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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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6·25한국전쟁을 “Forgotten War” 즉 잊혀진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전쟁의 당사자인 우리들에게 6·25한국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현재진행중인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지난 6월24일(토) 휴스턴6·25한국전참전국가유공자전우회 주최로 제67주년 한국전쟁 기념식이 열렸다. 식순에 따라 국민의례가 있었고 인사말과 기념사가 있은 후 식순 말미에 ‘전우야 잘 자라’를 합창하는 순서가 있었다. 사회자의 요청에 참석자들은 반주에 맞춰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사라져간 전우야 잘 자라”를 합창했다.
한 맺힌 6·25한국전쟁의 아픔과 각오를 함축성 있게 표현했던 군가 “전우야 잘 자라”의 합창이 장내에 우렁차게 울려 퍼질 때 가슴에서 뭉클하게 치받쳐 오는 감정에 눈길을 돌려보니 함께 군가를 부르는 주변의 참석자들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6·25한국전쟁의 아픔과 꽃다운 나이에 전쟁에서 산화한 순국선열들의 희생에 모두가 고마워하고 감사해 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당시 나는 만6세의 코 흘리게 어린아이였다. 1944년 출생했으니 광복의 기쁨을 어렴풋이나마도 맛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어린나이에 동족상잔이라는 아픔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름 사나운 팔자가 아니었나 싶다.
치열한 전투로 공방전이 벌어지던 그 참혹했던 3년간의 전쟁기간 중, 나는 출생지였던 강원도 홍천 땅에서 온 집안이 와장창 풍지 박살나는 것을 똑바로 목격했다. 그리고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면서 전투 양상이 바뀌는 그때그때 마다 동네주민들의 우왕좌왕하던 모습도 기억난다. 하룻밤 자고나면 미군들이 동네에 들어와 있었고, 또 하룻밤 자고나면 북한군들이 동네에 들어와 진치고 있었다.
미군이 동네에 들어와 있을 땐 동네 꼬마들이 “헬로우! 짭짭. 기브미 초코렛”을 외치거나 손짓발짓으로 “추잉껌”을 외쳐가며 무엇인가를 얻어먹었다. 그러다 어느 틈에 북한군이나 중공군이 동네에 들어오면 골목골목 숨어 다녔는데, 그래도 재수 좋은 어떤 날은 호떡을 얻어먹기도 했다.
당시에는 너무도 배가 고팠던 때라 무엇이라도 눈앞에 먹을 게 보이면 내편, 네 편 따질 겨를도 없이 먹는데 정신이 팔렸었던 것 같다. 어쨌든 코 흘리게 어린아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러나. 코 흘리게 어린시절 전쟁의 기억은 얻어먹던 기억만이 아니다. 당시 코 흘리게 어린아이였던 나에게도 양민학살, 집단학살의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다. 또한 무차별 공습으로 죄 없는 수많은 양민들이 쓰러져 죽어가는 참혹한 장면도 목격했다.
사리분별 없던 어린아이 나이었지만, 코 흘리게 어린아이의 눈에 비쳐졌던 그 적나라한 전쟁의 참상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오죽하면 이제 나이 70세를 훌쩍 넘겨버린 지금까지도 그 당시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악몽에 시달릴 때가 있다.
그래도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하늘이 보우하사 그렁저렁 용케도 살아남았다.
조국이 근대화를 거치며 정치적으로 혼란한 현실상황에서도 미꾸라지처럼 꿈틀꿈틀 살아남아선 이토록 아름다운 강산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해 하고 있다. 이제 저물어가는 인생의 황혼녘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바라볼 때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모든 분들게 감사해 마지않을 수 없다.
누구는 잊혀진 전쟁이라고 말하지만 지금도 총성없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남과 북의 서로 대치해 있고, 한국에서는 기득권자들과 피기득권자들 간에 빼앗고 뺏앗기지 않으려는 정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말이지 힘없는 국민들을 볼모로 삼아 벌이는 비열(?)한 권력투쟁도 있다. 부디 부디 바라건대, 내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후에라도 사랑하는 우리 후대들에게 전쟁만은 남기지 말아야 할 터인데… 말아야 할 터인데… 간절히 매달려 기도할 뿐이다.

참고부록
“67주년을 맞이하는 6,25한국전쟁의 원인과 피해현황”

한국전쟁은 일제치하에서 광복을 맞이하고, 남한은 미국의 민주자본주의를 선택하였고, 북한은 소련의 사회공산주의를 선택하여 남한과 북한의 사회이념 때문에 일어난 전쟁으로, 6,25한국전쟁은 우리의 전쟁이지만, 사실상 미·소 냉전에 의한 세계의 새로운 구도에 끼어들어 어떻게 보면, 미·소의 대리전쟁을 하게 된 거나 마찬가지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인해 전쟁이 시작되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어처구나가 없다. 전쟁은 3년1개월간 지속되었고, 인명피해는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450만명에 달한다. 그 가운데 남한의 인명피해는 민간인 약 100만명을 포함한 약 200만명이며, 북한의 인명피해는 민간인 100만명을 포함하여 약 25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남한: 사망 244,663명, 학살 128,936명, 부상 229,625명, 납치 84,532명, 행방불명 303,212명
북한: 사망 406,000명, 부상 159,400명, 행불 680,000명
한국군: 사망 149,005명, 부상 71,7083명, 실종 132,256명
UN군: 사망 57,615명, 부상 115,310명, 실종 2,232명
북한군: 사망 520,000명, 부상 120,000명
(출처: 국방부 군사정전위 편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한국전쟁 통계에서 보듯이 UN참전국인 미국을 비롯한 21개국이 한국전쟁에 도움을 주었고, 6,25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남북분단의 아픔이며,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국가로서 전쟁도발의 우려로 엄청난 국방비를 지출하고 여전히 보이지 않는 민족통일과 화합의 희망이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가슴 아픈 현실이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되새기고 얼마 남지 않은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며, 그분들의 노후여생을 책임지는 후배들의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휴스턴 지역에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40여분의 6·25참전유공자들이 계셨었지만, 한두 분씩 소천하시고 현재는 34명의 유공자들만 계신다고 한다.)
<차대덕 재미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