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사회주의 속의 자본주의”
휴스턴총영사관, 탈북여성 초청 강연회 가져

0
1097

“북한은 지금 사회주의 속의 자본주의 길을 가고 있다.”
휴스턴총영사관과 미중남부한인연합회, 그리고 휴스턴평통이 공동으로 주최한 6·25한국전쟁 제67주년 기념 탈북자초청 동포강연회에서 강사로 초청된 신은하씨는 남한에 살고 있는 탈북자를 가족으로 둔 북한주민을 일컬어 한라산 줄기라고 하는데, 이들 한라산 줄기가 북한 최고의 출신성분으로 모든 혜택을 누리는 백두산 줄기에 버금갈 정도로 세력을 키우고 있다며, 북한은 지금 사회주의 속의 자본주의라고 평가했다.
강연에 앞서 김수명 중남부한인연합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6·25한국전쟁은 단일전쟁으로는 7번째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가족 당 1명꼴로 이산가족을 양산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한국전쟁에 미국 장군의 아들 140명이 참전했는데, 이중 35명 전사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67년전 조국 땅에서 일어난 참상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역사의 산 증인인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가고 있는데, 부모 혹은 아내 그리고 어린 자녀를 뒤로하고 전쟁터로 달려간 호국영령들이 넋을 위로하는 한편, 단 하루라도 한국전쟁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강연회를 준비했다고 설명하면서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의 소중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북한, 여전히 그리운 고향
신은하씨는 “많은 분들이 오셨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날 행사의 사회를 맡은 이광우 휴스턴해병대전우회장은 젊은이들이 적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채널A ‘이제 만나러갑시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신은하씨는 휴스턴 공항에 내렸을 때 옛날 중국에 다녀온 엄마한테서 났던 것과 같은 냄새가 났다며 엄마의 냄새를 좋아했다고 소개했다.
신씨는 그러나 북한에서 미국은 나쁜 놈들이 사는 ‘원쑤’의 나라였는데, 그 원수의 나라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 것이 약간은 이상했다고 미국 방문소회를 밝혔다.
신씨는 강연을 다니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2가지가 있다고 소개했다. 하나는 한국이 좋은지 북한이 좋은지에 대한 질문인데, 자신은 한국이 너무 좋고 한국에서 사는 것이 너무 행복하지만 동시에 북한에 대한 그리움도 갖고 있다고 토로했다. 두 번째 질문은 평양과 금강산에 가봤느냐는 것인데 출신성분이 좋지 않아 평양도 금강산도 가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북한출신인 자신보다 남한 사람들이 더 많이 평양과 금강산을 다녀온 것 같다며 웃었다.
신씨는 고향이 백두산 바로 아래에 위치한 무산으로 이곳은 겨울에 기온이 영하 40도 이하로 내려갈 정도로 춥다고 소개했다. 무산은 광산지역으로 철광석이 많이 나는데, 북한은 이곳에 캐낸 철광석을 중국과 러시아 등으로 수출하고 식량을 사온다고 말했다.
중국이 50년간 무산광산 채굴권을 가져가면서 광부들에게 배급과 월급을 주자 무산 주민들은 중국과의 계약이 100년으로 연장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며 고향의 경제상황을 전했다.

