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칼럼]
공황장애: 인생의 고속기어를 저속으로 변환할 때라는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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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가 넘으신 J씨는 일찌감치 미국으로 유학 온 중국 출신의 엔지니어로 지난 수십년간 세계를 날아다니며 엔지니어로서의 기량을 펼쳐왔고 자신이 속한 회사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계시는 분이다. 물론, 일중독자다. 엄격한 식생활을 유지하며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던 J씨는 뜻밖에도 지난 겨울 대동맥혈관 확장수술을 받았고, 그 전에는 외아들을 출가시켰다. 지난해 봄에는 강도들에게 공격당해 어깨가 골절되는 불의의 사고를 입었다. J씨가 겪은 일련의 경험을 들으면 J씨가 심리적으로 압도돼 아마도 공황발작(panic attack)을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전화를 드렸다. 더구나 작년 이맘때 강도의 습격을 받았고, 올해 4월에는 동네가 떠내려가도록 폭우가 내렸던 상황이라 공황장애의 일종인 ‘기념일 반응’(Anniversary reaction)이 의심됐다. J씨는 처음 경험하는 심리적 위기상황에서 급히 도움을 청할 심리상담가가 필요했을 것이고, 마침 가까이에 있는 내가 떠올랐던가 보다. 급히 전화를 드려 상태를 물었다.
“숨쉬기 곤란할 때가 있으신가요? 일단 침대에 누우신 다음 호흡이 곤란하시면, 마음속으로 사각형을 그리면서 들숨, 날숨을 천천히 반복하세요. 아니면 종이봉투를 입에 대고 천천히 호흡을 하시고요. 지금 상태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J씨는 요 며칠간 불면증이 있었고, 현재는 불안감으로 집중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아침에 세금보고와 관련한 계산을 하던 중,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와 안절부절한 상태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평소와는 달리 생각을 제어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고 자신의 상태를 완곡하게 설명했다. J씨는 자신이 충분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으로 최근의 혈관수술이나 지난해에 겪은 불의의 강도사건 정도로 고민할 정도는 아닌데 어째서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며칠 째 계속되는지 난감해했다. J씨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정신건강과 관련한 심리학자의 설명을 별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아시안 특유의 문화는 학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J씨가 엔지니어이이기 때문에 인간의 두뇌구조로 현재 J씨의 심리적 불안상태를 유발하는 뇌의 화학적 신호에서 이상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두뇌의 화학작용이 인체의 호르몬체계에 주는 영향과, 증상이 장기화되었을 때 면역체계에 발생할 수 있는 변화도 설명했다.
“믿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심리적 불안도 신체에서 일어나는 작용”으로 나 자신도 공황장애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요가수업이 한창인 어느 날 나에게도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나에게 찾아온 공황장애의 원인은 이메일이었다. 휴가 중에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회사로부터 온 이메일에 답장을 하는 J씨의 일중독을 잘 알고 있었고, 나의 남편 역시 J씨와 비슷한 습관을 갖고 있다. 몇 해 전 요가를 하던 중, 낮에 보낸 여러 통의 이메일 중 단어 선택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고작 단어 하나로 유발된 그 부조리하고 수소 풍선처럼 어디론 가를 향해 마구 부유하던 이성의 통제력 상실은 공황장애의 습격으로 내 자신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한적이 있다. 아무래도 업무상의 ‘이메일’이 유발하는 스트레스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미국 공통의 키워드가 아닐까. 일을 하기 힘들다면 당분간 휴가를 내고 약물처방을 겸하면서 전문 심리상담사를 지속적으로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다음 날,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한 시간 가량 대화했는데,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기 편하게 공황장애의 기저에 깔린 이 신경학적 연계과정을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2주 후, 우리 부부는 그때까지도 병가 중에 있던 J씨를 자신의 단골인 근사한 프랑스레스토랑으로 초청했다. 평일이었으니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려는 생각이었는데, 유럽 출신의 오랜 동료가 합석하면서 식사자리가 커졌다. 누가 요구한 것도 아닌데 식사자리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살짝 들며 3초간 땀을 삐질 삐질 흘렀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J씨는 약병 두 개를 내보이며, 이건 하루 한 알, 이건 하루 두 알 먹는데, 이제 적응됐다고 장난기 섞인 웃음을 보였다. 또 다른 엔지니어는 자신은 십 년 전에 하루 한 알 짜리를 복용하기 시작했고, 하루 두 알짜리는 스스로 조절해가며 간간이 복용하는 중이라며 대화를 이어갔다. 전 세계 곳곳으로 부터 수천만달러 수억달러짜리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그 일을 감독하는 엔지니어 세명이 매일 느끼는 중압감과 책임감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났다. 그 세명의 엔지니어 중 아직 약을 먹지 않고 있는 사람은 남편뿐으로 J씨는 이런 나를 향해 경고했다. 지금나의 남편을 보면 마치 십오년 전의 자기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나는 남편이 그 상태가 올까봐 예방차원에서 저녁시간에 그림을 그린다며 같이 그림을 그려보자고 제안했다. 만성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상태의 파국인 공황장애에 대한 예방과 처방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세명의 엔지니어는 회사 밖에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진지하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며 살아남기 위해 릴렉스~~ 릴렉스~~ 하는 방법을 서로 권했다.
평생을 지속해 온 일중독 습관과 최근의 혈관수술로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J씨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상당히 비슷한 사례가 한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방송인 이경규 씨에게서도 찾아진다. 유명 개그맨인 그가 공황장애를 앓다 심혈관수술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일중독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이 완벽주의자들로 이런 사람들과 심혈관질환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할 때 심리학에서는 일반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A형 성격(Type A Personality)이라 칭한다. A형 성격의 소유자들은 성공적 지향적으로 성격상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매우 과제 지향적이며 융통성 별로 없다. 여기에 강박증까지 있고, 일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풀리지 않으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이 계획대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경우에 있어 A형 성격 소유자들의 신경계에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항시 전투대세를 갖추고 있는 셈으로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신체는 물론 장기까지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혈관이 수축되면서 혈압이 상승하는 상태가 지속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어느 날엔가 막혀버린 혈관을 뚫어주는 수술을 해야 할 때가 오기도 한다.
A형 성격과는 반대로 B형 성격(Type B Personality)이 있다. B형 성격 소유자들은 주로 예술가나 여행가들과 같이 매사 느긋한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그래서 우리는 글을 써보며 B형 스타일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어느 한쪽으로의 경향성은 보이겠지만, 각자가 처한 삶의 형편에 따라 우리는 A와 B형 성격의 스펙트럼을 오가는 것이 아닐까. A형 성격 소유자는 자기 삶이 현장에서 너무 과열됐을 때, 우리 머릿속의 변연계에 위치한 불안과 우울, 분노 통제센터인 아미그달라(편도핵)가 어느 날 갑자기 “이건 아니야. 이럴 순 없어!”라는 거부의 표현으로 화학적 시그널을 시도 때도 없이 방출하고, 이에 따른 화학적 불균형으로 신체와 정신이 교란되는 응급상황을 우리는 공황장애라고 부른다. 약간의 불안감과 우울증, 분노도 역시 동반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가, 불시에 공황장애의 습격을 몇 차례 받기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 삶의 기어를 저속으로 변환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심리적, 정신적 상담을 원하시는 동포 여러분은 코리안커뮤니티센터가 운영하는 심리상담소(713-463-4431)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윤현희 박사
텍사스A&M대학 학교심리학 박사
론스타칼리지 심리학강사
코리안커뮤니티센터 심리상담소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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