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와 비주류 사인엔 아주 작은 틈새가 있다. 이를 메우기 위함이 정치력 신장이다.
민주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풀뿌리 운동에 올해도 어김없이 휴스턴의 청소년들과 부모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었다. 그동안 침체된 이민사회의 미래를 열기 위한 노력들이 진일보하여 멀지않은 장래에 결실을 맺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박수와 갈채를 보낸다.
이민초기부터 각종 부당한 차별을 받았던 소수민족의 사회적 지위도 차츰 찾아가는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어느 나라든 이민자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미국은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자국민보호를 우선시하였고 아울러 타민족과 이민자들을 정치, 사회적으로의 문제해결이나 관심의 중심에 두지는 않았다. 국가라는 큰 정치적 담론에서 이민자는 극히 일부분만 인정되었던 것에 비해 요즘은 자주 매스컴에 다루어지는 것만으로도 큰 진화이다.
그동안 조명 받지 못했던 이민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정치인들의 숫자가 늘어남은 무척 고무적이나 여전히 사회적 관심의 초점에선 비껴가고 있는 지금, 풀뿌리 운동이야말로 이민 1.5세대와 2세대를 위한 주춧돌 마련이란 의미에선 가장 효율적인 듯싶다.
이민사회는 그동안의 정체성과 침체기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는 세상에 무엇인가를 내 놓아야 한다. 그것이 단지 정치력 신장뿐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서 고유의 색깔을 나타내야 한다.
따라서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작품은 선보이는 것에 그치지 말고 타민족에 비해 결코 부끄럽지 않은 양심과 문화를 혼합시킨 우리 고유의 정서를 담아 이 땅에 뿌리내려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미국 이민사회에 무기력하게 녹아나는 듯한 모습으로 전락되어 진공상태에 빠져 우울해지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기 십상이다.
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주류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동참해야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남이 듣지 않으려 해도 멈추지 말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야 한 다. 100년 전 하와이 파인애플 농장의 초기 이민자들이 그러했듯이…
일부 이민자들은 자신의 조급함 때문에 지나온 시간을 후회로 점철시키려는 경향도 없진 않다. 그러나 고통이나 걱정거리를 빨리 벗어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먼 길을 가려면 지나간 시간을 차근차근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 지면을 통해 지난 이민생활을 통해 돌아보고 바쁘다는 핑계로 지나쳐버린 이웃들과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나눔이 필요한 시기이다.
나 자신도 이 글을 쓰는 이유를 “저와 함께 이민사회란 큰 배에 실려 가는 동포들, 지금 이곳에서 각종 문제로 불안해하는 사람들, 한편으로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막연히 내일로 실려 가는 사람들에게 ‘당신만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니라 저도 흔들리고 있고, 우리 모두 흔들리고 있는지도 몰라요’라는 고민거리를 나누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그래서 언제나 ‘지금 이곳, 오늘 그리고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라는 화두를 마음속에 품고 이민사회를 향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눈을 크게 뜨면서 갈등과 반목이 아닌 화합과 배려, 이해와 포용이라는 단어를 소유한 채 서로 다름을 십분 인정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경제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연구를 하는 이유는 차세대들에게 나와 똑같이 어려운 길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우리가 사는 곳은 어디인가?

‘텍사스 휴스턴은 사람이 살만한 곳인가?’란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하면 ‘그렇다’이다. 미 전역을 지리학적으로 볼 때, 이곳이야말로 확실히 안정된 도시이며 자연의 이치가 듬뿍 담긴 은혜로운 곳임이 틀림없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땅, 그리고 모든 자연물의 존재에 생명력을 대입시켜 왔다. 인간은 대지만물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자연물이 주는 기운에 영향을 받는다고 믿었기에, 이에 순응하고 극복해야 하는 존재라고 믿었다.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사는 공간에도 끊임없이 자연의 기가 흐르기 때문에 좋은 기운이 모이는 곳에 살고자 하는 의지가 전통 풍수지리 사상의 기본 개념이다.
텍사스 휴스턴을 예를 들어보자. 비록 산은 없지만 광활한 땅과 바다가 어울려 별다른 굴곡 없이 사람이 살아가기에 아주 적합한 곳으로 보면 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자연환경 즉, 풍수(風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자면 ‘바람’과 ‘물’이 풍부한 곳이므로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미중남부의 자연관이 잘 나타나 있고 실제로 타 도시와 비교해 상당히 안정적인 도시이다.
풍수라는 말은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뜻인 장풍 득수(藏風 得水)를 줄인 말로, 생명을 불어 넣는 지기(地氣:땅 기운)를 살피는 것”이다. 자연에서 태어난 사람은 바람과 물로 생명체를 이루고 있으므로, 멕시코만과 인접한 넓은 대지를 품었기에 사람들이 생활하기엔 무척 적합하다고 판단된다.
풍수지리학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바람과 물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여 그것을 지리적인 조건에 맞춰 해석하는데 산세(山勢), 지세(地勢), 수세(水勢), 산의 모양과 기, 땅의 모양과 기, 물의 흐름과 기 등을 판단하여 이것을 인간의 길흉화복에 연결시켰고 이것에 의해서 생활하는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 풍수”라고 했다. 또한 역사적으로 “풍수사상은 중국 전국 시대 말기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한국에는 삼국 시대 이전에 전래되었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으로는 주로 묘지 풍수나 주택 풍수, 명당과 같은 터 잡기로 생각하기도 했었다”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요즈음 일반적인 평가는 풍수란 그저 미개한 토속신앙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되고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풍수라는 예를 드는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유인즉 단순한 호기심의 발동이고 궁금증 또한 많아서이다. 작금의 한국의 정세와 불길한 전쟁기운이 전 세계인의 우려와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 역시 한반도의 지리학적 위치가 주는 영향이 높기 때 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지리적 위치를 판단하는데 산수, 좌향, 운기 등으로 살펴보는 것이 합리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산수는 산과 물의 주어진 모양에 따라 분류된다. 산수에 대한 이해가 되었다면 도시가 앉아있는 모양을 살펴보면서 방향의 좌향이 그 산수와 조합에 따르는지를 보고 기운을 평가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이렇게 이루어진 산수와 좌향에 대한 기운이 시간의 흐름에 의하여 나타나는 운기에 의하여 기운이 어떤 형태로 발현되는가 하는 것을 보면 된다.
하여간 휴스턴은 축복 받은 땅임이 분명하다. 수천 억년동안 바다에 잠겨 온갖 자연의 퇴적물이 쌓인 다음은 융기활동으로 육지가 되었다. 아래로는 수많은 천연자원이 퇴적되어 있고, 별다른 토목공사 없이도 손쉽게 주택을 지을 수 있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또한 바다를 향해 흐르는 강줄기도 있고,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 축복받은 곳이다.
조금 덥다고 불평하지 말자. 산이 없다고 실망하지 말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 넓은 바다와 끝없이 펼쳐진 대지가 있음을 감사할 때 비로소 이곳이 바로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산이 무척 그립다. 그러나 바람과 세월 앞에 선 인간과 산도 언젠가는 평지로 변하고, 인간의 존재 역시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자연 순회 법칙을 이해한다면 대자연 앞에 좀 더 겸손하게 될 것이다.

휴스턴 이민문화연구소 최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