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밀하고사적인관계에서 갑이 을에게 가하는 심리적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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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어느 날, 선배 언니가 대화 중에 “갑”이라는 고색적인 단어를 사용했을 때 나는 고개가 갸우뚱 해졌다. ‘저건 은행이나 보험회사 약관에나 들어있던 단어인데, 사람 관계를 설명하는데 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다니 단어 취향 한번 독특하군.’ 이라고 생각을 했다. 또 몇 년이 지나자 어떤 지인은 자신이 한 어떤 실수에 대해 스스로 논평하기를 “우리집 갑선생이 보았더라면 큰 일 날뻔했군.” 농담인지 부인에 대한 절대 공경의 의미인지 알지못할 의미를 담아서 부인을 갑선생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그즈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한국 사회에서 갑이니 을이니 하는 단어가 농담처럼 유행하기 시작하던 현상이다. 적어도 내가 한국을 떠나올 시절만 하더라도 사람간의 관계를 논하며 그런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갑과 을이라는 수직적이고 대치적인 권력 관계를 나타내는 이 호칭은 은행통장의 약관 속에, 또는 공적인 계약관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기억하던 내게는 매우 생경스러운 풍경이었다. 언젠가부터 한국에선 관계의 성격을 막론하고 대인간 관계의 역동을 “갑 대 을”로 치환해 버리는 인식이 시대의 유행처럼 번져가게 된듯하다. 관계의 주도성을 적나라하게 낙인찍어 버리는 갑을병정이라는 단어를 노골적으로 사용하는 분위기는 매우 불편하다. 한국 사회의 층층부에 깊게 자리 한 “갑질 문화”는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정서적 학대라 말할 수 있다. 타인에게 정서적 학대의 다른 이름인 갑질이 횡횡하는 시대는 하루 빨리 종결되고, 내 앞에 있는 상대방에게 최소한의 존중을 전할 수 있는 심리적인 수평 관계가 사회의 층층에서 관계의 근간으로 자리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가스등 효과

그러나 사실을 알고보면, 부부간이나, 부자간, 부녀간, 또는 연인 사이의 가장 긴밀한 관계에 있어서도 갑을 관계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에 있어서는 남편이, 부모-자식 간에서는 부모가, 연인 사이에서는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쪽이 주도권을 쥔 쪽이다. 관계의 본질이 사랑일 때에는 누가 주도권을 쥐었다 하더라도, 주도권을 쥐지 못한 쪽에 상처가 될 일은 없다. 그러나 상대방을 향한 보호와 배려보다는 자아의 만족을 위해 관계의 주도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누군가는 상대방을 향한 조종의 욕망을 서서히 키워 갈지도 모른다.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심리 스릴러물인 1944년 영화 가스등은 폴라의 재산을 가로채려고 의도적으로 접근해 결혼한 그래고리가 폴라를 정신 이상으로 몰아세우며 그녀의 의식을 조정하는 과정을 그린다. 남편이 다락방에서 보석을 찾으려고 불을 켜면 폴라의 방에 있던 가스등이 상대적으로 희미해지곤하는데 폴라가 이를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남편은 그녀가 신경 쇠약으로 헛것을 본 것이라고 몰아세운다. 상대의 의식을 조정하여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는 그레고리의 폴라를 향한 심리적 조종 manipulation을 가스등 효과 gas light effect라고 한다.

비단 그 옛날의 영화 가스등 속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 현실의 우리의 관계에서도 많은 그레고리와 폴라들을 찾아볼 수 있다. 갑의 입장에 서고자 하는 그/그녀는 은연중에 또는 노골적으로 을의 자아를 부정하고 무시하고 결과적으론 관계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을이된 그/그녀가 스스로의 능력을 또는 자아를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이고도 정신적인 학대를 가할 수도 있다. 자아를 부정당하고 거부당한 시간을 오래 겪은 을은 현실감과 판단력이 교란되고 정신은 황폐해져 자아의 통제권을 상대방에게 내어 줘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일은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공공연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며, 관계의 특성상 서서히 은밀하게 진행되는 이 심리적 학대의 과정을 미국의 심리학자 로빈 스톤은 가스등 효과라 부른다. 부부 치료와 가족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임상심리학자인 로빈 스톤은 부부간에 또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에서 연인 사이에서 발견되는 “권력”을 주도하기 위한 역기능적인 정서 패턴에 주목하게 되었다. 특히나 그녀의 저서는 자녀 양육에 있어서 부모가 더 엄격한 훈육 이라는 미명하에 자식들에게 행하는 정서적 심리적 학대를 되돌아 보게 한다. 가스등 효과의 본질이 정신적 심리적 학대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상처로부터 방어 할 수 있다. 독자들께선 누군가가 켜 놓은 가스등 아래서서 혼란을 겪에 계시지는 않는지..
어떤 관계가 되었건, 로빈 스톤 박사가 알려주는 “갑이 되고자 하는 자가 잠재적인 을에게” 가하는 가스 라이팅의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 1 전환
대화중 화제를 전환하거나 상대방의 생각을 의심하도록 만든다 “어디가서 줏어 들은 이야기를 내 앞에서 하는구나. 왜 네멋대로 상상하니?””정말 넌 왜 이모양이야. 이게 최선이야?”

