스턴 한인 역사 또한 60년이 지났지만, 기억에 특별히 남는 인사가 드문 이유가 그것을 반증하는 것 같다.
이민사회를 이해하려면 먼저 미국역사를 둘러봐야 한다. 영국을 떠나온 100여명의 청교도들에 의해 개척된 미국, 다양한 사회정책의 밑바탕에 녹아있는 그들의 정신을 모두 이해하기 위해 특히 어릴 적부터 유교와 불교사상에 젖은 우리의 성향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주류사회와 이민사회의 융합을 모색할 정책조차 접근하기 힘들지 않을까.
우리의 경우 이민을 준비함에 있어 중요한 점을 ‘돈’에 두었다. 정작 미국이란 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교육, 역사는 전혀 고려치 않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미국으로 일단 오고 봐야 한다는 식이었다. 사전지식의 부족으로 인한 심한 시행착오와 갈등, 좌절…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300만명의 미국 이민행렬. 그들은 당시 전쟁, 가난, 유학, 새로운 직장을 찾아 급히 이주하였고, 어쩌면 환상적인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꿈은 꿈으로 끝나선 안 된다.
100년이면 강산이 열번 정도 바뀌었으나, 실제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언제까지 100년이란 숫자에만 연연할 것인가. 막연한 생각만으로 이민사를 기록할 수도 없고, 휴스턴 동포사회를 발전시킬 수도 없다.
이민사회의 변화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필자의 생각은 잘못 선출된 지도자로 인해 동포사회의 발전이 늦어지고, 개인적 성향의 왜곡으로 분위기가 변질되어 혼탁한 이민사회의 각종 루머가 팽배하여 상대적 이질감이 표출될까 심히 우려된다.
이제 한달 후면, 2년 동안 휴스턴 한인사회를 대표할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게 된다.
말은 선출이지만, 가진 자, 재정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국한된 일이다. 왜냐면 임기 동안의 모든 재정적 책임을 회장 혼자 져야한다는 전제가 깔려있기에 누구든지가 아니라 특정인 몇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때 자기돈 몇 만불과 뒷돈 몇 만불을 내고 거들먹거리지 않을 일이 없다. 이런 현실적 모순을 두고 일부에선 ‘갬블선거’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만약 경선에 이르면 탈락한 후보자의 공탁금 2만달러가 고스란히 날아가기 때문이다. 선거는 도박판이 아니다.
미국사회에서 2만달러면 무척 큰돈이다. 보통사람이 1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생활해서 남은 돈을 저축하여 마련하기 힘든 액수이다.
진정으로 이민사회의 발전과 동포들의 권익을 이끌어내기 위한 자리가 공탁금 지불능력 부재로 인해 그 꿈이 사라지게 되어 민주주의를 자본주의가 장악하는 기이한 현상으로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동안 지도자로 나온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 역량이나 치적은 차지하더라도 일단 금전적 능력과 용기 있는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이민초기, 우리 1세대들의 터지고 갈라진 손에 쥐어진 몇 푼의 달러가 지금의 동포사회의 기초가 되었다. 사실 꿈과 현실은 돈이 먼저고 그다음 문제가 동포사회이라고 속으로는 말하고 있다. ‘승리한 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는 논리이다. 지도자는 갖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에 익숙하고, 훈련되어져야 한다.
휴스턴 한인동포사회가 변화하고 발전하길 한껏 기대하고 있지만, 실상 그렇게 될지 의문이 든다. 그저 ‘누군가 하겠지’ ‘누가하면 어때, 나는 관심없어…’라는 말들이 무성하거나, ‘자기 돈 내고 욕 얻어먹는 일을 뭐하러…’라고 한다면 동포사회나 한인회가 아예 없는 편이 나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참여가 먼저이다. 그 다음이 비판이다.
몇 해 전 고희의 나이에 임종을 앞둔 이민 1세대 선배와의 대화 중에 그는 아직 남은 일이 있어 쉽사리 눈을 못 감겠다고 했다. 이유인즉 남은 가족과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자식들 걱정에 아직 눈을 감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는 운명을 달리 했다. 그가 내게 남긴 메시지는 ‘자신이 떠난 후의 세상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장례예배를 집전한 목사는 “고인이 이제 영면에 들어가니 천국은 고통과 걱정 없이 영원한 안식이 있는 곳이라…”며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였다.
그렇게 천국환송예배는 마쳤다. 결국 본인의 바램은 출석교회 목사가 대신하여 전했다. 나 역시 설교처럼 되길 간절히 소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목사란 성도들을 돌보는 목자이다. 종교적 지식을 전달하고 신앙생활의 길라잡이 역할을 충분히 해오고 있다. 영적치료와 영성을 찾게도 한다. 신앙생활, 영적인 훈련은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게 아니다. 아름다운 삶을 체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아름다운 죽음을 체험하게 된다고 설교를 통해 아주 친절하게 말해 왔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불현듯 죽음은 찾아온다. 다만, 그때가 언제냐는 것은 나와 상관없는 별개로만 여기며 현실을 부정, 회피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이러한 때에 목사나 동포사회 지도자 역시 직접 경험하지 못한 죽음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나 가족, 동포사회에 어떤 메시지로 위로할 수 있을까.
또한 겨우 몇 마디 말로 그들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과 고통을 완치할 수 있을까.
예상컨대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의 마음속에는 남은 가족들이 간직할 만한 무엇이 있다’는 말은 그저 허구일 뿐이다.
역설적이지만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의 일환으로 자기성찰이 이루지지 않으면 할 말이 없기 마련이다. 그래서 회환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반성인 회개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면 전해줄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다. ‘유구무언’이란 말의 뜻이 떠오른다.
결국 아름다운 삶을 마무리하려면 자기반성이 있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죽음이 가능하고, 남은 가족들 역시 평화로운 삶이 보장되며, 끝까지 무거운 세상 짐과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결코 가벼운 영혼조차도 얻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한인회장을 선출함에 있어, 후보자는 물론 추천인 역시 자기성찰 없는 자를 ‘지도자감’이라는 말로만 칭하면 안 된다. 그저 남보다 형편이 넉넉해서 ‘노는 김에 장독 깨자’는 식의 억지 춘향식 추천만은 삼가야 한다. 지도자와 복지가는 마땅히 구분되어야 한다.
지금 휴스턴 한인사회는 원하고 있다. 돈 많은 복지가보다 비록 가난하지만 휴스턴 한인사회를 이끌어갈 뜻있고 현명한 지도자 한명을…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신선한 일꾼이 필요하다.

최영기/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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