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국제정세···침묵의 대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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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삶의 여러 요인들에 의해 결국 이성을 통제하지 못해 화를 내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바탕에는 이성적으로 되지 않았다는 점이 나타난다. 흔히 하는 말로 ‘뚜껑이 열리는 것 같다’라는 말이 이를 반증해준다.
현대문명의 급격한 발달로 인해 인간의 멘탈이 쉽게 붕괴되는 세상이다. 한 예로 ‘묻지마 범행’의 중심에는 사회적 불만이 있다고 변호사들의 변론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행위가 사회에 만연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중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멘탈붕괴의 근본적 요인은 참을성이 부족한 급한 성격에 문제가 있다. 상대적 빈곤감이 개인은 물론 국가 지도자에게 이르기까지 옮겨가고 있는 추세이다.
누구든지 궁핍한 환경을 좋아할 리 없다. 또한 어려운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단순히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듯 한 행위라면 이 말은 동물에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현실을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사고를 가짐과 동시에 진보적인 성향과 보수적인 성향도 함께 지니고 있다.
흔히 자신들이 겪은 고통의 순간을 떠오르면서 “다시는 그 이야기와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면서도 혹여 입장이라도 바뀌면 즉시 과거를 부인하고, 의혹을 부인함과 동시에 궁색한 변명으로 지난날을 변명으로 치장한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모순된 특성이다.
인간이 가진 욕망은 평가절하해서도 과대 망상적으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이러한 말들이 주어지는 요인들을 찾아본다면 그것은 외부에서 여과 없이 다가오는 충격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다.
인간의 꿈과 욕망은 뜻 자체가 엄연히 다르다. 일부 몰지각한 지도자들에 의해 구분 없고 자기망상에 빠져 정치, 사회적 갈등만 야기하기도 한다. 당연히 자신의 반성이나 성찰 없이 목소리만 크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당연히 대두되는 지난 정부의 업적이나 정책을 모두 적폐로 보고 청산코자 한다면 한마디로 국가자체의 자존감을 스스로 내다 버리는 행위라고 보여 무척 아쉽다.
정치발전과 사회발전을 일반 시각으로 이해하자면 단순히 순환의 미를 발견할 수 있으나 결국 권력이란 갖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지키기 위해 온갖 편협적인 힘을 축적하려고 한다. 그러나 주어진 임기동안 자신들의 새로운 틀을 완성하려는 조급증에 빠져 최종 목적과 목표점을 잘못 설정하는 우를 범하고 말 것이다.
맹목적으로 정권유지에만 매달린다면 결국 국가는 내·외적으로 크나큰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국민들은 정부가 바라는 대로 쉽사리 움직여주지 아니할 것이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표출하게 된다. 또한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조용한 분노가 일어날 것이며 결국 자연스럽게 입속에서 튀어 나오는 말들 또한 심상치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직한 여론이다.
또 다른 것은 정치권이 공적 실언이나 올바르지 못한 정책을 주장한 것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일어난다면 이것이 단순히 일시적인 수치감이 아닌가. 결국 고통과 생명의 위협의 순간이 국민들의 코앞까지 다가온다면 국가의 운명을 지키기엔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건강하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들로 기인된 까닭일 것인데 흔히 ‘분노’ ‘심한 괴로움’ ‘죄 의식’ ‘우울함’ ‘무가치함’ ‘부끄러움’과 같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사회적(정치적)인 동물”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수많은 어려움들이 많지만 그 중에 가장 어려운 것 중에 하나를 든다면 ‘관계’라고 본다. 관계는 다른 말로 대화로도 표현된다. 잘 소통되는 대화는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반드시 좋은 대화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대화 가운데 나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상대방보다 더 나은 조건과 위치에 있다면 상대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지나친 기대감이나 요구는 불편한 관계를 만든다. 자신이 가진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한다면 지나친 기대감을 갖게 되어 결국 파행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자신을 이성적으로 통제하고 잘못된 점을 반복해서 스스로 고친다면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 상대를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려고 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서로의 눈높이가 높을수록 마음에 상처 또한 깊고 클 것이다. 끝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을 무척 피곤하게 여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신뢰감을 상실해가는 나라들에 의해 크게 나타나고 있다.
필자도 일상생활 중에 가끔 강한 자기주장만을 피력하는 인사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은 했으나, 쉽지는 않았다. 결국 마음의 상처를 받은 상대가 품은 깊은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되었던 적도 있었다.
결국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몇 마디 말뿐인 훈계 보다는 오히려 가슴 따뜻한 격려를 듣고 싶었고, 비록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나의 조언을 들어 주길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을 뿐이었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을 봉합할 올바른 코칭스텝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러시아… UN, IOC, 유럽연합, 아시아연합… 모두 역량부족인 것 같다. 핵폭발처럼 용솟음쳐대는 각자의 분노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해결책은 바로 ‘올바른 관계형성’이라고 본다. 좋은 관계라는 것은 상호가 조금씩 희생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을 위해 때론 ‘침묵의 대화’가 필요하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렵다고 했고,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최영기 / 휴스턴이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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