#2. 반박
갑이 을의 기억을 무조건 불신하고 반박한다. 을의 기억이 옳든 그르든 무조건 반박한다. “내가 언제 그랬어 니가 완전히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거야. 그렇지 않아”
-사례
“네 기억력을 어떻게 믿어.. 확실한거야?” 남자친구는/여자친구는 종종 내게 이런 말을 해요. 처음에는 자주 싸웠는데 하도 이런 말을 자주 하다보니까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나 자신의 기억력을 의심하게 되요. 자신감도 없어지구요… 헤어지는 건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3 경시
상대방의 요구나 감정을 하챦아 보이게 만드는 방법 “왜 그렇게 까칠하게 굴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그냥 좀 넘어 가면 안되겠니 제발 제발 좀 피곤하게 굴지 마.”

-사례 1
왜 그랬던지 모르겠지만 어려서 두통이나 구토가 나는 경우가 잦았어요. 엄마는 제가 속이 매스껍다거나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면 “성질이 더러워서 그렇다.” 고 말씀하시곤 하셨어요. 제가 조금 예민한 반응을 보이거나 엄마가 제게 신경을 써야 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남들 같으면 멀쩡 넘어갈 일을 니가 성질이 더러워서 이렇게 호들갑을 떤다.” 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어요. 저는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너무 서럽기도 하고 챙피해서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난 왜 이럴까.. 내가 불편해도 내가 성질이 나쁜 탓이니까 꾹 삼켜야 한다고 믿어왔던것 같아요. 그래서 어디가 불편할 때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호소하여 할 엄두를 낼 수가 없었죠.

-사례 2
무척 사랑해서 결혼 했어요. 결혼한지 25년 내가 마치 줄리엣이라도 되는냥 부랴부랴 결혼 했더랬죠 친정에서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
좋은 직장 가지고 경제력 가지고 남편보다 많이 법니다. 그런데도 집안에선 전 을의 입장이고 항상 눈치를 보고 살아요. 남편은 매일 말합니다. 자신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고 와이프 잘못 만나 이모양이꼴 이라고…저는 항상 전전긍긍이고 미안했어요. 그런데 이제 이혼을 할까합니다.

# 4 거부
학대자가 을의 말을 듣기를 거부 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척 하는 방법. ” 이제 그런 얘기 좀 그만해 지긋지긋하다. 더는 듣고 싶지 않아 무슨 소리야.”” 난 당신에게 질렸어. ”

# 5. 망각/부인
자기가 하는 일을 기억 못하는 척 하거나 안 일어났던 것처럼 부인 하는 방법. “내가 언제 그랬어 그런 말 한적 없어.”

부지불식간에 나의 자아를 거부당하고 존재를 왜곡 당하는 일은 사적인 관계에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범위를 공적인 관계로 확장시켜보자면, 특이한 성격을 가진 정치가가 자신의 관점에 반하는 미디어를 공격하고 통제하기 위해 전체 미디어와 국민들을 “가스 라이팅”하는 현장을 우리는 매일같이 목도하고 있다. 많은 정치가들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 하기위해 또는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미디어를 공격하기 위해서 상기 제시된 가스 라이트닝 의 모든 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혹은 미디어가 정치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국민들을 “가스 라이팅”해 온 역사도 우리는 알고있다. 도날드 트럼프는 그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를 선언하던 당시부터 현재까지매일 미디어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평생을 주변인들에게 가스 라이팅을 해왔을 가능성도 있다. 많은 사적인 경우에 있어서 가스 라이팅의 가해자는 나르시시즘의 또는 자기애적 성격장애 경향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가 연일 날리는 트윗이나 백악관 기자 회담장을 들여다 보면 도날드 트럼프는 자신과 관점이 다른 모든 미디어에 대해서 거부 부인 반박 경시 전환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 언론과 대중들의 머리속을 교란하고 있다. 독자들께서는 누군가가 조종하는 가스등 아래 고통당하고 계시진 않은지. 학대적인 관계에 놓인 자신의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할 때,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를 조종하는 가스등을 꺼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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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희 박사 <한인커뮤니티 정신건강과 교육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