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휴스턴 이민사회에 연이어 선보인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에 대한 의견이 상당히 분분하다. 인기 배우를 중심으로 사실에 근접한 현장묘사를 통해서 완성도가 높은 영화였다.
하지만 역사적 고증이나 진실에는 다소 미흡한 점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왜 영화는 사실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제작되었을까?
이점은 흥행이라는 이름 아래 영화가 지닌 허구성을 전혀 무시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제작자의 의도와 감독, 그리고 배우의 호흡과 연기가 역사와 현실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지 않은가.
흔히 ‘영화 같은 이야기’라는 말이 있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세상에 즐비한 영화처럼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실에만 의존하여 만들어지는 다큐멘터리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는 우리 인생살이 자체가 참으로 다양하고 미래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울고, 웃고, 기뻐하고, 슬퍼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을 흔히 인용한다.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고 변화무쌍한 국제정세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또한 시대 조류를 여과 없이 추종하는 행위 또한 이렇듯 흥행 위주와 사행성이 넘치는 영화를 만들게 하였다.
영화로 제작하는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의도가 상당히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관객들에게 가장 어필되는 영화는 영화의 막이 비로소 내리고 난 다음이다. 영화관을 나서는 발걸음을 따라오는 감동의 여부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두 영화가 어떤 감동을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선 지난 역사 속에서 다소 과장되고, 때론 역사를 왜곡하여 법정투쟁까지 펼치면서 정치로 번진 사건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판결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영화를 그저 사실로만 치부하기엔 부족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필자는 군함도와 택시운전사를 며칠을 사이에 두고 관람했다. 군함도는 일본인들이 자국의 전쟁승리만을 위해 인권을 유린하고, 이율배반적으로 인류애마저 위반했고, 정작 민족을 죽음과 핍박에서 구해야 할 지도자의 사심과 욕망, 그리고 배신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택시운전사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활에 궁핍한 운전기사와 기사에 목마른 외국기자의 취재기에서 아쉬운 점은 30년이 지난 광주에서 일어난 역사의 순간을 어떤 시각에서 취재 했었냐는 점이다.
역사의 발단과 원인규명에 대한 어떤 말도 없이 사실이라는 미명아래 처참한 현장감만을 보여준 의미는 무엇일까? 팩트란 현장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이 결코 진실은 아니다. 진실이란 민주주의의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 내내 펼쳐진 처참한 광주의 시가지 광경은 마치 동족상란의 비극으로까지 묘사되어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특히 총상을 입은 시민들을 구하려 달려든 또 다른 시민들을 향해 정조준해서 사격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영화감독이 스스로 의도한 것인지도 의심케 하였다.
특히, 백기를 들고 앞으로 나선 젊은이를 향해 사격을 한 장면은 어느 전쟁영화에서도 찾기 힘든 장면이었다. 한국의 전근대 역사를 통틀어 언제 어디서 어떤 언론이 정의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며 앞장섰던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정권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영화란 관계를 풀어가는 역할을 한다. 작품과 배우가 관객을 통해 세상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가 안정된 구도이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 재미까지 가미한다면 금상첨화이다.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의 입장은 영화를 통해 지난 과거의 세계로 여행하고픈 마음이 있을 것이나, 영화가 내포한 메시지에 대한 의문점은 없다. 두어 시간 동안 스크린에 빠져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헤매다가 막이 내려지면서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감동은 관객의 몫이다. 어떤 작가든 감독도 이 영역을 침범할 수는 없다. 수백 미터 해저의 막장에서 죽어갔던 광부의 생명이나, 광주에서 국군의 총에 처참히 목숨을 잃어 버린 시민들을 값싸게 이용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다면 영화를 그저 흥행의 목적삼아 돈벌이의 수단이나 시대와 정치에 편중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점이 작품의 한계일 것이다.
이러한 지목이 갖는 사회적인 파장은 상당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이를 지켜보는 또 다른 시각과 관점의 상충이 대립과 갈등이 아닌 인내와 배려로 거듭난다면 영화가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군함도와 택시운전사 제작자가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기억이라도 주고자 했었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갈망과 더러운 역사의 기억”이었다고 본다.
외세의 힘에 눌려 너무 연약했던 우리의 주권과 인권이 유린되고, 결국 죽음의 문턱에서 허우적거렸던 지난 역사를 반복하였고, 아니어도 너무 아닌 비합리적이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광주시민들을 억압한 역사는 민주주의를 파괴한 행위임에는 분명하다.
지금도 그 진위여부가 논쟁 중이며 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명확히 해결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정상적인 생각과 행동으론 살아가기 힘든 곳이 아닌 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위정자들에게 있어야 한다. 영화제작자 역시 미래를 향한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는 영화를 많이 만들어 주길 바란다.
영화란 이렇듯이 있지도 않은 일을 마치 있는 것처럼 믿고 볼 수 있게끔 완성도 높은 허구의 끝을 보여줘야 비로소 작품으로써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제공되는 사실을 바탕으로 쓰이고 만들어 생동감 넘치는 영화가 대안으로 부각되어야 할 시대이다.

최영기/휴스턴 이민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