쓰레기 연기가 피어나는 굴뚝
신씨는 자신을 굴뚝세대라고 표현했다. 남한이 미세먼지로 고통 받자 북한의 공기는 좋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무산의 공기는 아주 좋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농지를 개발하라며 산의 나무를 베어내자 무산에서는 땔감이 부족해 쌀이 있어도 밥을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북한이 프랑스에서 몇 백, 몇 천톤의 쓰레기를 수입해다 이곳저곳에 쌓아 놓았는데, 땔감을 구하지 못한 주민들이 쓰레기를 주워다 불을 피우자 동네 굴뚝에서는 화산이 폭발할 때나 볼 수 있는 불덩이들이 솟구쳐 올라왔다. 신씨는 집집마다 쓰레기를 땔감으로 사용하면서 공기가 안 좋아져 흰색교복을 입고 집을 나가면 곧 까맣게 변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한라산 줄기, 좋은 대우 받아
신씨는 자신의 출신성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천에 살던 친할아버지는 월북했고, 외할아버지는 전쟁터에 들고 가라고 준 총을 버리고 산에 숨어있다 발각됐는데, 이런 내용들이 꼼꼼히 기록돼 서류로 남겨져 있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북에서 백두산 줄기는 최고 출신성분으로 김일성 일가나 빨치산 출신이 백두산 줄기인데, 요즘은 탈북자 가족들을 일컫는 한라산 줄기가 대우받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약 3만명인데, 이들 탈북자들이 북에 남기고 온 가족이 한라산 줄기다. 탈북자들은 대부분 독신으로 북에 가족을 두고 있다. 탈북자들이 남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 북의 가족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남에서 죽도록 일해 북의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데, 이 돈이 1년에 약 5백만원 정도가 된다. 북의 가족들은 남에서 부쳐오는 돈으로 ‘고이기’ 즉 로비를 하는데, 출신성분을 바꾸기도 하고 김일성대학에 진학도 하며, 심지어 공산당원도 되고, 사형수까지도 석방시킬 정도로 자본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데, 출신성분으로 장래가 결정됐던 과거와는 달리 남에서 보내준 돈으로 ‘고이기’만 잘하면 장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민형 탈북
신씨 자신은 배가 고파 북한을 탈출한 생계형 탈북자지만, 요즘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이민형 탈북이 많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씨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예로 들었다. 출신성분이 좋은 태 공사는 배가 고파 남한을 택한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더 나은 장래를 보장해 주기위해 남한 행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신씨는 자신이 탈북할 당시엔 국경경비대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탈출했지만, 요즘에는 1,500만원만 ‘고이기’하면 쉽게 탈북할 수 있다며 남에서도 1,500만원이면 거액인데 북에서도 1,500만원이면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정도라는 신씨는 1,500만원의 브로커비용을 내고 탈북할 정도면 북에서도 상위계층일 것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또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젊은 탈북여성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 탈북여성은 국정원이 탈북자 교육을 위해 운영하는 하나원을 나온 후 임대주택을 배당받았는데 깜짝 놀랐다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유는 보통 한국정부가 탈북자에게 제공하는 임대주택은 18평인데, 젊은 탈북여성은 북에서 100평짜리 집에서 살았는데, 자신이 배정받은 임대주택은 북쪽 집의 화장실 크기 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탈북성공은 기적
신씨는 초등학교 시절 인민군 4명이 군화발로 방에 들어와서 다짜고짜 엄마를 개 패듯 때렸다고 말했다. 중국을 다니며 장사하던 엄마가 선교사로부터 테이프를 북의 지하교인들에게 전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는데, 이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엄마가 개 패듯 맞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도 맞을까봐 무서워 도와주지도 못했다는 신씨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30여분간 매를 맞고 끌려가던 엄마의 눈, 코, 귀, 입 등 모든 구멍에선 피가 나오는 것을 봤다고 기억했다.
외갓집을 팔아 ‘고이기’해 엄마가 보석으로 풀려났는데, 몰골이 처참했다. 아버지는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라며 탈북을 결행했다. 탈북에 성공한 가족은 중국 어느 시골마을에서도 5시간 떨어진 산속 닭장에서 몇 년을 살았다. 엄마는 산에서 나물을 캐다 팔고 아빠는 나무를 베어다 팔면서 연명했지만,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 여자가 찾아와 10대였던 자신과 언니를 40대 초반과 30대 후반인 자신의 아들에게 주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 요구를 거절한 다음날 공안이 찾아왔고, 집에 있던 자매는 북송됐다. 북송돼 6개월 정도 교화교육을 받았다는 신씨는 지금도 당시 생각만으로 악몽을 꾼다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아버지가 고용한 브로커의 도움을 재탈북에 나선 자매는 장마로 불어난 두만강을 건넜다. 자신을 안내하던 브로커가 급류에 겁을 먹고 서로 묶었던 끈을 풀고는 도망쳤다. 허우적거리며 3번째 물속에서 나올 때 ‘쌀밥’도 못 먹고 이렇게 죽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악물고 발버둥 쳤다. 신씨는 남한에서는 다이어트한다고 일부러 쌀밥을 먹지 않는데, 자신은 남한에 오기 전까지 쌀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두만강 건너기에 성공한 언니가 강에 떠내려가는 자신을 따라오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언니를 안내하던 브로커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시 강에 뛰어 들어 신씨를 살렸다. 신씨는 자신을 구해준 브로커가 계란 10개를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며, 자신을 살려준 브로커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아쉽다며 브로커를 다시 만나면 자신의 전재산을 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을 거쳐 남한으로 오는데 성공했지만, 신씨는 베트남에서 한국 대사관인 줄 알고 찾아간 곳이 북한 대사관이었고, 메콩강을 건너던 중 악어밥이 될 뻔 했다는 사연도 소개했다. 신씨 가족은 각고의 고생 끝에 2003년 남한에 오게 됐다.

왜 남북통일이 되야 하나
신씨는 소위 명문대학이라는 곳에서 강연을 했던 적이 있는데, 강연이 끝나고 어떤 남학생이 찾아와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소개했다. 신씨는 남학생의 질문에 충격을 받았다며, 원래 하나였던 나라가 둘로 쪼개졌고, 다시 하나로 합치자는데 무슨 이유가 있냐고 되물었다.
신씨는 배가 고파 탈북했지만, 아직도 고향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신씨는 명절 서울에서 부산까지 10시간 가까이 정체돼 고향 가는 길이 힘들다는 뉴스에 화가날 때가 있다고 밝혔다. 그래도 10시간이면 고향에 갈 수 있지만 자신은 10년이 걸려도 갈 수 없을 것 같고, 또는 평생 가지 못할 수도 있다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했다. 인천에 살던 할아버지는 청진 바다 앞에서 자신의 손을 꼭 잡고 곧 통일이 될 것 같으니 인천 바다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결국 인천 앞바다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며 자신도 고향을 보지 못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강연을 마치며 신씨는 “통일이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양동욱 기자